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비폭력 저항', 그 참뜻은?

월터 윙크, <예수와 비폭력 저항>

등록 2003.08.30 10:47수정 2003.09.0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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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진

'비폭력'은 너무 자주 오해된다. 우선 용어 자체가 부정적일뿐더러, 왠지 '비폭력'이라는 말은 악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기보다는 비겁하게 회피하는 듯한 어감을 준다. 그러기에 어떤 경우에 '비폭력'은 불의한 권력에 굴복하라는 주장처럼 취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비폭력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간디는 비겁자에 지나지 않았던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가 가장 싫어하고 죄악시했던 것이야말로 '비겁'이었다. 그는 불살생, 비폭력을 절대적으로 주장하면서도 대적을 미워함 없이 죽을 각오로 저항할 실력이 없거든 차라리 무기를 들고서라도 힘껏 싸우다가 죽으라고 했다. 그럴지언정 구차하게 살려고 도망치거나 결코 빌붙지는 말라는 것이다.

간디가 본받고자 했던 예수도 마찬가지였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도 돌려대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 등의 예수의 가르침은 비겁하고 심약한 자들의 행동 윤리가 아니었다.

그의 진의는 "악한 자에 맞서서 폭력적으로 대응하지 말라"는 뜻으로, 도피와 싸움의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난 제 3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하나의 고정된 법을 말한 것이 아니라, 민중의 신음을 가시돋친 풍자로 표백하여 역설적이면서도 창조적인 대안을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그럼에도 제임스 왕(최초의 영어번역 성경 KJV 흠정역을 만든 영국왕)이 고용한 궁중 번역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의도적으로 오역하였고 그러한 잘못된 번역은 계속 이어져왔다.

저자 월터 윙크(성서학자) 박사는 백 페이지 안팎의 이 작은 책을 통하여, 예수가 가르쳤던 비폭력 저항의 길이 무엇이었는지 그 역사적 배경과 함께 명쾌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예수는 무슨 고상한 이상주의적 박애정신을 말하려 했던 것과는 상관없다.

예수의 이야기를 좀 더 신중히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다음의 의문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왜 왼뺨이 아니라 오른뺨이었을까? 어떻게 오른뺨을 칠 수 있나? 왜 5리를 가자고 하거든 10리를 가 주어라고 말할까? 당시 강제로 짐을 지워 5리를 가자고 하는 자들이 있었음을 반영하는 말일텐데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였을까? 예수의 이러한 가르침을 듣는 청중은 누구인가? 막강한 로마제국 지배 하에서 살던 예수가 이러한 길을 가르쳤다는 것은 또 다른 제국의 지배를 당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클 것이다.

저자는 예수나 간디 모두 "무저항주의"가 아니라, "비폭력 저항"을 가르쳤고 죽기까지 그것을 몸소 실천해 보였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또한, 폭력과 비폭력 저항의 구체적인 여러 사례를 들어 어느 것이 더욱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인지도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면서 어느 것이 더 성공적인가 보다는 어느 것이 더 실패하기 쉬운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비폭력이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나 사상자와 파괴는 폭력 전술보다 훨씬 덜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더욱이 바닥 공동체(grassroots)에서 비폭력 저항을 치밀하게 훈련하고 조직하여 실천하면 대개 비폭력 저항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보통 폭력적인 투쟁의 방식은 통치자들을 바꿀 수는 있을지 모르나 통치 그 자체는 바꾸지 못한다. 까닭은 폭력적 투쟁 방식은 위계적/권위주의적일 수밖에 없고, 이같이 중앙 집중화된 권력구조는 승리를 얻은 후에라도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공포정치는 스탈린(소련), 모택동(중국), 벨라(알제리아), 호메이니(이란), 피노체트(칠레), 김일성(북한) 등의 예에서 보듯이 폭력혁명의 일반적 특징으로 나타났다. 흔히 폭력 혁명이 정치권력 장악에 과도하게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폭력의 악순환이라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비폭력 혁명은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켜 평화적인 권력이양으로 마감하기 위한 프로그램(간디)이라는 점에서 폭력혁명과는 중요한 차이를 갖는다.

미국의 지구적 도청망 '에쉴론'(Echelon)의 예에서 보듯이, 이제 우리는 군사 및 전자기술의 눈부신 발달에 의한 거대한 감시, 억압체제나 다름없는 소위 "국가안보체제" 하에서 살고 있다. 9.11 테러와 같은 단발마적 폭력 투쟁이 어떠한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는 이미 경험한 바와 같다.

혹시 폭력 투쟁을 하고 싶더라도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으며, 자의든 타의든 비폭력 투쟁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그 어떤 전쟁이나 테러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이 시대에 비폭력 저항의 길은 반드시 깊이 숙고해 봐야할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촛불시위, 반전평화운동, 작금의 곳곳에서 연달아 벌어지는 사회갈등들을 보면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대안적 차원에서 비폭력 저항 훈련을 모색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예수와 비폭력 저항 - 제3의 길

윌터 윙크 지음, 김준우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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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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