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봉
특히 회암사는 조선의 창건과 관련해 재미난 이야기를 품고 있어 다시 한 번 눈여겨 보게 된다. 조선 개국에 관여했던 무학대사가 머무르던 사찰이 바로 회암사로, 태조를 만나게 된 것도 이 절이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설봉산 토굴에 있던 무학을 찾아와 꿈 해몽을 청하거늘, 앞으로 왕이 될 운명이니 입밖에 내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 청년이 바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태조가 무학에게 새 도읍을 정하는 일을 맡겼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생무상 권력무상. 이후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준 태조가 머무르던 곳도 바로 양주 회암사다.
폐허미를 한껏 받아들이다
회암사의 느낌은 막막하지만 장대하다. 비록 남아 있는 전각 하나 없다지만 지천에 널려있는 온갖 석재들은 크기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앞쪽 모퉁이에 서있는 당간지주와 소맷돌, 질서정연한 석축은 옛 영화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끔 한다.
특히 사람 마음을 잡아 끄는 것은 금당이 있었을 법한 폐사지의 중심 부분이다. 보통 크기가 아닌 박석과 장정의 가슴팍에 와닿는 석축은, 만약 목조 건물도 남아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온 상상력을 동원하게 한다. 또 뛰어난 조각기술로 만들어 놓은 부도는 그 정교함이나 크기 면에서 사람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