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봉
특히 회암사는 조선의 창건과 관련해 재미난 이야기를 품고 있어 다시 한 번 눈여겨 보게 된다. 조선 개국에 관여했던 무학대사가 머무르던 사찰이 바로 회암사로, 태조를 만나게 된 것도 이 절이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설봉산 토굴에 있던 무학을 찾아와 꿈 해몽을 청하거늘, 앞으로 왕이 될 운명이니 입밖에 내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 청년이 바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태조가 무학에게 새 도읍을 정하는 일을 맡겼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생무상 권력무상. 이후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준 태조가 머무르던 곳도 바로 양주 회암사다.
폐허미를 한껏 받아들이다
회암사의 느낌은 막막하지만 장대하다. 비록 남아 있는 전각 하나 없다지만 지천에 널려있는 온갖 석재들은 크기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앞쪽 모퉁이에 서있는 당간지주와 소맷돌, 질서정연한 석축은 옛 영화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끔 한다.
특히 사람 마음을 잡아 끄는 것은 금당이 있었을 법한 폐사지의 중심 부분이다. 보통 크기가 아닌 박석과 장정의 가슴팍에 와닿는 석축은, 만약 목조 건물도 남아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온 상상력을 동원하게 한다. 또 뛰어난 조각기술로 만들어 놓은 부도는 그 정교함이나 크기 면에서 사람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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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회암사터 왼쪽에 난 길을 따라 1km가 못 되게 올라가면 회암사가 있다. 회암사가 있는데 왜 폐사지라 부르는지 반문할 수 있겠다. 지금 말하는 회암사는 본디의 회암사라기보다는 애초 암자였을 정도로 작은 편이다. 그냥 회암사라는 이름이 좋아, 그 화려했던 과거가 좋아 일단 갖다 붙인 이름쯤으로 받아들이자. 실제로 이 절은 1828년 순조 28년에 들어서야 창건된 사찰이다.
이곳에 오르면 지공화상 부도와 부도비, 석등 등이 중간쯤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어 나옹선사의 부도와 부도비, 역시 석등이 가장 북쪽에 자리잡고 있고, 무학대사의 부도와 석등, 부도비 일부가 남쪽에 남아 있다. 조각 기술을 떠나 아담한 모습에 마음이 편해진다. 위세를 거들먹거리지 않고 길손을 푸근하게 맞아주는 손길에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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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大)사찰 회암사, 결국 소멸되다
보다시피 현재 회암사는 폐사지다. 나옹화상이 진리를 깨달은 절답게 내로라하는 이들이 거쳐간 회암사도, 그러나 정해진 운명이 있었나 보다. 경복궁 등 궁궐에서나 나오는 청기와가 출토되고 연산군 당시의 대대적인 불교 탄압에도 불구하고 명맥을 유지하던 대사찰 회암사였지만, 좋은 묫자리를 얻으려는 지방 토호들과 화재 등으로 인해 결국 소멸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명종실록>에 “유생들이 회암사를 불태우려 한다”(명종 21년; 1566년)는 기록이나 <선조실록>에 “회암사 옛터에 불탄 종이 있다”(선조 28년; 1595년)는 기록 등이 나오는 것을 보면 1566년과 1595년 사이에 불에 타 폐사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97년부터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연구원과 경기도박물관이 발굴 조사한 결과, 폐사의 원인은 화재였음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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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 전시회와 답사 프로그램 이용해 볼 만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오는 것이 관광이라면, 여행은 자신이 직접 식단을 꾸린 후 밥상을 차려 식사를 하는 것일 게다. 불국사나 석굴암 등은 관광 코스로서는 제격이다. 준비를 하지 않아도 자료나 교통 면에서 이렇게 편리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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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발가벗은 자기를 느껴보고자 떠나는 폐사지 여행은 알아서 밥상을 차려야만 한다. 회암사터를 찾아가기 전에 참고할 만한 정보가 있어 소개한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경기도박물관(www.musenet.or.kr)에서는 ‘묻혀있던 조선최대의 왕실사찰 회암사 불교문화전’을 열고 있다. 오는 10월 5일까지 계속될 이번 전시회에는 회암사터 관련 유물 250여 점이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또 경기도박물관에서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오는 31일 회암사 답사를 나간다. 그런데 마냥 좋아하지 말 일이다. 이미 예약이 끝나 남은 자리는 짐칸밖에 없다고 하니 말이다. 조금 기다렸다가 9월 28일 제2차 답사 프로그램을 고려해볼 만하다. 무료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경기도 박물관 유물관리부(031-288-5380~5387)에 사전 접수를 해야 한다.
한편 떠나기 전에 미리 회암사터 홈페이지(www.hoeamsa.co.kr)에 들어가 지도 정보 등 각종 자료를 참고하는 것은 상식인데, 토요일과 일요일에 회암사터를 찾을 이라면 양주별산대놀이를 보는 것도 권할 만하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3시에 무료 공연이 펼쳐지는데, www.sandae.com에서 신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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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낙엽 떨어지는 한 가을에 폐사지에 들었다가 감정을 제어하지 못할 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막 가을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 지금이 폐사지를 돌아보기에는 제격이다. 가로막는 것 없이 탁 트인 폐사지에 서면 일단 덕지덕지 치장을 하지 않은 모습에서 솔직함을 만날 수 있고, 폐허 그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상함을 느낄 수 있다. 온전한 자기를 만날 수 있다. 이번 주말에는 폐사지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어떨까. 양주 회암사터로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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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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