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며 살 시간이 없어요

휴머니즘이 세상의 기본, 인본주의협 이정운 총재

등록 2003.09.06 09:36수정 2003.09.0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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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영
영국 극작가 버나드쇼가 시골집에서 숨을 거두기 전 스스로 묘비명을 남겼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신문에서 이 글귀를 오려 평생을 수첩 속에 넣고 다니며 항상 자신을 채찍질하는 사람이 있다. 국제인본주의협회 이정운(63) 총재가 바로 그다.

그의 인생과 철학은 남다른 데가 있다. “우물쭈물 살지 말자는 것이 제 좌우명입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버나드쇼도 저런 묘비명을 남겼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최선을 다해 살아도 세상은 짧습니다.”

그는 사단법인 국제인본주의협회 총재이자 대전고속버스터미널 사장, 한밭대 어학교육원 교수, 목원대 국제교육원 교수직을 맡고 있다. 맡은 직책이 많은 만큼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그가 짐짓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일들을 하게 된 배경에는 다양한 사연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친척이 참 좋았지만 살면서 이 속담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꼈어요. 서로 누가 잘되나 경쟁의식은 많지만 휴머니즘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어린시절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그의 말을 이해했다. 그는 고학으로 학교를 마쳤다. 6.25 전쟁 직후 지독히 가난하던 시절, 먹고 살기 급급한 농촌 집안에서는 돈이 생기면 땅을 사고, 소를 사고, 논을 샀지 공부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가 공부를 하기 위해 차비만 들고 가출을 한 것은 초등학교 졸업 후였다. 그리곤 고아원을 전전하면서 공부를 계속했다.


“그동안 한 고생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학적부도 다 고아로 돼있고 울면서 공부를 해왔어요. 고향인 충남 연산에서 나와 전주, 광주, 서울을 떠돌며 내가 벌어서 생활하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 도둑질 빼고 다해봤어요.”

식당음식배달, 신문배달, 신문팔이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점심은 생각지 못했고 12시~1시까지 신문을 팔고 돌아다니다 전기도, 난방도 안 되는 고아원에서 남은 신문을 방에서 불 피우며 겨울을 났다. 그리고 17살이던 해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모든 친척들이 자연스럽게 멀어져갔다.


“내가 성공을 한 후에 친척을 도와줬어요. 친척에 대한 그리움이 늘 있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사회에 나와 사업도 해보고 실패할 때도 있는데 그 때에는 누구한테도 기댈 수 없고 손을 잡아주는 친척도 없다는 것을 뼈가 저리게 실감했습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생각해보니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위로와 격려를 해주고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 사람도, 기쁜 일이 있을 때 가슴으로 웃어주고 기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결심한 것이 친척들을 도와주지 말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자는 것이었다.

“서구에서 들어온 중산층 이상 사람들의 격식 있는 단체가 아니라 가슴으로 만나는 인간적인 단체, 서로 만나 가슴으로 위로하고 기뻐해 줄 수 있고 한국에서 국제무대로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이 뭘까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연유에서 그가 설립한 것이 바로 사단법인 국제인본주의협회. 지난 88년 5월에 설립한 국제인본주의협회는 다름 아닌 휴머니즘 클럽이다. 300여명 회원, 연 3000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봉사활동을 진행하며 장학사업,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노숙자, 신체장애자들 지속적으로 돕고 있다.

“현재 러시아 지역본부, 일본지역본부가 있습니다.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죠. 앞으로는 유럽, 미국 등지에도 지역본부를 두고 한국에서 만든 휴머니즘 클럽을 세계적으로 퍼트리는 목표를 갖고 있어요. 회원들도 적극적으로 후원해주고 있습니다. 응집력과 가슴으로 만나는 우리 단체는 돈이 없어도 회원으로 들어올 수 있고 함께 활동할 수 있어요.”

어려서부터 영어를 좋아한 그는 혼자의 힘으로 대학까지 마쳤다. 지난 64년 대학 졸업 후 대전에서 학원 설립을 했지만 아는 것은 많은데 표현을 못하는 어려움을 겪은 그는 2년 만에 가르치는 것을 배우러 다시 서울로 갔다. 서울대학교 어학교육원을 다니면서 3년 동안 명강의 한다는 사람을 다 찾아다니며 청강을 했다. 노력 끝에 스스로 남을 가르치는 위치에 서게 된 그는 대전의 한 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의 강의가 입소문을 탔고 각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했다. 하루 강의가 8~12시간씩 됐고 600여명의 수강생이 몰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가 받는 학교의 강의료는 100% 전액 장학금으로 지급된다. 88년 국제인본주의협회를 창설하면서 지금껏 해오고 있는 그의 선행이다. 생활은 그의 아내가 운영하는 약국의 수입으로 해결하고 있다.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그는 지금도 어려운 학생들에게 한 푼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강의를 다닌다. 그래선지 그의 목은 항상 잠겨있다.

그의 생활은 ‘절약’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의 양복 주머니에는 승차권이 가득. 지금도 버스를 타고 다닌다.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면 술집을 못 간다는, 장학금을 받는다는 조카에게 어려운 학생들에게 양보하라고 권하는 이정운 총재. 그는 지금도 각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신문 내놓는 날 사람들이 내놓는 책을 주워서 갖고 온다.

이런 이 총재의 강직함과 신뢰감이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가보다. 그를 15년간 지켜본 대전고속버스터미널의 이구열 회장이 회사를 맡아달라고 삼고초려를 했고 올 5월부터 대표를 맡게 됐다.

“제 또 하나의 인생관은 항상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내 가정에서부터 직장, 주변 사람들, 모든 사람들에게 말이죠. 감동이 없는 예술은 성공할 수 없듯이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아내를 위해 집안일도 잘 도와줍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면 행복한 세상이 될 거 같습니다.”

그는 3년 더 강의를 한 후에 새내기 대학생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다. 철학을 공부를 한 후 에세이집을 남기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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