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 울려퍼진 '님을 위한 행진곡'

끝나지 않는 반란의 땅, 멕시코를 가다 ①

등록 2003.09.20 08:31수정 2003.09.2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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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주

a 시위대를 막고 있는 멕시코 전경들

시위대를 막고 있는 멕시코 전경들 ⓒ 김은주

a 촛불 시위는 멕시코에서도 빛을 발했다

촛불 시위는 멕시코에서도 빛을 발했다 ⓒ 김은주

9월 9일(멕시코 현지 시각), 깐꾼 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는 사실 아주 가벼운 발걸음이었습니다. 해질 무렵만 되면, 혹은 대낮에라도 내키기만 하면 멋대로 비가 내렸던 멕시코시티를 떠나 쨍쨍한 열대의 태양을 실컷 맛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저절로 마음이 밝아지는 참이었지요.

세계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의 행진 대열을 뒤에서 쫓아가는 것도, 그네들의 에너지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만하는 맘 편한 걸음이었습니다.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고, WTO 각료회의를 무산시키려는 젊은 목소리들의 행렬은 집회라기보다는 차라리 축제에 가까웠습니다.


춤을 추면서, 북을 두들기면서, 아스팔트 위에 흙을 뿌리면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투쟁에 참여하는 모습들은 오로지 중앙 무대 하나에만 집중하곤 하는 한국의 집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WTO 회의가 열리고 있는 호텔 존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목은 전경들이 철조망으로 바리케이드를 쳐 놓아 집회 대열은 그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퍼포먼스를 벌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파티스타의 상징인 검은 두건을 쓰고있는 사람들 모습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초록색 수건을 두른 멕시코 농민들의 모습도 반가웠지요.

한국 참가단은 그 날 거리 집회가 예정되어 있지는 않아서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우연히 만난 참세상 방송국의 기자가 전해 주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뙤약볕에 서 있던 청년들도 서너 시를 넘어서면서 각자의 숙소에서 세미나를 하기 위해 떠나거나 다음 날의 프로그램을 위해 흩어져 갔습니다.

다음 날인 9월 10일은 '국제 농민 행동의 날'이라서 오후 내내 시가 행진을 계속할 예정이라기에 깐꾼 가까이에 있는 이슬라 무헤레스에 갔다가 하룻밤을 자고, 점심 나절이 지나 다시 바리케이드 앞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굳게 닫혀 있던 바리케이드 곳곳이 무너져 있었지요. 그 앞에 한국 참가단 모습이 보였습니다. 뜨거운 태양을 그대로 받으며 결연한 표정들로 앉아 있더군요. 제가 도착하기 바로 몇 시간 전에, 이경해 님이 그 자리에서 칼로 가슴을 찔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a 바리케이트 앞의 한국 농민들

바리케이트 앞의 한국 농민들 ⓒ 김은주

a 굳건하던 바리케이드도 무너지고.

굳건하던 바리케이드도 무너지고. ⓒ 김은주

a 사망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유해가 안치된 병원 앞

사망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유해가 안치된 병원 앞 ⓒ 김은주

멕시코의 아스팔트 위에 '농민가'와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멕시코 사람들은 구호로 화답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는 이경해님의 사망 소식을 알렸습니다.

한국 참가단은 병원까지 걸어서 행진하기로 하고 깐꾼 시가를 가로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 행진이 그렇게 슬픈 모습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멕시코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지요. 말이 통하지 않아, 선전전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멕시코 우남 대학의 학생들, 깐꾼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든 세계의 젊은이들이 병원 앞으로 속속 모여들었습니다. 촛불을 밝혀 들고 함께 구호를 외쳤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MR.Lee와 뜻을 함께 합니다. Lee는 우리 속에 함께 살아 있습니다."

따뜻한 동지애가 그 곳에 넘쳐 흘렀습니다.

멕시코로 오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갔던 30명은 멕시코행 비행기가 취소되어 오지를 못하고 있고, 이미 멕시코 공항에 내린 13명은 입국을 거부당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숙소로 들어가는 모든 통로도 막혀버려 멕시코에 들어와 있던 200명 가까운 한국 투쟁단들은 노숙을 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멕시코 농민 단체가 마련해 놓은 천막으로 이동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곳까지 따라갔다가 우리 일행은 깐꾼 시내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9월 20일 오늘 아침, 이경해 님의 영결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 스물아홉 번째 생일에 스스로 운명을 달리하셨고, 내가 멕시코에서 귀국하는 날 그이의 유해도 함께 귀국했다는 몇 번의 우연 앞에서 괜히 감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돌아가신 이경해 님의 명복을 빌면서, 멕시코 여행기를 여행 중반 무렵에 있었던 깐꾼으로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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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주

a LEE, 선명하게 세계 사람들 마음에 새겨진 이름

LEE, 선명하게 세계 사람들 마음에 새겨진 이름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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