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사회적 종신형’에 관한 단상

사회 중압감이 나은 병폐 ‘마약 중독’... 그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

등록 2003.09.06 13:17수정 2003.09.0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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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토요일로 기억됩니다. 마약에 흥건히 취한 친구를 멱살 째 붙들고 문 밖으로 내몰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이었고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그날 집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허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언가 공허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 이미 해가 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으로 비치는 제 모습과 천정에 붙박인 형광등만을 번갈아 바라봤던 것 같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대략 오후 3시 정도가 되었을까요, 당시 페어필드라는 지역의 한 쇼핑센터에서 클리닝(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던 저는 청소용구를 가져오기 위해 화장실 복도에 들어섰습니다. 그 때 파란색 점퍼 차림의 사내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곧 잊었고 일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토요일 오후는 대체로 한가했지만 그날따라 자잘한 일들이 조금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건물 안으로 들어올 무렵 어디선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는 마음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보니 월남 국수 가게 주인 아주머니와 파란색 점퍼의 사내가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전에 화장실로 들어간 그 친구가 마약주사를 맞고 나타나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가게주인과 시비가 붙은 모양입니다.

주인 말을 들어보면 새로 내온 다른 손님의 음식에 이 친구가 침을 뱉었고 급기야 접시 채 땅에 버려 고함을 질렀더니 오히려 발로 유리 카운터를 걷어차며 대들더라는 것입니다. 토요일은 남자 식구들이 출근하지 않는 날이라 주인은 많이 당황한 듯이 보였습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머리털이 ‘삐쭉’ 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결국 그 친구를 쇼핑센터 문 밖까지 끌고 가 내쫓게 되었습니다. 한 1~2분 정도가 지났을까요, 그 친구는 어디선가 막대기 같은 걸 들고 자동문으로 들어와 저와 거리를 둔 채 무어라 알 수 없는 월남 말로 한동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곧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이윽고 케밥집을 운영하던 중동계 주인은 “마약은 조직과 연계되어 있으니 웬만하면 그냥 가도록 두라”는 충고를 해주었고 또 피해 당사자인 월남국수가게 주인 아주머니는 “고맙긴한데 쟤네들은 복수를 하니 다음부터는 그냥 가도록 내버려두라”며 “나도 손님을 생각해 소릴 질렀지 그렇지 않다면 그냥 내버려둔다”고 귀띔해주었습니다.

<2>

그 사건 이후로 저는 과연 무엇이 저로 하여금 그 친구의 멱살을 잡도록 만들었는가에 관해 곰곰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가게 주인을 보호해야겠다는 절실함, 또는 그 친구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마약중독자에 대한 강한 선입견 등등..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제가 마약이라는 것에 대해 커다란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선입견이 상대방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방식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죠. 다시 말해 ‘마약 쟁이=폐인’이고 ‘폐인=인격이하의 취급을 당해도 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국적불명(?)의 정의감 같은 형태로 나타났다는 생각입니다.

아마도 매일 저녁 화장실 청소를 할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바늘 주사기를 보면서 이와 같은 선입견이 더 굳어진 것 같고, 또 저보다 앞서 클리닝을 했던 한국인 친구가 화장실 청소 도중 주사바늘에 찔려 AIDS균에 감염되진 않았을까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는 말에 더욱 경각심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론을 내리고는 한동안 착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칭 ‘진보’라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제가 정작 ‘내 안에 있는 선입견’을 극복하지 못한 채 한 가여운 친구의 멱살을 잡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했구나라는 반성이 들었던 것입니다.

아울러 이 사건은 인종차별의 관점에서 또 다른 해석을 제게 안겨주었습니다. 만일 그 친구가 월남 출신 이민자가 아닌 코크고 파란 눈을 가진 전형적인 서양 친구였어도 과연 제가 멱살을 잡아 내 쫓을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월남 친구도 결코 작지 않은 키였음을 볼 때, 덩치의 크고 작음과는 관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혹시 저의 행동 속에 약소국가에 대한 무시, 또는 깔봄이라는 게 전제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 질문은 참으로 무겁게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3>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으나 족벌언론의 현실을 알게 되면서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저로서는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진보적 관점을 책이나 잡지 등 각종 저널을 통해 접하고 때론 의문을 가지고 때론 공감을 하며 공부해 왔습니다.

하지만 오랜 교육과정을 거치며 '진보적 가치'를 체험으로 익히지 않은 탓에 이런 가치들이 당위로만 여겨졌을 뿐, 정작 실천하는 과정에서는 마음 속 깊은 곳에 누적돼온 편견이 더 앞섰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월남 친구와의 일이 단적인 사례였죠.

‘반전’, ‘인권 중시’, ‘난민에 대한 보호’와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 등 ‘진보적 가치’라 여겨지는 생각들을 받아들이고 저의 것으로 만들고자 그간 노력해 왔지만, 월남전에 다녀오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월남이라는 나라에 대한 유약한 이미지가 은연중에 그들을 열등한 민족으로 여기도록 했고, 결국 마약중독자인 월남 친구를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는 생각과 행동을 가져오게 만든 원인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누적된 선입견이 현재 제가 추구하는 생각의 방향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저의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처럼, 한국전에 참전한 호주인 들의 시각 속에서 과연 한국은 어떤 나라로 자리 잡고 있는지, 어쩌면 한국을 열등한 나라로 보는 그들의 시각이 악명 높은 호주의 백호주의 정책을 튼실히 다지는 단초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차마 결론 내리기 꺼려지는 생각들마저 연신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제가 김밥집 주인이었다면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는 한국계 마약중독자를 (한국보다 잘 산다는) 일본인이나 홍콩인이 멱살을 잡아 내 쫓았을 때 마냥 고맙기만 할 것인가, 또한 고맙다면 과연 얼마만큼 진심에서 우러나는 고마움을 느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들었던 것이죠.

