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대표, 취조실과 고문실이 있던 옛 안기부 지하실에 내려가다.권기봉
- ‘국가보안법상의 간첩죄’라는 죄목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13년 2개월 동안 복역을 하고 8·15특사로 나왔다. 그 시간이 결코 짧은 것이 아니다. 황 대표에게 있어 이 길었던 수감 생활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30세부터 44살까지 감옥에 있었다. 사람들은 인생의 황금기를 허비했다고 안타까워하거나 억울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물론 초창기 감옥에 있을 때에는 무척이나 괴롭고 뭐라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데 인생에 선택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야생초에 눈을 뜨게 된 것도 그렇고, 나는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했기 때문에 회한 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어릴 때부터 교대부속초등학교와 경복중고등학교, 서울대, 미국 유학이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니 분명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다면 사회 주류에 속했을 것이다. 가만히 있었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주류의 삶에서는 누릴 수 없는 것들을 감옥을 통해 깨우치게 되었다. 지나고 보니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 그런데 복사용지를 이용해 만든 명함에 ‘바우 황대권’이라고 적고 있다. 바우가 무슨 뜻인가?
“감옥에서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이전에는 인간의 의지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일을 당하고 보니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고 느끼게 됐다. 그래서 신에 의지하게 된 것인데 막상 세례명을 보니 다 외국이름이더라. 철든 이후 양복 입은 날을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어찌 보면 나는 민족주의 성향이 있다. 그래서 고문을 당하다 순교한 한국인 유대철 베드로 성인의 세례명을 한국식으로 고쳐 ‘바우’라고 하게 되었다. 그는 고문을 이겨 냈지만 나는 결국 고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굴복해서 살고 있는 데 대한 속죄의 의미도 있다.”
“이놈 자식, 분명히 북에서 특공무술을 배운 게 틀림없다”
- 이제 이야기를 조금 돌려보겠다. 지난 85년 안기부에 끌려갔다고 알고 있다. 어떤 일로 인해 안기부에 잡혀가게 되었나?
“나중에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라고 알려진 일 때문에 잡혀가게 되었다. 미국 유학 중 알게 된 사람 중 양동화라는 이가 있었는데, 나를 형이라 부르며 따랐다. 나중에 이 친구가 평양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안기부에 잡혀가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그가 미국에서 친하게 지냈던 이로 나를 지목했다고 하는데, 안기부에서는 나에게도 뭔가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거다.”
85년 9월 9일 안기부가 발표한 이른바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은 양동화 등이 모스크바를 거쳐 평양을 방문, 지령과 공작금을 갖고 국내에 들어와 간첩활동을 했다는 사건이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이 사건을 두고 ‘한국의 학생운동은 북한의 사주를 받아 이루어지고 있다’는 투로 대대적인 선전을 했다.
그러나 안기부의 발표 바로 다음날 MBC가 방송한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 관련 프로그램 <보도특집 - 학원에 뻗친 붉은 손길> 등의 원본이 이미 9월 1일~2일에 사전 촬영된 것이며, 양동화의 기자회견 부분 역시 사전연습을 거친 후 이뤄진 점 등 안기부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