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마무리 불꽃놀이박도
오가에서 ‘세도마쯔리(柴燈祭)’를 보면서도 느낀 바지만, 일본보다 문화의 역사가 훨씬 오래고 깊이가 있는 우리나라가 오늘에 와서는 고유문화 계승과 그 보존이 일본보다 훨씬 뒤져 보였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고유문화를 스스로 천시하고 소홀히 한 데서 오는 결과이리라. 옛 것을 그대로 재현시키는 것이 문제가 있다면, 현대감에 맞게 재창조하여 민족 문화를 꽃 피우는 것이 우리나라 문화계에 가장 시급한 과제로 보였다.
사실 나는 일본에 오기 전에는 일본은 남의 문화 모방에 천재적으로 알았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그들은 외래 문화를 과감히 수용함과 아울러 거기다가 자기네 고유의 문화를 잘 접목시켜서 새로운 일본 문화로 만든 게 엿보였다.
취재 도중 눈 집(가마쿠라) 앞에서 김 계장을 만나 함께 사진을 찍었다. 헤어보니 꼭 19년 만에 만난 셈이다. 1984년 3월, 그는 고교 신입생이었다. 입학식을 마친 후 출석 순번 정하기와 좌석 배정할 때, 남학생 순번은 쉽사리 정했다. 그러나 여학생들은 서로 첫 번은 하지 않으려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 내가 김자경 학생에게 “선생님은 첫 번호 학생을 제일 똑똑하고 예쁜 학생으로 정한다”고 했더니, 그제야 뒷걸음치던 걸 체념하고 그만 첫 번호가 되었던 기억이 새로웠다.
졸업 후에도 해마다 새해인사(연하장)를 빠트리지 않았던 예의 바른 학생이 이제는 일본 여행에 둘째가면 서러운 전문인(마니아)이 되어 이번 취재 길에 사제 동행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