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문화평론가 김갑수를 만나다

그가 말하는 책과 음악, 방송 이야기

등록 2003.09.02 08:55수정 2003.09.0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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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연한 기회에 인터뷰의 기회가 찾아올 때가 있다. 특정인을 만나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에 대해 좀더 알게 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즉석 인터뷰가 지닌 즐거움이 아닐까?

도쿄 필하모닉의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을 나오던 길에 우연히 문화평론가 김갑수씨와 마주치게 되었다.


"어, 김갑수씨 아니세요? 안녕하세요?"
"어, 저 아시는 분이세요?"
"아뇨, TV에서 봤죠."
"오늘 공연 어떠셨어요? 괜찮았나요?"
"어, 저는 좀…. 저도 오마이뉴스에 평론 기사를 씁니다."
"아, 그러세요? 저도 문화일보에 공연 리뷰 쓸 건데 서로 정보 좀 교환합시다."

문화 평론가 김갑수
문화 평론가 김갑수TV 책을 말하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예술의 전당 앞마당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계속되었다. 그가 진행하는 책에 대한 라디오 프로그램과 그가 패널로 있는 프로그램 'TV, 책을 말하다'에 대해 물었다.

"책 프로그램을 두 개나 진행하고 계신데, 일주일에 책을 몇 권 정도 읽으세요?"

"정독하는 책은 몇 권에 불과하고 다른 것들은 대충 내용을 훑어보는 식으로 읽죠. 그렇게 많이 읽지는 못해요. 한 다섯 권 정도."

"많이 읽으시네요. 'TV 책을 말하다'에서 진행하시는 거 보면 책에 대해 굉장히 날카롭게 비판하시던데, 그 비판 내용이 대본에 있는 건가요? 아니면 본인께서 직접 생각하시는 것들을 이야기하시는 건가요?"


"물론 대본에 있는 내용이긴 하지요. 방송 대본의 경우, '하하하'라는 웃음까지도 적혀 나오거든요. 하지만 대본을 만들기 전에 회의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 교환을 해요. 그 때에 제 생각과 느낌을 이야기하는 거고, 그게 대본이 되어 나오면 방송을 진행하는 거예요. 사실 대본을 다 외울 수는 없으니까 제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을 대본에 기초하여 이야기하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TV, 책을 말하다'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이 프로의 담당자가 최근 여러 시비에 휘말리면서 곤경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물론 그의 도덕적 책임이 크지만, 그렇다고 지나친 도덕주의를 강조하며 한 인간을 궁지로 몰아가는 사회 현상에 대해 속이 상한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그는 이와 같은 지나친 도덕주의에 관한 비판의 글을 쓰고 싶은데, 네티즌들이 엄청나게 비난할 것 같다며 웃음을 던진다. 긴 글일 경우 논리적인 전개를 통해 지나치게 도덕성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 충분히 비판할 수 있을 텐데, 자신이 담당한 칼럼은 지면이 좁은 관계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도 그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리고 논리적 뒷받침이 충분하다면, 칼럼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 무섭잖아요. 특히 네티즌들이 한번 들고 일어나면 정말 정신 없더라구요. 지난번에도 그런 일이 있었거든요."

그의 이런 답변은 너무도 의외였다. 내로라 하는 대한민국의 유명 평론가가 네티즌들의 시선을 두려워할 때도 있다니…. 그는 덧붙여 말한다.

"오연호씨, 참 생각 잘한 것 같아요. 처음 <말>지도 그렇고, <오마이뉴스>도 이렇게 클 줄은 아무도 몰랐거든요. 다들 잘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매일 <오마이뉴스> 들어가 봐요. 성공했지요."

네티즌들의 힘이란 어찌 보면 즉흥적일 수도 있지만, 사회 전반을 이끌어 가는 작은 목소리들의 집합이기도 하다.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바로 인터넷 공간이고, 인터넷이 보급된 이상 이제 우리 모두는 그 공간을 벗어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그들의 목소리를 두려워할 줄 알고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것이 진정한 평론가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된다. 문학이라는 틀 속에 갇혀 문자 매체의 한계에 머무르지 말고, 멀티미디어를 수용하는 태도가 평론가들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화평론가 김갑수씨는 발전 가능성이 있는 평론가이다. 귀를 막고 선 채 자신의 잣대로 다른 사람의 글과 음악을 난도질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태도를 지녔기 때문이다. 본인이 가진 날카로운 관점을 견지하면서 다른 이들의 관점을 수용할 줄 아는 긍정적 평론가의 자세를 언제나 유지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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