입장을 바꾸어 그들이 자칫 자기민족에 대한 멸시로 여기지는 않았을까를 생각해보면, 상식적인 선에서, ‘그렇다’는 결론이 어렵지 않게 나와 조금 놀라기도 했었죠. 뒤늦게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친했는데도 그 일이 있고난 뒤부터, 월남국수 가게 식구들의 눈빛은 예전과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저만의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최근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때까지도 특별히 예전처럼 살가웠던 기억은 없었습니다.

<4>

이번 경험은 마약에 관한 또 다른 기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지지난해였던가요, 필로폰 흡입 혐의로 구속된 탤런트 H씨 사건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극심한 보도 경쟁 끝에 ‘H씨, 섹스 딱 여섯 번’이라는 제목을 1면 머릿기사로 뽑는 스포츠신문의 선정주의를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월남 친구와의 일을 곰곰 생각하다보니 저 역시 비슷한 사고를 거쳐 조악한 행동으로 옮겼다는 반성 아닌 반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스포츠신문들은 ‘필로폰 흡입=공인의 추락'이고 ‘추락한 공인=사생활 보호 없다’는 과정을 거쳐 탤런트 H씨에 관한 사생활 파헤치기에 전력을 기울인 것 같고, 반면 저는 ‘마약중독자=인격무시’이고 ‘무인격자=멱살 잡아 내 쫓아도 되기’라는 동일한 과정을 거친 것으로 생각됩니다.

둘 다 인간애(愛)를 밑바탕에 둔 측은지심이나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탓이었습니다. 더욱이 저에겐 ‘시민기자’를 한다면서도 ‘왜?’ 라는 물음을 던지지 못한 잘못이 하나 더 추가될 수 있겠습니다. 이들이 왜 마약에 빠지게 되었는가를 좀더 고민했더라면, 강한 거부감보다는 측은한 마음이 앞서 동정심이 나타났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마약에 빠지게 된 과정이 결코 호기심이나 유치함의 발로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정작 그 원인을 알아보려는 노력은 소홀히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무엇 때문에 이들은 마약의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 것이었을까요?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는 사회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개인을 짓누르는 무거운 사회의 중압감이 일탈과 현실도피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을까요. 혹은 그것도 아니라면 참을 수 없을 만큼 뼈아팠던 과거의 경험이 마약에 손을 대도록 했을 수도 있겠지요. 애인의 죽음 또는 아물지 않은 실연의 상처처럼 말입니다.

경쟁으로부터의 낙오와 이에 따른 자괴감 또는 박탈감 때문일 수도 있겠고요. 호주나 한국이나 사회 돌아가는 구조가 비슷하다고 보면 전혀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최근 들어 ‘사회적 타살’이라 불리는 생계형 자살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고 보면은요.

생계형 자살이 ‘사회적 타살’이라면 사회 중압감이 가져온 마약중독은 ‘사회적 종신형’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무기징역 자에 대한 사면이 쉽지 않듯 마약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직 대통령의 외아들에 대한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5>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 난 뒤 제 머릿속에 담겨있는 ‘마약’이라는 단어와 연상되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도중 뜻하지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유독 사라지지 않고 강하게 남아 있는 이미지, 바로 지하철 천정에 붙어있던 ‘잘 보면 보인다’는 국가정보원의 광고 이미지였습니다.

대공수사 제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광고의 한 가운데에는 간첩선을 연상케 하는 잠수함이 수면 위로 반쯤 부상한 사진이 있었고, 그 한 켠으로 마약사범 제보를 알리는 전화번호가 있었습니다.

반공정책이 기세를 떨친 한국사회에서 아마도 국가기관에 의해 덧 씌워진 사상적 왼손잡이에 대한 ‘불온한(?)’ 이미지는 마약사범에 대한 이미지와 함께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완강한’ 형태의 거부감으로 형성되었다는 게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사상적 왼손잡이에 대한 부당한 편견 속에는 엉뚱하게도 ‘마약’처럼 강한 거부감을 가져오는 이미지도 함께 있었다는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계기로 과거 안기부에 마약수사 기능이 보강되었는지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시각에선 색깔논쟁에 무임승차함으로써 마약정책이 실효를 거둘 수 있었다는 아이러니한 주장도 제기될 법 하지만, 사상적 왼손잡이에 가해진 부당한 손가락질의 깊이를 더듬어본다면, 반드시 이미지의 덧칠이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온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6>

월남 친구와의 경험은 저로 하여금 마약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떠올려보도록 해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생계형 범죄이기 보단 조직범죄의 성격이 강한데다 마약이 가지고 있는 친자본적인 속성으로 말미암아 호주 뿐 아니라 한국도 더 이상 안전지대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올 상반기 동안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가 넘는 마약이 적발되었다고 합니다. 마약성분이 일부 포함된 한약재의 다량 검출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날로 증가한다’는 표현이 틀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마약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병폐라는 관점에서 원인에 대한 접근도 아울러 병행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입니다. 수요가 있어 공급이 있다는 냉소적인 시각보다는 ‘수요자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사회 복귀’를 목적으로 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중독성으로 말미암아 인간을 황폐화시킨다는 마약.
손 꼽히는 인류 공멸의 적이라는 마약.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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