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가짜다?..주목할만한 이주의 새책들

<마지막이 아닌...> <서울은 가짜다> <만화로...> <1인자를 만드는...>

등록 2003.09.02 17:30수정 2003.09.0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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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쓰고 슬픈가?
- 이정하 시선집 <마지막이 아닌 것처럼>


명예의전당
애써 동서양의 고전과 명멸했던 수많은 로맨스영화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두 알고있다. '지독한 사랑은 파멸'이라는 쓰지만 엄연한 명제를.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라는 시집과 산문집 <내가 길이 되어 당신께로> 등을 통해 '사랑'이란 단어만 들어도 눈가가 시큰해지는 사랑지상주의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이정하(41).

최근 독자들과 만난 <마지막이 아닌 것처럼>(명예의전당)은 '슬픈 사랑의 전도사' 이정하의 시 52편과 그 시가 탄생한 배경까지를 덧붙여 묶었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시집과 산문집의 중간형태에 서있는 책. 이번 책을 통해 이정하는 왜 인간의 사랑 속에는 기쁨과 환희보다 절망과 한숨이 더 많이 내포된 것인지를 들려준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낮은 곳에 있고싶었다/낮은 곳이라면 지상의/그 어디라도 좋다/찰랑찰랑 고여들 네 사랑을/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한 방울도 헛되이/새어나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그래, 네가/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너를 위해 나를/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나의 존재마저 너에게/흠뻑 주고싶다는 뜻이다/너는/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위의 책 중 '낮은 곳으로' 전문).

이정하는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 정염과 열정의 불같은 사랑이 아닌 낮은 곳으로 스스로의 몸을 낮추는 물과 같은 사랑을 노래함으로써 물신(物神)에 흔들리는 21세기의 즉물적 사랑을 꾸짖고 있다. 그 꾸짖음은 사랑으로 인해 수많은 날들을 울고 웃었음에도 여전히 진실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없는 우리를 아프게 매혹한다.

거칠고 엄혹한 군사독재의 시절을 겪은 탓에 우리 시단(詩壇)은 집단에 대한 사랑이 아닌 개인의 사랑을 노래한 작품을 한 수 아래의 것으로 치부한 경험이 없지 않다. 그러나 결국 시의 최고봉은 서정시이며, 그 서정시의 가장 종요로운 밑거름이 사랑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터.


비 내리는 밤. 창가에 서서 쓸쓸히 젖어 가는 어두운 골목길을 내다보며 <마지막이 아닌 것처럼>을 읽노라면 진원지가 불분명한 서러움이 가슴을 죄어온다. 왜 사랑은 이토록이나 쓰고도 슬픈가? 이정하의 책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들려줄까?


멀리 제주에서 서울을 야유하다
- 고정국 시집 <서울은 가짜다>



리토피아
시조라는 고전적 양식을 통해 속화되어만 가는 현대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해부해온 시인 고정국이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서울은 가짜다>(리토피아)라는 시집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서울'이라는 최첨단의 도시사회가 품고있는 각종 허위와 위선에 대한 고정국의 신랄한 풍자.

'패러디 인 서울'로 이름 붙인 일련의 연작시들이 특히 그렇다. 파도와 바람의 섬 제주에서 네온사인과 매춘의 도시 서울을 향해 쏘아대는 시인의 뼈있는 독설. 그 말들은 비단 서울사람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줄줄이 청문회 마당/립스틱이 짙은/장미//입이 큰 사모님들/맞고자질이 한창이다//질세라, 우리집 줄장미/천 개 입쌀이/터지고 있다 (위의 책 중 '패러디 인 서울·1' 전문)'.

멀리 바다 건너에서 들려오는 세상을 향한 입바른 소리. 고정국은 낮지만 맵찬 목소리로 묻는다 '자본과 향락의 서울거리를 떠도는 당신들의 삶은 과연 행복한가?'

책을 접한 평론가 고명철은 "근대적 풍경의 온갖 미혹 속에서도 부화뇌동하지 않고, 현실에 대한 응전력을 키우는 시인"으로 고정국을 평했다.


젊은 만화가 14인 "전쟁은 악이다"
- 만화집 <만화로 평화만들기>


바다출판사
이해당사자가 아닌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이상 선하고 아름다운 전쟁이란 세상에 없다. 올 봄 벌어진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도 마찬가지다.

미군 전격기의 융단폭격에 팔다리가 날아간 어린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어머니들. 누가 무어라 변명해도 전쟁은 부정할 수 없는 절대악이다.

바로 이 전쟁의 악마성을 비판하는 것이라면 만화가들도 예외일 수 없다. <천하무적 홍대리>의 홍윤표, <비빔툰>의 홍승우, <미선아, 효순아>의 강도영 등 젊은 만화가 14명이 '전쟁반대, 평화수호'의 슬로건 아래 뜻을 모아 출판한 <만화로 평화만들기>(바다출판사)는 전쟁이 왜 용서할 수 없는 악(惡)인지를 만화가 가진 촌철살인의 힘을 통해 다시 한번 보여준다.

전례가 드문 판화체의 만화로 제국주의의 폭력과 야만성을 비판한 고경일의 작품과 이라크 전쟁에서 죽어가는 소년과 한국의 소녀가 고통과 상처를 함께 느낀다는 변병준의 '안녕, 친구야' 등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처를 다독이는 작지만 따뜻한 힘이 될 듯하다.


훌륭한 보스를 만드는 건 좋은 참모
- 이철희의 <1인자를 만드는 참모들>


위즈덤하우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독불장군에게는 미래가 없다. 하지만 인간이란 보잘것없는 성공과 작은 성취에도 자만심을 갖기 쉬운 존재. 자만심에 도취된 지도자가 독단과 독선에 빠진다면 그 조직과 구성원의 미래는 어둡다. 그런 까닭에 지도자를 보필하는 참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1인자를 만든 참모들>(위즈덤하우스)은 동서고금 속 역사적 인물들을 통해 '훌륭한 지도자를 만든 건 빼어난 참모'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불굴의 의지, 포용력과 친화력, 카리스카 등 지도자의 기본품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행보를 같이 하는 참모라는 저자의 주장은 빌 클린턴과 딕 모리스, 유방과 장량, 이성계와 정도전, 수양대군과 한명회의 사례를 통해 설득력을 얻는다.

그렇다면 좋은 참모란 어떤 사람일까? '지도자의 능력과 자질을 파악하는 능력, 주저 없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용기, 해당 분야에 대한 미래예측력' 등이라고 책을 쓴 이철희는 설명한다.

지금, 마지막이라 해도 마지막이 아닌 것처럼

이정하 지음,
명예의전당,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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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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