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찌보면 우리와는 먼 시대 사람이다. 이 방정환 선생 댁에 어느 날 도둑이 들어 돈을 내놓으라고 칼을 들이 대었다. 방정환 선생이 순순히 돈을 내어 주자 그 도둑은 얼른 뒤돌아 나가려고 하였다.
선생은 그 도둑에게
"돈을 주었으면 고맙다는 인사는 하고 나가야 되지 않느냐?"
하고 기어이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가라고 호령했다. 기가 막힌 도둑이 하라는 대로
"그래, 고맙소."
한 마디하고 돌아섰다. 그러나 잠시 후에 도둑은 순사(일본의 지배 아래 있을 때의 경찰)에게 붙잡혀 왔다.
순사가 방 선생에게
"선생님 이놈이 선생님 댁에서 돈을 훔쳐 갔지요. 이렇게 붙잡아서 돈을 되찾아 가지고 왔습니다. 받으십시오."
하고 의기 양양해서 돈을 내밀었지만 방 선생은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요. 난 이 사람에게 돈을 주었소. 돈을 훔쳐간 것이 아니었소. 돈을 훔쳐간 사람이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나가는 법이 어디 있겠소. 이 사람은 분명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져갔소. 그러니까 훔쳐간 것이 아니지 않소."
이 말을 들은 순사는 도둑에게 '고맙습니다'하는 인사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도둑은 분명히 그런 적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말을 들은 순사는 어쩔 수 없이 그 도둑을 놓아주고 말았다. 순사가 가고 그 사람은 방정환 선생 앞에 꿇어 앉아 잘못을 빌었고, 이 일이 있은 뒤로 평생 방정환 선생의 일을 도와드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용서가 한 사람을 착하고 남의 도울 줄 아는 사람으로 바로잡아 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남쪽 바닷가의 작은 섬에 애양원이라는 작은 고아원이 있다. 옛날에는 아름다운 바닷가에 있는 아주 조그만 섬이었으나, 지금은 여천산업공단의 꺼지지 않는 불꽃을 바라보는 산업시설 안의 외로운 섬이 되어 버린 곳이다. 이 애양원이라는 이름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한 손양원 목사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 받자는 뜻으로 만든 것이다.
1936년 일본의 억압에 항거한 순천노회의 원탁 사건으로 애양원 교회를 비롯한 순천노회 목사와 장로들이 대부분 검거되어 구속되었다. 그 당시 애양원 교회를 담임하던 손양원 목사도 구속되었다. 그는 원탁회 사건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일제의 신사참배에 대한 강력한 반대
운동을 벌이다가 광주형무소에서 줄곧 옥중생활을 한 독립투사다.
1948년 여순사건 때 그의 아들 동인과 동신 두 형제가 남한에서 일어난 빨치산에게 학살되었다. 그 때 자신의 아들을 죽인 학살자 안재선을 감옥에서 풀어 주라고 사정을 하여 살려낸 후 양아들로 삼는 놀라운 신앙을 보여 주었다.
손양원 목사는 1950년 6·25 사변으로 공산군이 남침 중에 교회 장로들이 배를 준비하고 손 목사에게 피난을 권유하였으나 교인들을 두고 혼자 떠날 수 없다고 끝내 거절하였다. 공산군이 점령한 뒤에도 조금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후퇴 직전 손 목사는 많은 기독교인과 우익인사들과 함께 여수에서 가까운 미평 과수원에서 1950년 9월 28일 총살당해 순교했다.
이렇게 잘 알려진 손 목사의 정신이 얼마나 이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 또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진정으로 용서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깨닫게 된다.
우리 어린이들이 진정으로 남을 용서하고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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