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고사 보던 날

모의고사로 채웠던 하루와 한숨

등록 2003.09.06 15:17수정 2003.09.06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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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지만 모의고사의 맨 처음은 언어영역 시간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그 ‘언어’가 내겐 너무도 낯선 존재로 다가오고 있었다.

서강훈
언어영역의 경우 1번부터 6번까지는 대개 듣기문제, 나는 초반부터 몹시 당황했다.

문제의 내용은 두 사람이 등장해서 대화하는 상황인데 이때 두 사람이 범하고 있는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답이었다. 대개 듣기문제는 방송을 듣다가 느낌이 오는 순간 바로 답을 찍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도 일정분량의 방송을 듣고 나선 바로 답을 찍어놓고 다음 문제를 준비했다.

그런데 언뜻 후반부 방송을 들어보니 내가 찍은 답이 틀린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시험의 초반부부터 여럿 접하다 보니 마음을 점점 추스를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상황은 악화되어 듣기를 제외한 다른 문제를 풀 때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도저히 맞는 지문과, 틀린 지문을 구별 할 수 없는 문제들. 그것들 중 3점짜리는 왜 그리도 많은 지….

결국, 이 문제 저 문제를 두고 고민하다가 시간이 많이 흘러가 버렸다. 나는 겨우겨우 시험 종료시간 5분을 남겨두고 문제를 모두 풀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짧은 5분 동안 OMR 카드에 수성 사인펜으로 답을 기입하면서 퍼뜩 내 뇌리를 스친 생각,

‘언어영역 시험이 나한테만 어려웠으면 어떻게 하지?’


이윽고 종이 치면서 맨 뒤에 있는 사람이 답안지를 걷어가자 나는 급히 사방의 친구들에게 외치듯이 말했다.

서강훈
“너네 시험 쉬웠냐?”


“헉, 농담 따먹기 하냐, 너 지금?”

“미친 거 아니니? 무슨 언어가 이렇게 어려워!”

아직 답이 나오려면 수시간을 기다려야 하건만 우리의 답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그래서 평소 언어영역 시험을 잘 보던 아이의 답안을 정답이라 치고는 서로 자기 시험지를 가져와서 채점을 시작했다. 그런데 채점은 채점인데 가채점이 되다 보니까 서로 격한 논쟁이 오가기 시작했다.

“악! 내가 왜 이걸 찍었지?”

“아냐, 네 것이 맞았어. 이 시험지가 틀린 것 같아, 내가 보기엔 3번이야.”

“잘 들어봐, 여차저차 해서 3번이 아니라 5번이야 알겠어?”

“(지나가던 친구 보다 못해) 뭐하러 그러고들 있냐? 어차피 답지 나오면 그때 가서 채점하면 되잖아.”

지나가던 친구의 말이 백번 옳건만 좀처럼 가라앉지 못하고 들끓고 있는 교실. 당장 다음 시간 시험도 준비해야 하건만 쉽지가 않다. 이런 장면은 수리영역을 거쳐 사회탐구 과학탐구 영역, 외국어 영역을 지나면서 더욱 심해졌다.

결국 5시쯤 모의고사 시험이 끝나고, 답안지가 등장하는 순간이 와서야 시끌벅적 하던 교실은 잠잠해질 수 있었다.

단지, 색깔 있는 펜으로 '슥' 동그라미와 가위 표를 긋는 소리만이 존재하는 교실. 잠시 후 채점을 마친 많은 아이들의 입에서 신음 섞인 탄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아마도 매우 다수 사람들이 오늘 본 9월 달 모의고사를 어렵게 여겼으리라.

채점 후 우리는 비록 괴로운 작업이 될 지라도 나름대로 시험이 왜 이렇게 어렵게 출제되었는지에 대해 그 원인분석이나 해 보자고 모였다.

“오늘 솔직히 시험이 너무 어려웠어. 내 생각엔 주최측의 농간이 틀림없어.”

“확실히 그렇긴 한데, 네가 공부를 안한 건 아니냐?(웃음) 농담이고 내 경우에는 요새 수시 쓴다고 공부를 너무 안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 그래서 더 망한 거지.”

“근데 아까 보니까 외국어 영역은 문법이 하나 더 늘었던데?”

“인제 문법 중시한다고 하잖아. 우리 아래 있는 애들은 더 심하다고 그러든데. 하여튼 그거 수능 때도 이어져서 문법 문제는 3개래. 그리고 난이도도 비슷하고.”

“그런 그렇고 오늘 전국에 있는 재수생 형 누나들도 시험 다 봤다고 하더라고.”

“그래. 전국 모의고사잖아.”

“그 사람들은 잘 봤겠지?"

서강훈
“모르긴 몰라도 우리 보단 낫겠지.”

체감난이도에 지나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의 문제들은 내겐 너무도 까다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오늘과 비슷한 난이도의 문제들이 수능에 그대로 나온다는 엄청난 이야기에 나는 내일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지금의 내 초라한 성적을 뒤집는 막강한 재수생 형 누나들이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에도….

나는 모의고사로 채웠던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한숨을 아니 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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