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정 일깨워준 애완견 '까미'

강아지와 함께한 3박 4일간의 시골 정착기

등록 2003.09.13 02:12수정 2003.09.1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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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  '까미'
오늘의 주인공 '까미'윤태
나는 여지껏 애완견을 키워본 적이 없다. 아니, 한번 쓰다듬어 준 적도 없다. 그저 TV나 거리에서 혹은 버스·지하철에서 사람들의 품에 안겨있는 애완견들. 겉으로 보이는 이러한 풍경들이 내가 알고 있는 애완견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내가 이번 ‘까미(애완견 이름) 사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왜 애완견을 사랑하는지, 애완견이 다치거나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들의 주인들이 왜 그리 울고 불며 애통해 하는지 그 심정을 알게 됐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했던 한 마리 애완견의 웃는 모습이 떠오르고 곁에 없다는 사실에 가슴 허전한 것이다.

추석을 이틀 앞둔 지난 9일 오후 쏟아지는 폭우를 헤치며 나는 신길동 처갓집을 향해 달려갔다. 장인어른께서 키우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옆집에서 보내온 애완견 한 마리(까미)를 데리고 있었는데 처갓집에서도 역시 ‘사육 불가’판정(?)을 받은 것이다. 기존 진돗개 한 마리도 벅찬데 애완견까지 붙여 놓으니 밤마다 짖어대고 주민들이 반발하는 등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내가 추석때 시골에 데리고 가기로 한 것이다. 시골 가서 소를 지키게 할 셈이었다.

비오는날 까미는 차 트렁크에 타고 성남집으로 옮겨진 후 다시 시골로 내려갔다.
비오는날 까미는 차 트렁크에 타고 성남집으로 옮겨진 후 다시 시골로 내려갔다.윤태
준비해 간 라면박스에 까미를 넣고 유리테이프로 봉했다. 세겹, 네겹, 다섯겹 최대한 튼튼히 테이프를 감고, 숨구멍을 뚫어놨다. 그러나 출발한지 1분도 안돼 녀석은 라면상자를 탈출했다. 까미는 차안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난리를 쳤다. 발밑에 들어가 안전운행을 위협하기도 하고 조수석에 점잖이 앉아 있기도 했다.

“고 녀석 참 맹랑하네” 생각하며 나는 까미를 트렁크에 넣었다. 혹시 실례(?)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트렁크 덮개가 없어 까미의 동태를 룸미러를 통해 계속 관찰할 수 있었다. 폴짝폴짝 메뚜기처럼 ‘통통’거리며 낑낑대는 까미의 모습이 10여분 동안 계속됐다. 저러다 지치면 잠잠해지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순간 쾌쾌한 냄새가 차안에 진동했고 녀석은 제 키보다도 높은 트렁크를 훌쩍 뛰어 넘어 조수석 밑으로 숨어들었다.

차안에 큰 실례(?)를 하고 만 것이다. 좁은 트렁크 속에 갇혀 허둥대다 보니 본의(?) 아니게 실례를 한 것으로 생각됐다. 쏟아지는 폭우 탓에 창문도 못 열고 냄새 때문에 두통이 왔다. 최대한 서둘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날 저녁 아내와 나는 까미를 목욕시켰다. 새벽에 다시 차를 타고 머나먼 길을 떠나야했기 때문이다.


차에 실례를 한 후 목욕하는 까미. 나쁘지 않은 표정이다.
차에 실례를 한 후 목욕하는 까미. 나쁘지 않은 표정이다.윤태
새벽 4시 우리 부부와 까미는 작은 차에 몸을 실었다. 새벽부터 추석 귀성 길은 많이 막혔다. 까미가 언제 실례를 할지 몰라 막히는 길이 불안했던 것이다. 아내는 조수석 앞에 라면박스를 놓고 까미를 그 속에 넣었다.

날이 밝자 혹독한 교육(?)이 시작됐다. 녀석이 그 자리를 이탈하려고 하면 아내는 볼펜 자루로 까미의 머리를 두드리며 엄포를 놓았다. 그렇게 수십번을 반복하니 효과가 있었다. 아내가 볼펜을 들기만 하면 까미는 눈치를 살피고는 이내 박스 안으로 고개를 묻었다.


