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화속 인물인줄 착각했다"

[인터뷰] 37년만에 조국 찾은 재독 김성수 한독문화원장

등록 2003.09.19 12:26수정 2003.09.2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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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 대한 간극, 빨리 메워야지..."
[인터뷰] 37년만에 조국 찾은 김성수 한독문화원장

▲ 37년만에 고국을 찾은 김성수 한독문화원장이 행사장을 찾은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제야 실감이 난다. 조국 땅에 와서 흙냄새도 맡고, 동생들도 만나고, 환영식도 참가하고 나니까 이제야 실감이 난다…."

꿈을 안고 떠난 서른살의 유학생이 예순일곱 노인이 돼서 돌아왔다. 37년 동안 두고 온 어머니와 누이들이 보고 싶어 안타깝기도 했고, '간첩' 누명을 씌운 조국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반평생을 낯선 곳에서 보내고 다시 찾은 고국 땅은 여전히 따뜻한 곳이었다.

김성수(67, 한독문화원장) 박사. 지난 73년 최종길 교수 사건과 87년 파독광부 간첩단 사건의 연루자로 지목돼 정부로부터 '입국금지' 조치를 받은지 삼십여 년만에 '해외민주인사 초청' 행사로 조국을 찾은 김 박사는 다시 가족을 만난 감회를 묻는 질문에 "혈육의 정이라는 것이 금방 그렇게 와 닿더라"고 말했다.

19일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해 공식환영 행사장에서 틈틈이 만난 김 박사는 이번 귀국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내가 영화에 나오는 인물인가 하는 착각도 들었다"는 귀국인사말을 남긴 김 박사는 한때 "국정원 직원이 따라다니거나 하지는 않겠죠?"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아내 김방지(60)씨와 함께 오는 10월 18일까지 한국 땅에 머무는 김 박사는 연신 미소를 지었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편치도 못했다. 이번 행사에 함께 오지 못한 '민주화 동지'들이 마음에 걸렸던 것. 특히 지난 70년대 '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함께 만들었던 송두율 교수에 대한 국정원의 체포영장 발부는 그의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송 교수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는 너무 비인간적이며, 소름이 돋을 정도"라고 말하는 김 박사의 귀국 소감은 어떨까.

- 37년만에 조국을 찾았다. 소감을 밝힌다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출발할 때도, 인천공항에 내려서도 '내가 지금 영화에 나오는 인물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그때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을 만나고 나니, 혈육의 정이라는 것이 금방 그렇게 와 닿더라.


이제 실감이 난다. 조국 땅에 와서 흙냄새도 맡고, 동생들도 만나고, 환영식도 참가하고 나니까 이제야 실감이 난다."

- 독일로 가게 된 계기는.
"연세대 학부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하고 동양철학을 공부하러 30살이 되던 66년 독일 튜빙겐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 뒤 결혼할 때 잠깐 한국에 들른 것 외에는 30여 년간 오지 못했다."


- 독일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학생 시절이었던 1973년 최종길 교수 사건과 연루돼 공부도 거의 중단했고, 그 때부터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때 송두율 교수, 김길수씨와 함께 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결성했다. 박정희의 죽음 후에는 민주화가 오리라고 기대했는데, 오히려 거꾸로 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때 많은 분들이 운동을 포기하고 귀국하기도 했고….

84년 독일 국적을 취득했다. 얼마 전까지는 시청 교육과에서 청소년담당 교육원으로 일했지만, 지금은 나이가 많아 아내가 경제를 맡고 있다."

- 애초 입국금지의 원인이 된 최종규 교수 사건 때 김 박사의 상황은 어땠나.
"당시 해외에도 안기부 직원이 있었는데, 안기부에서는 학생들을 주로 이용했다. 내가 공부하던 프랑크푸르트에도 학생 신분인 안기부 직원이 있었는데, 송두율 교수의 고등학교 2년 선배인가 그랬다. 그래서 함께 밥도 먹고 잘 놀았는데, 얼마 뒤에 그가 안기부 직원인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그 사람이 전화해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낌새가 이상해서 일부러 만나지 않았는데, 독일인 친구가 외출했다가 들어오면서 바깥에 건장한 사내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 때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터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26일 중정이 최종규 교수 사건을 발표한 당일, 헤럴드 트리뷴에서 그 기사를 크게 내보내서 알았다.

