<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16

악인은 지옥으로 (6)

등록 2003.08.28 12:55수정 2003.08.2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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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 이마에 있는 그 상처는 뭐죠?"

호옥접은 오랫동안 궁금했던 것을 묻고 나니 후련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마에 글자를 새겨 넣는 자자형(刺字刑)은 대역죄를 범하였거나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자 등 죄질이 극히 나쁜 죄인에게나 처하는 형벌이다.


여기엔 여러 경우가 있는데 반역(反逆)이라는 글자는 대역죄를 범한 죄인에게 새기는 글자이고, 색마(色魔)라는 글자는 글자 그대로 색마에게 새기는 글자이다. 이외에도 배은(背恩)이라는 글자를 새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범죄를 저지른 죄인에게 새기는 글자이다.

이것은 한번 새겨지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기에 어떤 면으로 보면 사형(死刑)이나 궁형(宮刑)과도 같은 형벌이다. 다시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호옥접도 익히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이회옥의 이마에는 삼천이십칠이라는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궁금하였던 것이다.

대부분의 자자형은 바늘에 먹물을 묻혀 문신을 새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회옥의 이마에 새겨진 것은 단순한 문신이 아니라 누군가가 달군 인두로 지진 자국이었다. 다소 흉측해 보이는 그것을 처음 보았을 때 호옥접은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을 잃은 청년이 어쩌면 흉악무도한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성심성의껏 치료한 것은 순전히 조부인 남의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릇 의원이란 귀천(貴賤) 따위에 관계없이 모든 환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가르쳤던 것이다.


그래서 치료를 하였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대화를 나눠본 결과 이회옥이 결코 흉악한 사람이 아니라 확신하게 되었다. 마음이 야차(夜叉)와 같은 인물이었다면 그에게 고절한 학문이 있을리 만무하다 생각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물어보지 않은 것은 혹시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질문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물어본 것이다.
"아! 이 상처 말이오? 이건…"


이회옥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무림지옥갱에 끌려갔다는 이야기에 호옥접은 마치 제일인 것처럼 분개해 하였다. 그곳에서 자자형에 처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땐 마치 제 이마를 지지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간신히 탈출하였으나 생포되는 바람에 피거형이 처해졌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왜 그의 몸에서 근원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악취가 나는지를 그제야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하여 선혈 등을 잘 닦아낸다고 닦았는데도 이상한 악취가 나서 그렇지 않아도 이상하다 생각하던 차였다.

이날 이후 이회옥은 전신에서 땀이 흠뻑 날 때까지 봉술을 연마한 직후 살이 퉁퉁 불 정도로 물 속에 담가져 있어야 하였다. 찻물 우려낸 그것에 보름만 담겨 있으면 체내에 배어 있던 악취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이회옥은 놀라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지울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진 이마에 새겨진 글자를 지울 능력을 지닌 의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심적인 고통을 느꼈던가! 그것 때문에 남들 다 가는 장가를 포기한지 오래였다.

선무곡을 떠나기 직전 홍여진은 얼마나 살갑게 대했던가!
조연희와 함께 있을 때 그녀 역시 더 없이 친근하게 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마에 새겨진 글자 때문에 자격지심이 일었기에 감히 그녀들을 어찌해볼 생각조차 가지지 못했다.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한다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회옥이라 하여 왜 홍여진에게 마음이 없고, 조연희에게 마음이 없었겠는가! 그도 혈기왕성한 청년인 이상 아름답기 그지없는 그녀들에게 끌리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였기에 그럴 때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스스로를 다독였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이마에 흉측한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드러내놓고 다니면 세상 사람들은 아마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염천 더위에도 꼭 영웅건으로 이마를 가리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 처지에 어찌 꽃같이 아름다운 그녀들을 마음에 담을 수 있겠는가 생각하였기에 고개를 저은 것이다.

그런데 이마에 새겨진 글자를 지울 방도가 있다하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호옥접은 무천의방의 부방주인 소화타가 돌아오기만 하면 능히 그것을 지울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그렇기에 의성장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야압!"
쐐에에에에에엑!

"야아압!"
쒸이이이이이잉!

의성장에 머물기 시작한 지 이십칠 일째 되던 날 오후, 이회옥은 후원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큰 상처였지만 모두 아물었기에 운신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어찌나 금창약의 효능이 좋았는지 상흔조차 남지 않았다.

애초부터 근육은 상하지 않았기에 봉의 움직임은 영활한 영사처럼 쾌속하면서도 교묘했다. 특히 세 가지 장애물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피할 수 있는 운룡포연의 수법은 더욱 교묘해졌다.

짝짝짝―!
"하하! 대단한 솜씨외다."
"……?"

이회옥은 처음 듣는 사내의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제법 준수한 청년 하나와 미소짓고 있는 호옥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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