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 다시 생각해야

등록 2003.08.30 02:08수정 2003.09.0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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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 소개부터 하고 시작하고자 합니다. 나는 현재 통일유니버시아드 시민연대의 아리랑응원단 자원봉사단원 장우식이라고 합니다. 북측의 유니버시아드 참가소식을 그 시간과 출처가 다르지만 인터넷상에 맨 먼저 올렸다고 <오마이뉴스>에 기사화까지 되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저는 이번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북측 서포터즈인 아리랑 응원단의 자원봉사 일을 하면서 느끼는 점이 정말 많습니다. 유니버시아드 대회 일정이 길게 잡아도 사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그동안의 행적들을 정리하고 더불어 우리가 참으로 험악한 법의 테두리에서 살고 있음을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자 함입니다.

양심수 문제나 비전향 장기수 문제까지 들춰내지 않더라도 이번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보면서 저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저희가 이런 북측의 서포터즈를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행위, 찬양고무죄'에 의하여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잡아넣을 수가 있다는 것이죠. 저희들 뿐만이 아니라 북측 경기가 있을때마다 동포애로 응원했던 수많은 사람들까지도 말이죠.

국가보안법을 제대로 적용하자면 지금 이 시간에도 저는 이런 글 자체를 적어내려가지 못할 것이고 경기장에 나타나지도 못할 것입니다. 당연히 북측을 응원할 수도 없을 것이구요. 중고생들도 지금쯤이면 다들 소년원에서 형을 살고 있겠죠.

그러나 실상은 어떻습니까. 북측선수를 응원하는 그런 열기는 달아올라서 이제는 대형단일기가 북측응원단에게까지 전달이 되고 오늘은 남북공동예술문화행사에서 북측 대학생응원단과 남측 대학생들이 섞여서 춤판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5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서 그 공연을 지켜보고 '휘파람'과 '우리는 하나'를 다같이 합창하고, 파도도 타고, 공연 말미에, 그리고 중간중간에 "우리 민족끼리! 조국 통일!"이라는 구호도 수 번 반복해서 외쳐댔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을 제대로 적용하면 다들 잡혀 들어갈 사람들이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 생각이 많이 복잡해졌습니다.

시대상황에 따라, 그리고 위반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더 집행하기 어려워지는 '국가보안법'이 과연 제대로 된 법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우리쪽으로 온 북측 기자들에게 두 번의 사인까지 받았습니다. 정확하게는 메시지이죠.

한 번은 첫날(21일) 남자배구 북-덴마크 경기에서 북측 기자에게 받은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하자"라는 요지의 메시지, 그리고 유도경기에서 받은 "나의 이름은 조국통일"이라는 이 두 건의 메시지만으로도 충분히 이 시간쯤 교도소에 들어가 있어야 할 몸이거든요?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양심수 문제나 민족의 통일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번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니까' '우리이니까' 응원하는, 그리고 그쪽을 좋게 말하는 여러 행위들을 정치인들의 필요에 의해서 친북행위, 이적행위로 재단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거부감이 이번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통해서 두 배, 세 배로 커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북측응원단들이 대구은행 연수원에 오는 날 눈물흘린 여고생, 단일기가 북측응원단에게 넘겨지는 모습과 일본 선수보다 북한 선수가 잘해서 인공기가 금메달의 위치에서 올라가는 장면들을 보고 기분좋았던 것들. 경기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북한선수를 응원했던 이 모든 것들이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에 얼마든지 저촉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저를 더더욱 가슴아프게 만듭니다.

어제 집에 들어가니까 할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북한사람들하고 말하거나 그러지마라"라고요. 국가보안법을 생각하신 것이겠죠. 저는 그 말씀에서 경상도, 대구사람의 보수성 보다는 행여 손자가 국가보안법에 걸려서 사람구실 못할까봐 걱정하시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더이상 제대로 시행도 못하는, 또는 하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으로 인해서 희생당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더이상 순수하게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들이 왜 떨어져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청소년들과 지금 이시간에도 몸고생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이 땅의 양심수들, 그리고 갈라진 '우리'를 안타까워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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