그 당시 우리 대학 교수 3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안기부 직원 2명을 쫓아내고, 나의 정치망명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보호해줬다. 동백림 사건을 일으킨 이후 또 다시 이런 사건을 조작한다고 독일내 큰 신문들이 모두 떠들었다. 이 때문에 안기부직원 2명이 모두 쫓겨난 걸로 기억한다."

- 고국에 남은 가족들과는 연락을 자주 했나.
"간첩단 사건이 터지고 나서는 연락도 제대로 못했다. 이 때문에 80년 초반까지는 외로움을 극복하기 어려웠는데, 80년대 후반에 가족들과 전화통화라도 하니까 좀 나아졌다. 하지만 어머니, 누님은 전화통화만 해도 말씀을 못하시고 울기만 하시니까…, 안타까웠다."

- 한국 정부에 대한 원망은 없었나.
"조국에 대한 원망도 물론 있었다. 독일 가서 3년간 공부도 잘 되고 있었는데 엉뚱하게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서 벼락을 맞았다. 어떻게 원망이 없을 수 있나. 하지만, 고향과 조국에 대한 간극을 빨리 메워야지…, 그래도 빨리 메워질 것 같다."

- 국정원이 송 교수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나.
"들었다. 아무리 위법을 했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런 시대에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너무 비인간적이며, 소름이 돋는다."

- 앞으로 한국에서의 일정은.
"한국에서는 10월 18일까지 머물 예정이다. 인생의 좋은 시절 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냈는데, 부모님 산소에도 가봐야 되지 않겠나. 또 천도교 쪽에서 2군데 강연을 부탁한 일도 있고, 오는 11월 독일에서 한국과 독일 시인 한분씩을 모시고 '시의 밤'을 기획하고 있어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 김영균 기자

19일 오후 수십년동안 입국이 거부되었던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회원과 재독인사 총33명이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19일 오후 수십년동안 입국이 거부되었던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회원과 재독인사 총33명이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재독학자 김성수 박사(왼쪽)가 한상렬 목사와 반갑게 포옹을 하고 있다.
재독학자 김성수 박사(왼쪽)가 한상렬 목사와 반갑게 포옹을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군사정권 시절 해외에서 한국 민주화운동에 몸바치고도 정부의 입국금지 조치로 조국에 들어오지 못한 해외거주 민주인사들이 30년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김성수 한독문화원장 등 재독인사 4명과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의장 곽동의, 이하 한통련) 소속 회원 29명은 19일 오전 11시50분 인천공항에 도착, 간단한 환영행사를 갖고 기자회견을 연 뒤 3일간의 공식 일정에 들어갔다.

추석을 맞아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회장 최병모 민변회장 외, 이하 범추위)'의 초청으로 이뤄진 이번 행사에는 애초 34명의 재일, 재독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협심증을 앓던 곽동의 한통련 의장은 갑작스런 지병 악화로 이번 방문에서 빠졌다.

이들은 19일 오후 4시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열리는 공식 환영행사와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에 마련될 환영만찬에 참석한 뒤, 20일 광주 5·18 묘역, 21일 부산 민주공원 등을 차례로 방문할 예정이다.

특히 한통련 대표자 4명은 20일 오전 10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방문, 한통련 회원들의 인사말을 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70년대 일본에서 한통련의 전신인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연합(약칭 한민통) 결성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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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통련, 범추위 회원들 "조국통일" 구호, 감격의 눈물 흘리기도

이날 인천공항에는 범추위와 범민련, 전태일기념사업회 소속 회원 100여 명이 나와 해외에서 귀국하는 이들을 환영했다.