“역시 애완견이구나” 생각했다. 아내로부터 교육을 받는 동안 까미는 자꾸 나를 빤히 쳐다보며 ‘낑낑’댔다. 운전하면서 계속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기 때문에 녀석은 나를 확실히 자기편이라고 믿고 있던 것 같았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눈치였다.

아내는 털 날린다며, 또 실례할 수 있다며 박스 안에 놓자고 했다. 그러던 아내가 잠들었다. 순간 녀석은 훌쩍 뛰어올라 운전중인 내 무릎에 앉았다. 다행히 천천히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안전상 문제는 없었다.

달리는 차의 창문을 딛고 선 까미가 지나는 차들을 구경하고 있다.
달리는 차의 창문을 딛고 선 까미가 지나는 차들을 구경하고 있다.윤태
까미는 이내 내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쏙 들어간 녀석의 목 부분을 볼록한 내 무릎에 끼워 맞췄다. 까미가 원하는 것은 바로 ‘관심’이었다. 좀더 사랑해달라는 것이다. 녀석이 나를 바라보는 눈과 행동에서 그것을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까미가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녀석은 이미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창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뛰어내리려는 것인가 생각했지만 녀석은 역시 프로였다. 차창 안쪽에 정확히 착지한 까미는 우뚝 선 자세로 유유히 바깥 풍경을 즐겼다. 옆 차량 운전자를 보며 짖기도 하고, 지나는 행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전혀 겁내는 기색도 없이 매우 익숙한 행동이었다. 전 주인과 차를 타고 많이 다녔던 모양이다.

안전운전에 방해가 되는 까미.  이 상태에서는 기어조정이 힘들다.
안전운전에 방해가 되는 까미. 이 상태에서는 기어조정이 힘들다.윤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가 염려했던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네다섯 차례 휴게소를 들렀고 그때마다 까미는 꼭 풀밭에 들어가 실례를 하는 등 애완견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여하튼 9시간에 걸친, 지루할 뻔했던 귀성길이 까미 덕분에 심심지 않았다.

10일 오후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까미를 풀어놓았다. 수십명의 식구들이 까미를 에워쌌지만 녀석은 오로지 나와 아내만 졸졸 따랐다. 물건을 꺼내려고 차문을 열어 놓으면 녀석은 어느 순간 운전석에 ‘떡 하니’앉아있는게 아닌가? 같이 있었던 9시간 동안 녀석은 나에게 완전히 마음을 준 것이었다.

부모님은 녀석을 보고 “사람보다 낫네”를 연신 중얼거리셨다. 감정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까미의 모습에 놀라신 것이다. 이런 모습은 TV 말고 직접 보신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리는 짧고 허리는 길다. 몸미 길다보니 쓰다듬는데는 참 편리하다.
다리는 짧고 허리는 길다. 몸미 길다보니 쓰다듬는데는 참 편리하다.윤태
이날부터 까미의 시골 적응 훈련은 시작됐다. 그날 나는 두 시간 동안 까미를 데리고 마을을 돌아다녔다. 개 목걸이 없이 스스로 따라다니게 만들었다. 까미는 가는 곳마다 소변을 보며 자기 영역을 구축해 나갔다. 날이 어두워지자 나는 까미를 묶어 창고 안에 넣었다. 비도 오고 쥐약이나 농약 등을 주워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1일 추석날 아침. 새벽 일찍 일어나 창고문을 열었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띤 까미가 나를 반겼다. 마치 탁구공 튕겨 다니듯 녀석은 쉴새없이 나를 향해 뛰어올랐다. 밤새 무척이나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에 대한 충성심(?)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어디까지 나를 따라오느냐 하는 것이다. 녀석은 다리가 워낙 짧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달리기 시작했다. 까미가 뒤따랐다. 제법 잘 따랐다. 웬만하면 멈춰 설만도 한데 녀석은 끈질겼다. 결국 내가 지고 말았다. 거친 숨을 몰아치며 주저앉는 내 곁에서 녀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꼬리 짓에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소국무리 옆을 지나며 탐색하는 까미. 지나는 곳마다 소변으로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소국무리 옆을 지나며 탐색하는 까미. 지나는 곳마다 소변으로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윤태
다음은 계단 오르기다. 나는 순식간에 옥상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까미도 뒤따랐다. 마치 날개를 단 것처럼 녀석은 가볍게 옥상계단을 오르내렸다. 다리가 짧은 탓에 안정적으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10회 왕복 계단 오르내리기에서도 내가 먼저 쓰러졌다.

