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끈을 가위로 잘라 만든 이쑤시개윤태
우리 집에서 뜨거운 그릇 밑에 까는 받침대는 모두 재활용한 것이다. 수퍼에서 라면박스를 가져와 동그랗게 오린다. 된장 뚝배기, 프라이팬, 냄비 등 크기에 따라 잘도 오려낸다. 컴퍼스를 사용한 것도 아닌데 어쩜 저렇게 동그랗게 오릴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다.
아내는 심지어 노끈을 잘라 이쑤시개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고기를 구워먹은 후 노끈으로 만든 이쑤시개를 사용하면서 "나무로 만든 것보다 더 낫네"하며 서로를 쳐다보며 웃는다.
더 재미있는 것은 보리차를 끓이는데 3리터 주전자에 보리차 티백 한 개를 넣고 끓이는 것이다. 맹물을 끊여서 컵에 티백 1개를 넣고 마시든지 주전자에 끊일 거면 최소한 예닐곱 개의 티백을 넣고 끓여야 어느 정도 구수한 맛이 날 게 아닌가. 보리차 향기만 나면 된단다.
아내는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2km 정도를 늘 걸어다닌다. 걸어다님으로써 운동을 하자는 의도가 아니다. 단지 마을버스요금 400원이 아까운 것이다. 남한산(성) 중턱에 위치한 우리 집은 거리문제보다는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올라가야 한다는 데 문제가 더 크다. 그래도 아내는 꿋꿋하다. 400원을 절약했다고 좋아한다.
좋아하는 아내에게 장난 삼아 한마디 던진다.
"에이, 바보! 그 무거운 가방 메고 언덕길을 걸어오고 싶니?"
대답은 "응"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아내가 꼭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와야 하는 이유를 그럴싸하게 설명한다. "물론 절약하는 것도 좋지만 여기까지 걸어오는 건 절약이 아니라 오히려 낭비"라고 나는 설명한다.
왜? 첫째, 시간이 낭비된다. 둘째 신발이 닳는다. 셋째 목마르니까 물 더 마시게 되고, 결국 화장실 한 번이라도 더 다녀옴으로써 물이 낭비된다. 넷째 육체적 피로는 무엇으로 보상받나 하는 것이다.
물론 아내는 400원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아내의 절약정신에 대한 나의 맞불 대응도 별 수 없다. 절약에 있어선 어떤 논리도 통하지 사람이 바로 아내이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에 대해 아내는 "자기 맛있는 거 사주려고 그런다"는 말로 나의 논리를 일축해 버린다. 솔직히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