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 구내 매점박도
06: 20, 다시 깬 후 창을 열고 밖을 보니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의 나라에 눈이 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로 걱정이 되거나 서글픈 생각도 없었다. 며칠 새 나도 환경에 적응했나 보다. 대욕탕에다 몸을 담갔다가 나오자 피로가 한꺼번에 풀린 듯 가뿐했다.
07: 30, 구내식당에서 아침은 든 후, 구내매점으로 가서 찹쌀 떡 한 상자를 샀다. 나중에 차내에서 일행에게 군입질 감으로 돌릴 셈이다. 김 계장이 ‘선생님’이라고 해서 그런지 일행 모두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깎듯이 예의를 다해서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일본인조차도 ‘센세이’라고 부르며 귀빈으로 접대해 주었다.
07: 40, 도와다소(十和田莊) 여관을 출발했다. 역시 여관 주인과 종업원이 주차장에서 90도로 환송 절을 했다. 우리 속담에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정성을 다하는 친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과례(過禮)는 비례(非禮)’라는 말도 있는데, 일본인과는 겉 인사에 껌뻑하지 말고 진심을 잘 살핀 후 거래를 해야지 실수가 없을 것 같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한 바, 분명 일본이 조선을 ‘보호’하는 조약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08: 30, 버스는 눈안개 속을 지나고 있다. 언저리가 도와다하치만헤이(十和田八幡平) 국립공원으로 경치가 끝내줬다. 이곳에는 길바닥에도 눈이 녹지 않았다. 그런데도 버스는 체인을 감지 않았는데도 미끄러지지도 않고 고갯길을 유연하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