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쇄신파의 대의명분

[김재홍 칼럼] 나이보다는 정치노선과 족적을 따져야

등록 2003.09.03 01:00수정 2003.09.0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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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에 쇄신론의 불이 지펴졌다. 기획위원장인 원희룡 의원이 60세 이상은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말고 용퇴하라고 첫 부싯돌을 그었다.

보수 정당에서 원로층을 대상으로 공격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주요 결정권을 쥔 당권파가 대부분 원로층일 뿐 아니라 소속 의원 다수가 60세 이상인 현실을 감안하면 보통의 용기로는 생각할 수 없는 개혁적 행동이다.

한나라당 의원 중 현재 60세 이상은 60%를 상회한다. 상대적으로 젊은 네티즌들이 보았을 때는 '경로당이냐'고 할 지 모르지만 단순히 나이 많은 게 죄가 될 수는 없다.

당 쇄신운동 걸맞은 역사인식 가져야

오히려 바른 정치의 길을 가기만 한다면 나이가 들수록 경륜도 쌓이는 법이다. 뒤집어 말하면 나이가 아니라 정치노선과 족적이 기준이 돼야 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원희룡 의원의 발언에 이어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서 5·6공 출신은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부정부패와 비리 연루자는 나가라는 노성도 들린다. 이제야 비로소 쇄신론과 정풍운동에 걸맞은 정치노선과 이념을 마련하는 것 같다.

5공 정권은 1980년 5월 광주시민항쟁에 대한 정치군인들의 살상진압 이후 내란을 통한 정권찬탈로 수립됐다. 이는 1995년 말 전두환·노태우씨의 구속과 그 이후 재판을 거쳐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확정된 역사적 사실이다.


그때 내란의 주모자들이 집권을 위해 조직한 정당이 민정당이다. 지금 한나라당의 당권파를 비롯한 핵심그룹은 그 민정당의 공천으로 국회의원이 돼 정계에 입문하고 출세가도를 달려 온 인사들이다.

당시 지역구 선거를 거친 것도 아니고 비례대표로 '임명직 의원'이거나 청와대 고위 비서관으로 출발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이 바로 우리 사회에서 구시대적 주류의 한 줄기에 해당한다.


작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주류 논쟁도 박정희 시대 키워진 기득권층과 함께 5·6공의 귀족들이 그 주체였다. 민정당은 전두환 씨를 수반으로 한 5공 정권 내내 이른바 제1중대, 제2중대 야당을 거느린 유일당적 집권당이었다.

내란 세력의 후예들이 좌우해서야

그러나 노태우씨의 6공 정권 아래서 민정당은 김영삼(YS)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과 3당통합을 이루어 민주자유당(민자당)으로 재창당됐다. 당시 YS는 중학생 때부터 책상 앞에 써붙였다는 '대통령이 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정치역정과 맞지 않게 정치군인 출신 내란 세력과 합당했다.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이 자랑스럽게 내세워 온 것은 그 3당합당에 끝까지 반대하고 따라가지 않았던 '선명노선'이다.

대통령의 꿈을 이룬 YS는 1993년 내란 세력의 혈통을 희석시키기 위해선지 민자당을 신한국당으로 개칭했다. 그후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후보가 당명을 다시 한나라당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렀다.

YS 정부 시절에는 그래도 통일민주당 출신이 신한국당의 당권을 관리했다. 그러나 YS가 임기말 탈당하고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개칭한 후 당내에서 응집력이 강한 계파는 민정당 출신이었다. 이들 민정계는 또 한국정치에서 가장 유력한 변수 노릇을 하는 지역적 기반을 영남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수도권 싸움에 좋은 영향을 줄 지는 의문이다.

한나라당 쇄신파는 냉철한 역사인식 속에서 대의명분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현실적 선거전략에서도 제대로 된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

조선일보 비판한 양심과 용기의 신영국 의원

쇄신파와 함께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는 발언은 지난 8월 13일 조선일보 사주측이 신문지면을 사유화한 데 대한 신영국 의원의 비판이었다. 그는 조선일보가 방일영 전 회장의 사망 관련 기사를 1면 주요 자리에 이틀간, 그리고 6면의 전면에 무려 나흘간이나 편집한 것을 사회적 공기로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 의원은 언론이 개인의 것도 아닌데 사주 가족이라 해서 지나치게 지면을 할애하는 것을 보고 한마디 안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정치인이 거대 족벌신문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판한 일은 우리 역사상 거의 처음으로 그만큼 용기가 커야 가능했다.

신 의원도 민주계이지만 한나라당 소속이다. 한나라당이 연로한 보수 정객들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혁신 운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쇄신파와 신영국 의원 같은 올곧고 용기있는 인사들이 발언권을 가질 때 한나라당에 미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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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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