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스파이?...
주목할 만한 이 주의 새책들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 <김정일 리포트> <운행과 창조> <화성은 끝나지 않았다>

등록 2003.09.16 13:54수정 2003.09.1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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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
- 최인석 장편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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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과비평사

최인석(50)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고통에 다름 아니다. 그의 문장 아래서 까발려지는 인간의 위선과 허위, 세상의 부조리와 불합리는 독자들을 거북하고 불편하게 한다.


그럼에도 최인석의 소설이 20년 이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뭘까? 그의 신작 장편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창작과비평사)는 위의 물음에 답하는 작품이다.

구원의 가능성은 물론, 바꾸어볼 여지조차 없는 강팍하고 건조한 세계. 도둑질을 일삼다 낙상해 죽은 아버지와 술주정뱅이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고아원에 버려진 심우영에게 세상은 '죽지 못해 살아야할 쓰레기장'과 다를 바 없다.

점령군으로 한반도에 눌러 앉은 미군들의 구두를 닦고, 그들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며 구차한 목숨을 연명하는 미군 클럽 웨이터.

순정을 바쳤던 첫사랑 영순은 조직폭력배의 정부(情婦)이자 알몸댄서로 전락하고, 내심 기다리던 엄마는 성별을 알아볼 수조차 없는 남루한 걸인이 되어 거리에서 쓰러진다. 뿐이랴, 빈곤한 육체와 동시에 타락한 정신을 꾸짖으며 우영을 노려보는 섬뜩한 푸른 눈을 가진 은행나무. 세상이 강요한 가난과 남루는 우영을 '도대체가 희망 한 점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러나, 절망의 벼랑 끝에도 손톱 만한 희망의 꽃은 피는 법.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순간마다 나타나 우영을 도와주는 '밥어미(식모)'와 '지구 반대편으로 통하는 우물을 파면 너와 세상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란 메시아의 잠언(箴言).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를 읽는 내내 암울했던 가슴은 이 대목에서 극적으로 반전한다. 비록 가능성이 희박할망정 희망이란 여전히 세상을 견디게 하는 가장 큰 힘.

구 러시아의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그의 영화 <향수>를 통해 말한다. "구원에 대한 희망이 있는 한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 최인석의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가 풍겨내는 향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1980년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최인석은 소설집 <내 영혼의 우물>로 제3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나를 사랑한 폐인> <인형 만들기> <아름다운 나의 귀신> <구렁이들의 집> 등을 내놓으며 독특한 세계해석 방식과 변별력 있는 구성법 등으로 주목받는 작가다.


도대체 김정일은 어떤 사람인가?
- 손광주의 <김정일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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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출판사

지하 100m의 공간에 두께 80Cm의 벽을 세워 올린 요새 '철봉각'에서 언제건 전쟁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는 군통수권자이자, 영화배우 출신의 유부녀와 개인 타자수, 기쁨조를 가리지 않고 취하는 호색한. 거기에 기민한 상황판단력과 정확한 정세해석력을 갖춘 전략가.

북한의 통수권자 김정일(52)은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이다.

<신동아> 기자생활을 통해 망명한 북한의 실력자 황장엽에서부터 다양한 북측인사를 접촉해온 손광주의 <김정일 리포트>(바다출판사)는 베일과 안개에 가려있던 김정일의 실체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책이다.

책은 김정일이 최고권력에 이르기까지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암투와 군부장악 과정, 한국전쟁 이후 전개된 북한의 숙청과정 등을 담고있으며, 이와 함께 김정일의 여자 관계와 용인술 등 사생활까지를 싣고 있다.

'북한 최고 권력자 김정일의 모든 것'이란 부제가 붙은 <김정일 리포트>는 상당 부분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진술을 토대로 구성된 탓에 대부분의 내용이 북한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를 받아들여 해석하는 것은 독자 개개인의 판단으로 남겨질 몫이다.


혹, 우리의 앎이란 습관이 아니었던가
- 프랑스와 줄리앙의 <운행과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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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시아카데미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전쟁이 진행되던 시절. 인도에 도달한 알렉산더의 병사들은 경악한다. 모래에 머리를 파묻은 채 며칠을 꼼짝 않고 견디거나, 수년간을 말 한마디하지 않고 지내온 묵언(默言)수행자를 본 것이다.

휘두르는 칼에도 전혀 두려움을 보이지 않는 그들을 병사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서양의 합리주의로 동양의 정신주의를 해석하기란 당연지사 힘들었을 터.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보잘것없는 지식(앎)으로 세계는 해석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파리7대학에서 중국사상을 강의하는 프랑스와 줄리앙의 <운행과 창조>(케이시아카데미·유병태 역)는 우리가 알고있다고 착각하는 모든 것들이 실상은 반복적인 패턴에 의한 습관이 아닌지 진지하게 묻고 있다.

저자는 동양(특히 중국)에 대한 우월주의로 점철된 서양의 사유관행을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중국적 사유체계의 정점에 있는 '운행'을 서구적 세계해석 방법인 '창조'와 동등한 위치로 격상시킨다. 이것이 동양학에 매료된 한 서양학자의 억지인지, 합리성이 담보된 새로운 이론인지를 판단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도 진행중인 연쇄살인범과의 전쟁
- 하승균의 <화성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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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의나무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자그마치 5년 동안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벌어진 9건의 살인사건.

속칭 '화성 부녀자 연쇄살인'으로 불리는 이 끔찍한 사건의 범인은 사건발생 17년을 넘긴 오늘까지도 잡히지 않고 있다. "화성에선 비오는 날 붉은 옷을 입고 외출하지 말라"는 웃지 못할 유행어까지 남긴 채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는 화성 연쇄살인사건.

<화성은 끝나지 않았다>(생각의나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은 이 사건의 담당형사였던 하승균씨의 비망록이다. 그는 14살 여중생에서부터 70대 할머니까지를 가리지 않고 강간·살해한 범인을 '악마'로 규정하고 그의 범행을 처절하리 만치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와 함께 책에는 살인마를 체포하지 못한 형사로서의 죄책감과 아직도 포기하기 못한 검거의지까지가 담겨있다.

최근 상영된 영화 <살인의 추억>에 등장하는 형사들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하승균씨는 "영화에서는 화성사건이 완전범죄인 것처럼 묘사됐지만,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았을 뿐 살인범에 대한 나의 추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말로 '악마'와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밝혔다.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

최인석 지음,
창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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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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