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편지>를 열 배 맛있게 읽으려면

아주 흔한, 그러나 너무도 고귀한 야생초

등록 2003.08.21 15:41수정 2003.08.2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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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진

아무리 귀한 것이더라도 누군가 그 진가를 알아주는 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우리 산야에 어디든 잘 자라는 야생초들이 그랬다. 그들은 보이는 족족 뽑아 없애야할 귀찮은 "잡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들풀과 가장 가까이 있는 농부들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농부들에게 들풀이란 채소가 자라는 걸 방해하므로 박멸시켜야할 성가신 존재가 된 지 오래이지 않던가.

시골에서 자란 내가, 여태까지 들풀 이름하나 제대로 몰랐던 까닭도 그들을 경시하는 풍조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던가. 어머니를 도와 넓디넓은 참깨 밭 김매기를 하느라 죽을 고생한 기억이 새롭다. 해가 져서 캄캄해질 때까지 쭈그려 앉아 김매기를 하곤 했는데, 나중에 와서 둘러보면 얄밉게도 녀석들은 어느샌가 참깨보다 더 크게 자라있었다. 그러니 농부들이 들풀이라면 지긋지긋해 하며 제초제까지 마구 뿌려대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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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개비꽃 ⓒ 정병진

그런데 황대권 선생의 이 책은 들풀에 대한 우리의 기존 시각을 전면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그에게 들풀은 쓸데없이 자라는 "잡초"가 아니라 "야생초"로 불려야 마땅한 존재다.

보통의 채소들은 무수한 품종개량을 거치면서 종의 다양성이나 고유한 특성을 잃어버렸다. 반면 야생초의 경우, 토종이 사라진 시대에 꿋꿋하게 남아 있는 토종 중의 토종들이며 산야의 기운을 듬뿍 간직한 보물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해서 그는 야생초 연구소가 만들어져서 그들이 지니고 있을 무한한 잠재력을 밝히고 이 땅의 사람들이 널리 이용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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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는 우리 밥인데..냠냠 ⓒ 정병진

저자는 안기부에서 조작한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85년에서 98년까지 13년의 세월을 억울하게 감옥 안에서 보내야 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야생초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야생초 연구에 빠져든다.

교도소 운동장, 그 비좁고 막혀있는 공간에서조차 야생초들은 잘도 자라났다. 숱한 사람들에게 뽑히고 밟히면서도 그들은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여 돋아나곤 했던 것이다. 저자는 운동시간을 이용하여 교도소 운동장의 한쪽 구석에 밭을 일구고 거기다 들풀들을 소중히 키웠다. 이 때문에 함께 복역하던 이 선생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반대와 마찰을 빚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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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를 찾아라 ⓒ 정병진

하지만 누구도 들풀에 지극 정성을 다하는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장기수들에게 일년에 두어 차례 주어지는 사회 참관 시간에도 들풀을 찾느라 땅에다 코를 박고 보낼 정도였다.

저자는 야생초를 자세히 관찰하고 관련 책들을 공부하면서 인간에서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 성찰의 지평을 넓혀간다. 교도소는 무슨 저술을 하여 출소할 때 원고를 들고 사회에 나올 수 없다고 한다. 때문에 그가 깨달은 것들은 죄다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의 형식을 통해서 밖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야생초 편지"인 것이다.

야생초를 관찰하고 그것을 입말 섞인 편지글로 써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면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편지마다 정성껏 그려 넣은 그의 빼어난 세밀화들은 우릴 탄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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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화 그리기 ⓒ 정병진

그러나 이 책을 더욱 맛있게 읽으려면 야생초들을 찾아서 직접 들로 나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번에 여름 독서교실을 하면서 도서관 아이들과 가까운 들판에서 들풀 채집을 해보았다.

쇠비름, 달개비, 며느리밑씻개, 강아지풀, 여뀌, 분취, 나팔꽃, 명아주, 맨드라미, 방동사니, 익모초, 쥐꼬리망초, 바랭이, 배초향, 나도개피, 개망초… 준비해간 식물도감을 찾아가며 들풀 하나 하나의 이름과 특성을 살펴본 것은 아이들에게 보물찾기와 같이 신나는 시간이었다.

날씨가 너무 뜨거워서 표본들을 가지고 도서관에 다시 돌아와 세밀화 그리기를 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야생초를 직접 세밀화로 그려보고 그것을 발표하게 하였더니 다들 열중하여 잘도 그려낸다.

책에서만 보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들에 나가 직접 관찰해 보고 그림까지 그리게 했으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야생초 편지 - 출간10주년 개정판

황대권 글.그림,
도솔,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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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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