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두꺼비 만난 운수 좋은 날

20여년 만에 만난 요물(妖物) 두꺼비

등록 2003.09.18 09:17수정 2003.09.1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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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을 닮았을까, 황토흙을 빼닮았을까? 제 몸매 죽이죠? 다이어트 필요없습니다.
물빛을 닮았을까, 황토흙을 빼닮았을까? 제 몸매 죽이죠? 다이어트 필요없습니다.김규환
작년 추석 때 홍어 한 마리를 덤으로 얻었다. 올해도 아버지 제사와 한가위가 이틀 간격이라 생선을 같은 가게에서 모두 샀다. 잘 삭힌 걸로 한 마리를 또 주신다. 마다 않고 받았다.


이젠 홍어 소비를 재촉하고 부추기며 홍어 요리집 지도를 그릴 만한 경지에 이르렀다. 홍어 기사만 2002년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던 때부터 9개를 썼으니 어찌 보면 홍어 전문가, 홍어 전도사쯤은 되지 않을까? 곳곳에 홍탁집 생기는 것도 눈여겨 보고 있다.

그러니 어엿한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임을 드러내도 민망하지 않았다. 자랑 삼아 얘기하면 "그런 모임도 있어요? 참 신기하네요" 한다. 맞장구치며 이야기를 더 이어간다.

딸과 며느님으로 보이는 사람 둘이 장사를 거들고 있다. 아주머니 아들도 광주에서 홍어 도매업을 한단다. 언젠가 만났던 그 친구와 막걸리에 홍어 한 접시 나눴던 적이 있다. 젊은 두 여인도 모임에 가입한다고 한다.

소나기가 쏟아져 급히 비를 피하는 중이라 앞뒤 안 가리고 큼지막한 나무토막에 올랐습니다.
소나기가 쏟아져 급히 비를 피하는 중이라 앞뒤 안 가리고 큼지막한 나무토막에 올랐습니다.김규환
추석 이틀 전에는 그렇게 시장 보고 집으로 돌아와 고기 손질, 채소 다듬기, 돼지 내장 끓여서 형수, 처, 여동생 술 시중도 들었다. 아이도 보고 집안 청소를 하니 하루가 후딱 지나갔다. 밤 까서 깎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사를 지내려면 할 일이 무척 많다. 그런데 마침 연휴 이전에 서울서 싣고 간 중고 컴퓨터 설치를 해야 하니 마음도 바빠졌다. 먼 길을 달려온 탓인지 부팅이 되질 않는다. 몇 시간째 씨름을 하다 포기하고 장을 보았던 옥과로 컴퓨터를 싣고 갔다.


마침 직원은 없고 사장 부인만 있어 맡겨두고 오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돌아오는 대로 고쳐지면 전화를 주기로 했는데 감감 무소식. 인터넷 설치하러 전화국 직원이 올 시간이 임박했다. 안되겠다 싶어 다시 20여리를 가보았다.

벽에 붙어서 이리저리 폼을 잡아주니 얼마나 고맙던지요.
벽에 붙어서 이리저리 폼을 잡아주니 얼마나 고맙던지요.김규환
출발하기 전 집엔 폭우가 쏟아지더니 곡성군 옥과면 소재지는 한두 방울 올 뿐 잠잠하다. 그런데 갑자기 요란히 천둥 번개가 치면서 소나기가 내렸다. 도로엔 물이 가득 차올랐다. 마침 차 천장에서 빗물이 새 들어온다. 걸레를 받쳐두고 밖을 내다본 순간 놀라운 광경에 입이 딱 벌어졌다.


"두꺼비다! 두꺼비."

지나던 고등학생들이 이상한 사람 본 듯 물끄러미 쳐다본다. 의식하지 않고 두꺼비를 놓칠세라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비를 맞으며 다가갔다.

