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꽃 꿀 따 먹는 일벌김규환
밭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벌레
밭에 가는 이유 중 하나가 시장에 가지 않고도 채소를 갖다 먹을 수 있는 즐거움에서다. 또 하나가 있다. 어린 날 기억 속의 곤충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굼벵이를 만나고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집을 나설 때 여러 도구도 챙기지만 필수품이 카메라다. 간혹 잊고 떠나게 되면 늦더라도 돌아와 반드시 갖고 나간다. 언제 내 귀여운 친구들을 만날지 모르지 않는가. 먹는 것 빼먹고는 가지만 카메라 없이는 있던 애인이 떠나간 것 같다.
일하다 잠깐 쉬는 동안 거미·나비·매미·물잠자리·방아깨비·일벌·똥벌·여치·잠자리·지렁이·청개구리·풀무치를 만난다. 어떨 땐 행여 도망갈까 두려워 조심히 일손을 놓고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 한 손으로 셔터를 누른다.
‘찰칵’ 소리와 함께 요 귀여운 생명이 내 눈과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진다. 연거푸 쉬지 않고 세 번에서 다섯 번 누르면 다소 흔들린 것도 방지할 수 있다. 가까이 잡았다가 멀리 잡고 방향을 돌려가며 담기에 여념이 없다.
간혹 어두울 때만 터트리는 플래시만 아니라면 작은 친구들은 태연하게 제 할 일을 한다. 어떤 놈은 끊임없이 줄을 뽑아낸다. 한없이 울어대는가 하면 날개 짓 쉼 없이 펄럭거린다. 풀을 뜯다가 적을 발견하고는 옆 걸음 질 치는 놈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해칠 생각이 없다. 상당한 오해를 받아 서운할 법도 하지만 그 친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
단 것을 쏙쏙 빨아대고 눈을 휘둥그래 360도 돌리기도 한다. 풀뿌리를 따라 올라와 해가 부끄럽다고 얼른 숨어버리기도 한다. 언제 다 자라 땅위를 안전하게 걸을 수 있을지 궁금하게 언제나 그 모양 그 크기의 풀색을 띤 것도 만난다. 풀물 잔뜩 들여놓고 풀과 구분이 안되도록 위장을 잘 하는 터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는 수도 있다.
이러니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숙제 때가 그립다. 탐구생활을 3일만에 풀어놓고 개학하는 날까지 열어보지 않다가 선생님께서 숙제 내라고 하시면 그 때라야 제출하는 게 방학 숙제다.
곤충채집은 하루 이틀에 이뤄지지 않았다. 놀러가든지 일하러 가든지 들로 나가면 보이는 족족 집으로 가져와서 질식시켜서 죽기를 기다렸다가 오래된 냄비에 볶아서 말린다. 다 쓴 공책 사이에 넣어두거나 내장이 잘 마르지 않은 큰 것은 알코올에 넣어 보관한다.
결국 게으름을 피우다 개학한 지 3~4일 넘기고 마지못해 제출해야 할 때는 파리 한 마리도 숙제로 제출하는 경우가 있었다. 후미진 추억의 한 귀퉁이에 쳐 박아 뒀던 곤충과 벌레는 오랫동안 고향에서 같이 놀았던 동무만큼 반갑다.
동무들은 다들 제 입에 풀칠하며 사느라 바쁘다. 명절 때도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이 더 많은 까닭에 여름 한 철은 풀벌레와 친하게 지내는 수밖에 없다. 이 친구들이 있으면 서울에 살면서도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같이 장난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