해외인사 33명은 11시50분경 인천공항에 도착했으나, 낮 12시30분이 돼서야 출국장을 빠져나왔다. 해외인사들이 출국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범추위 회원 등은 "조국통일" 구호를 외치며 이들을 환영했다. 해외인사들도 환영 나온 사람들의 구호에 맞춰 함께 "조국통일"을 외쳤으며 꽃다발을 증정하는 간단한 환영식이 이어지자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전태일 평전을 일본에서 출발했던 고 송인호씨의 부인 김지영를 만나 고인의 영정사진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전태일 평전을 일본에서 출발했던 고 송인호씨의 부인 김지영를 만나 고인의 영정사진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고국을 방문한 해외 인사들 중 특히 눈길을 끌었던 이는 한통련 소속 김지영(58)씨. 김씨는 한통련 기관지인 <민족시보> 편집장으로 있다 지난 97년 암으로 사망한 남편 고 송인호(당시 64세)씨의 사진을 들고 출국장을 나왔다.

송씨는 지난 78년 조영래 변호사로부터 <전태일 평전>의 원고 초안을 넘겨받아 최초로 책을 발간한 인물. 당시 국내에서는 금지됐던 책이 일본에서 최초로 발간된 것도 송씨의 노력 때문이었다. 이같은 인연 때문에 인천공항에는 고 전태일 열사의 모친 이소선(72) 여사와 여동생 전순옥(49)씨가 마중 나와 서로 손을 맞잡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소선 여사와 전씨를 만난 김씨는 "남편도 살아서 고국땅을 밟았으면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편 한통련 회원들과 범추위는 낮 12시40분께 인천공항 동편 만남의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귀국성명'을 발표했다.

한통련은 이 성명을 통해 "한통련 결성 이래 처음으로 꿈에도 그리던 고국땅을 밟게 되니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감개무량하다"며 "이번 한가위 고국 방문을 쾌히 승낙해 주신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 당국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아울러 범추위측은 오는 22일 귀국 예정인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와 김용무씨에 대해 국정원이 사전체포영장을 발부 받은데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범추위 임종인(변호사) 사무국장은 "국정원의 태도는 과거 일제시대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한 독립지사를 일제 고문경찰이 조사하겠다는 것과 같다"며 국정원의 조사방침 철회를 촉구했다.

9월 한가위맞이 해외민주인사 귀국단 명단

<재독인사 4명>

김성수 1936 재독귀향촉진회 상임위원(독일 프랑크푸르트), 김방지 부부/신옥자 1941 범민련 유럽지역본부 중앙위원(독일 프랑크푸르트)/한계일 1931 범민련 유럽지역본부 중앙위원(독일 뮌헨)

<재일인사 29명>

양동민 1937 범민련 일본지역본부 의장(일본 오사카)/ 최철교 1931 범민련 일본지역본부 부의장(일본 지바)/ 강종헌 1951 범민련 일본지역본부 부의장(일본 도쿄)/ 황영치 1957 범민련 일본지역본부 사무국장(일본 지바)/ 이정수 1964 범청학련 해외본부 공동의장(일본 도쿄)/ 김정부 1949 한통련 기획실장(일본 도쿄)/ 손형근 한통련 사무총장(일본)/ 김창오 1955 한통련 오사카본부 본부장(일본 오사카)/ 고수춘 한청(일본)/ 서호준 한통련 감사위원장(일본)/ 김해룡 한통련 감사위원(일본)/ 곽수호 한통련 부의장(일본)/ 신충범 한통련 도쿄본부 고문(일본)/ 곽원기 한통련 가나가와 본부 대표(일본)/ 강춘근 한통련 동해본부 대표(일본)/ 조기본 한통련 동해본부 부대표(일본)/ 이철 한통련 오사카본부 대표(일본)/ 김융사 한통련 오사카본부 부대표(일본)/ 허경민 한통련 오사카본부 부대표(일본)/ 이마리사(일본)/ 이태실(일본)/ 신용삼 전 한통련 대외협력국장(일본)/ 곽문호 한통련 히로시마본부 대표(일본)/ 김지영 재일민주여성연합 대표(일본)/ 김호자(일본)/ 김철수 한청 부위원장(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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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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