성묘를 다녀온 후 나는 오후 내내 까미와 시간을 보냈다. 동생이 내 차를 잠깐 이동시킨 적이 있었는데 이때 까미는 내 차 주변을 돌며 앙칼지게 짖어댔다. 어떻게 제가 타고 온 차인지 알고 저러는 것일까 하며 식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녀석은 신기하게도 다른 형제들 차문을 열면 솔깃도 안하고 오직 내 차 문만 열리면 쏜살같이 좌석에 올라앉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루는 지났고 서울로 올라가는 12일이 됐다. 오늘은 정들었던 까미와 이별해야 한다. 내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거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도 쏜살같이 달려오던 까미. 내가 가는 날인지 어떻게 알고 창고 문을 벅벅 긁어대며 낑낑거렸다. 나는 일부러 얼굴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서운할 것 같아 문틈 사이로 녀석을 잠깐 봤다. 눈이 마주쳤다. 펄쩍 뛰고 난리다. 어머니는 “어린아이 떼어놓고 가는 기분이겠다”며 나를 위로하셨다.

뜻밖이다. 그 동안 어머니와 개와의 관계는 원수였다. ‘묶여있는 원수’ 말이다. 늘 어머니의 빗자루 몽둥이가 춤을 췄고 우리 집을 거쳐간 모든 개는‘동네북’이 돼야만 했다. 어느 한 녀석 예외 없었다. 그런데 까미가 보여준 이번 사흘동안의 모습에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감동 받으신 모양이었다. 여하튼 다행이다. 어머니가 까미에게 잘해 주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빗자루 몽둥이는 안 휘두르실 것 같기 때문이다.

멀리까지 산책을 나갔던 까미가 막 뛰어들어오고 있다(길 가운데 까만색)
멀리까지 산책을 나갔던 까미가 막 뛰어들어오고 있다(길 가운데 까만색)윤태
까미는 분신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까미는 분신처럼 나를 따라다녔다.윤태

















반면 아버지는 까미가 무척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다. 처음 까미가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일부러 녀석 앞에서 “예 이놈!”하고 삽자루 휘두르는 시늉을 했더니 그 후로 녀석이 아버지 눈치를 살살 살폈다는 것이다. 오로지 나만 따르는 녀석이 아버지 딴에는 좀 섭섭하셨던 모양이다. 나를 따르는 영리한 모습에 아버지는 연신 칭찬하시며 까미에게 정을 주고 계신 것이다. 아버지가 칭찬하며 감탄하시는 이유는 바로 “허, 꼭 사람 같다”는 것이다.

나는 한달 후인 10월 중순경 추수할 때 다시 시골에 가기로 했다. 그때도 까미가 나를 기억하고 있을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만 졸졸 따르는 애완견이 됐거나 외양간 소를 지키는 ‘보통개’가 됐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느 것이라도 상관없다. 다만 한달 전 나를 기억했던 것처럼 까미가 다시 나를 추억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너무 오랫만에 만나 기억이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하며 늦게라도 나를 알아차리고 뛰어오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람의 정’을 건네준 까미이기에… 그 추억을 되도록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조카가 손에 먹을 것을 들고 나타나자 까미가 그 앞에서 재롱을 피우고 있다.
조카가 손에 먹을 것을 들고 나타나자 까미가 그 앞에서 재롱을 피우고 있다.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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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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