나에겐 공룡 다음으로 신비한 동물이다. 20년 만에 다시 본 두꺼비. 비 올 때면 집을 지키고 있다가 나타나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두꺼비다. 내 두꺼비가 두엄 위에서 파리, 모기, 지렁이를 잡아먹는 건 여직 본 적 없지만 전설 속의 친구를 만난 양 기뻤다. 내 마음에 늘 떠나지 않았던 두꺼비는 마당 깊은 집 감나무 밑에서 나와 장독대로 사라지곤 했다.

'두꺼비가 오줌을 싸면 눈이 멀게 된다'는 어릴 적 속설에 머리를 꼿꼿이 세워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오더니 건물 벽에 접근하여 꿈쩍하지 않는다. 차가 씽씽 달리는 아스팔트 도로의 불어난 물에 둥둥 떠 있던 두꺼비가 놀라 건물 쪽으로 허겁지겁 비를 피해 나오는 참이다.

떡두꺼비
떡두꺼비김규환
두 눈은 초롱초롱 똘망똘망하다. 색깔은 어릴 때 보았던 그 색과 사뭇 달라 갈색 조에 검은 줄무늬가 군데군데 찍어져 있지만 또렷하다. 청개구리, 무당개구리, 참개구리, 맹꽁이보다 훨씬 크고 피(벼와 함께 자라는 피)를 많이 따 먹었는지 배가 부르다. 새끼를 밴 걸까?

두꺼비는 요물(妖物)이다. 생김새가 흔치 않는 모양이지만 간혹 옛 이야기에 출연하여 우렁각시처럼 깨진 물 항아리를 막아주기도 했다.

이 요물의 진면목은 살모사(殺母蛇)와 다르지 않다. 산란기(産卵期)가 되면 능구렁이 뱀에게 먹혀 자신의 몸을 희생(犧牲)한다. 뱀 몸속 들어가 자신은 죽지만 독이 퍼트려 뱀을 죽인다. 1000여개의 알은 제 어미 살을 뜯어 먹고 나중엔 구더기처럼 삐져나와 뱀 살마저 먹고서 자란다. 어미의 거룩한 뜻 누가 알까?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 알아줄까?

초롱초롱한 눈
초롱초롱한 눈김규환
가까이 다가가 비를 흠뻑 맞으며 촬영에 들어갔다. 한동안 좀체 움직임이 없다. 별 방해 없이 한 장 두 장 찍어 나갔다.

두꺼비를 만난 이야기를 했더니 사람들이 "어디서 봤느냐?", "깔려 죽지 않았느냐?", "어떤 방송 환경 프로그램에 나왔는데 멸종 위기에 처했다더라. 한번 제보해 보지 않겠느냐", "얼른 사진을 올려 달라"며 신기해 하고 주문도 이어졌다.

늪이나 웅덩이에 접근하여 지낼 시간이 부족하여 그간 못 본걸까? 미국서 온 식용 개구리의 유일한 천적(天敵)으로 알려진 두꺼비가 무사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요모조모 20여분 아름다운 포즈를 취해 줬던 두꺼비가 넓적다리를 흔들며 창고(倉庫) 안으로 사라졌다.

이 참에 확실한 위치를 적어 놓아야겠다.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옥과리 전남과학대학 정문 맞은 편 삼보컴퓨터 옥과점 입구 인근. 오늘도 비가 오니 또 나왔을까? 올 가을이 가기 전까지 나는 지네와 무당벌레만 만나면 반가운 이 다 만나는 셈이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홍어 얻은 기분 좋은 날 떡두꺼비까지 얻었으니 '운수좋은 날'이었다.

곧 갈겁니다. 나중에 또 봐요.
곧 갈겁니다. 나중에 또 봐요.김규환

창고 속으로 사라졌지만 영원히 기억하마. 호랑이가 기어들어가는 모양입니다.
창고 속으로 사라졌지만 영원히 기억하마. 호랑이가 기어들어가는 모양입니다.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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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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