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절약 정신은 금탑산업훈장감

가끔은 좀 창피스럽고 지나치다 싶을 때도 있지만

등록 2003.06.21 07:41수정 2003.06.22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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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절약정신을 상으로 치자면 금탑산업훈장을 줘도 부족할 정도다. 생활, 아니 '삶=절약'이라는 등식을 안고 사는 아내가 대견하고 또 든든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좀 창피스럽고 정도가 좀 지나치다 싶으면 말다툼까지 벌인다.


한번은 5천원짜리 샌들을 샀는데 종일 신고 다니는 동안 발이 아파 도저히 못 신겠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신발가게에 들러 내 슬리퍼로 바꾸려고 애쓰는 아내를 옆에서 지켜봤다.

한번 신은 신발은 원래 잘 안 바꿔 준다는 주인과 한참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내 슬리퍼로 바꾸게 됐는데 바로 그때 문제가 생겼다. 샌들 밑에 붙은 껌을 발견하고는 주인이 도저히 바꿔줄 수 없다고 했다. 이 상태로는 다른 손님에게 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아내는 긁어내면 금방 떨어질 것이라 하면서 주인을 설득했다. 두 사람의 실랑이는 10여분간 계속됐다. 바꾸지 못한다면 결국 무용지물이 돼버리는 것인데 아내에게 있어선 죽기보다 싫은 일이다.

라면박스를 오려 만든 뜨거운 그릇 받침대가 크기별로  놓여있다. 검게된 부분이 불에 탄 자국이다
라면박스를 오려 만든 뜨거운 그릇 받침대가 크기별로 놓여있다. 검게된 부분이 불에 탄 자국이다윤태
이러는 동안 나는 짜증이 나 있었다. 주인장과 아내의 상황을 역지사지하면서 아내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역지사지하지 않아도 아내가 분명 잘못하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그 자리에서 아내는 눈물을 쏟았다. 나를 위해서 그런 것인데 어쩜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며...


아내는 서둘러 신발을 신고 급히 집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뒤쫓아가려고 서둘렀지만 아내는 이미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었다. 발이 많이 아팠던지 신발까지 벗어버리곤 사라졌다. 그날 우리 둘은 '이혼'까지 운운하며 싸움을 벌였다.

투철한 절약정신이 가져온 결과였다. 그러나 아내의 절약정신이 늘 싸움으로 번지는 것은 아니다. 즐거울 때도 있다. 절약하는 과정이 재밌다고 해야 할까?


노끈을 가위로 잘라 만든 이쑤시개
노끈을 가위로 잘라 만든 이쑤시개윤태
우리 집에서 뜨거운 그릇 밑에 까는 받침대는 모두 재활용한 것이다. 수퍼에서 라면박스를 가져와 동그랗게 오린다. 된장 뚝배기, 프라이팬, 냄비 등 크기에 따라 잘도 오려낸다. 컴퍼스를 사용한 것도 아닌데 어쩜 저렇게 동그랗게 오릴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다.

아내는 심지어 노끈을 잘라 이쑤시개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고기를 구워먹은 후 노끈으로 만든 이쑤시개를 사용하면서 "나무로 만든 것보다 더 낫네"하며 서로를 쳐다보며 웃는다.

더 재미있는 것은 보리차를 끓이는데 3리터 주전자에 보리차 티백 한 개를 넣고 끓이는 것이다. 맹물을 끊여서 컵에 티백 1개를 넣고 마시든지 주전자에 끊일 거면 최소한 예닐곱 개의 티백을 넣고 끓여야 어느 정도 구수한 맛이 날 게 아닌가. 보리차 향기만 나면 된단다.

아내는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2km 정도를 늘 걸어다닌다. 걸어다님으로써 운동을 하자는 의도가 아니다. 단지 마을버스요금 400원이 아까운 것이다. 남한산(성) 중턱에 위치한 우리 집은 거리문제보다는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올라가야 한다는 데 문제가 더 크다. 그래도 아내는 꿋꿋하다. 400원을 절약했다고 좋아한다.

좋아하는 아내에게 장난 삼아 한마디 던진다.

"에이, 바보! 그 무거운 가방 메고 언덕길을 걸어오고 싶니?"

대답은 "응"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아내가 꼭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와야 하는 이유를 그럴싸하게 설명한다. "물론 절약하는 것도 좋지만 여기까지 걸어오는 건 절약이 아니라 오히려 낭비"라고 나는 설명한다.

왜? 첫째, 시간이 낭비된다. 둘째 신발이 닳는다. 셋째 목마르니까 물 더 마시게 되고, 결국 화장실 한 번이라도 더 다녀옴으로써 물이 낭비된다. 넷째 육체적 피로는 무엇으로 보상받나 하는 것이다.

물론 아내는 400원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아내의 절약정신에 대한 나의 맞불 대응도 별 수 없다. 절약에 있어선 어떤 논리도 통하지 사람이 바로 아내이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에 대해 아내는 "자기 맛있는 거 사주려고 그런다"는 말로 나의 논리를 일축해 버린다. 솔직히 할 말이 없다.

초코파이 각을 이용해 만든 프라이팬 덮개
초코파이 각을 이용해 만든 프라이팬 덮개윤태
아내의 절약사례는 이외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보통 가정주부들이 근검 절약하는 것과는 그 방법과 정도가 너무나 다른, 한마디로 특이한 방법으로 절약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아내처럼만 절약하고 산다면 그 파급효과는 얼마나 될까. 언론에서 보면 종종 이런 뉴스가 나온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가 하루 평균 1시간 동안 불을 끄고 있으면 연간 수백억의 에너지가 절약된다. 또는 서울, 경기 지하철의 하루 전기사용량이 수천만원이다 등등.

모두 합쳤을 때 나타나는 통계수치를 매우 중요하게 또 엄청 크게 발표하면서 에너지 절약 정신을 고취시킨다. 그러나 그러한 통계는 개개인이 각자 실천하지 않으면 절대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한다면, ...할 경우, ...했을 때"처럼 미래의 일이나 가정법이 아닌 현재의 아내처럼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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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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