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I 결의문 채택 만장일치 아니다"...한국위 위원들 반발

등록 2003.09.22 19:12수정 2003.09.2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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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3년째 감시대상국으로 선정한 국제언론인협회(IPI)의 지난 15일 결의문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인터넷한겨레(www.hani.co.kr)는 22일 'IPI 결의문 짜맞추기 논란'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이번 결의문 채택과 관련, IPI 총회 한국위원회 위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결의문 채택에 항의해 회의장을 빠져나온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또 대표단 대부분은 결의문 채택 여부조차 모르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일부 언론들은 IPI가 '한국은 언론탄압 감시국'을 골자로 하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고 크게 보도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이와 관련해 "국제사회에서 큰 상처를 입는 수모"라며 "정부기관과 각종 지지세력을 동원한 언론 탄압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번 IPI 총회 대표단으로 참석한 구본홍 MBC 보도본부장과 채수삼 대한매일 사장은 총회에 가기 전에 한국위원회 사무국으로부터 성명이나 결의문 채택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성윤 조선일보 기자 역시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IPI 총회 방식도 결의문 내용을 나눠주고 누가 작성했는지도 모른 채 쭉 읽고 끝나는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에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한겨레는 IPI 한국위원회 이사인 현소환 전 연합통신 사장이 결의문 채택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으며, IPI 결의위원회에서 결의문 작성에 조언을 해줬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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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홍 칼럼] IPI 한국대표단에 공개 질의한다

다음은 22일 인터넷한겨레 기사 전문이다.


IPI 결의문 짜맞추기 논란

국제언론인협회가 지난 15일 한국을 3년째 감시대상국(Watch List)으로 지정한 결의문에 대해 당시 연례총회에 참석한 한국위원회 위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일부 참석자들은 결의문 채택에 항의해 회의장을 빠져나오는 진통도 있었다.

이런 진통에도 불구하고 일부신문들은 국제언론인협회가 만장일치로 찬성한 결의문이라면서 이를 비중있게 보도했다. 하지만 보도와 달리 참석자들은 결의문 채택여부를 전혀 모르고 있었고, 결의문도 만장일치로 채택한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구본홍 <문화방송> 보도본부장은 "연례총회에 가기 전에도 한국위원회 사무국으로부터 성명이나 결의문 채택은 없다고 들었다"며 "결의문이 채택될 것을 알았다면 연례총회에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 본부장은 또 "한국의 언론상황은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회사의 대표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참여한 것인데 이런 결의문을 토론도 하지 않고 어떻게 채택할 수 있냐"며 "항의 차원에서 회의장을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채수삼 <대한매일> 사장은 "총회가 시작되기 전에 결의문 내용을 나눠주고 누가 작성했는지도 모른 채 자기들끼리 쭉 읽고 끝났는데, 그게 어떻게 만장일치냐"며 "국제언론인협회의 의사결정방식이라는 게 황당한 수준이다"고 지적했다.

채 사장은 또 "총회가 끝나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신문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신문이라는 것이 이렇게 여론을 호도해서 나갈 수도 있다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며 "우리는 거기에 앉아서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냥 당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채 사장은 "이런 식으로 결의문을 채택한다면 참석한 사람들이 괜한 오해를 받는다"며 "오는 25일 열리기로 한 신문협회 이사회 때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문제제기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제언론인협회 한국위원회 김성윤 사무국장은 "총회 때 결의문을 채택할 것인지 이사회에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들었다"며 "나도 가기 전에는 전혀 몰랐었다"고 밝혔다.

한편 국제언론인협회 한국위원회는 위원장인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비롯해 사무국장까지 <조선일보>쪽에서 맡고 있다. 또 현소환 <뉴스앤뉴스> 편집위원은 지난 82년부터 국제언론인협회 한국위원회 사무국장, 부위원장을 비롯해 지난 96부터는 국제언론인협회 종신회원으로 임명됐다.

결의문 작성 누가?

국제언론인협회 한국위원회에 따르면 결의문은 국제언론인협회 이사회에서 결의문 채택 여부를 결정하고, 이를 국제언론인협회 결의위원회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과정에서 현소환 전 <연합통신> 사장이 결의문 채택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고, 국제언론인협회 결의위원회에서 결의문을 작성할 때 조언을 해준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언론인협회 한국위원회 김성윤 사무국장은 "국제언론인협회 이사회에서 한국쪽 국제언론인협회 종신위원인 현소환 전 <연합통신> 사장이 이사자격으로 참석했고, 지난 13일 이사회에서 결의문 채택 여부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연례총회에 참석했던 구본홍 <문화방송> 보도본부장은 "현소환 전 <연합통신> 사장으로부터 'IPI에서 결의문을 채택할 때 조언을 구해와, 나는 언론인으로서 NO라고 말할 수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언론·시민단체 반발

국제언론인협회 결의문에 대해 언론노조,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 언론·시민단체들은 뒷거래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들은 전두환 정권 시절에 한국을 "언론자유가 인정되는 나라"라고 표현했다가 최근들어 잇따라 '감시대상국'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국제언론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최민희 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IPI이 부회장으로 있고, IPI는 사주들의 권익보호 단체로서 언론자유를 위한 단체로 보기 힘들다"며 "IPI가 언론사 입장에 손을 들어주는 사례가 나올 때마다 다른 뒷거래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국제언론인협회는 지난 95년 서울총회 당시 한국을 '언론자유가 인정되는 나라'로 지칭했다. 하지만 총회가 열리기 한 해 전만 해도 대대적인 언론사 세무조사가 진행됐다.

반면 지난 2001년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실시됐던 그해 국제언론인협회 요한 프리츠 사무총장은 9월 6일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IPI는 지난주 이사회를 열고 한국을 언론자유 탄압 감시대상국(Watch List)에 포함시키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똑같은 세무조사를 두고도 국제언론인협회는 정권에 따라 다른 입장을 제시했다.

언론노조 신학림 위원장은 국제언론인협회 결의문 채택에 대해 "한국언론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결정이고 2001년 세무조사 당시 논란과 지금은 전혀 다른데 같은 상황으로 묘사하고 있다"며 "IPI 회원들이 단 하루라도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 취재·보도 관행을 보면 그런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언론단체에서는 국제언론인협회의 특성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노조 신문개혁특위 이재국 위원장은 "IPI는 사주, 발행인, 편집인들로 구성된 단체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언론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입장을 표명하기에는 부적절한 곳"이라며 "IPI는 언론자유를 외칠 때는 침묵하고 아닐 때에는 언론자유를 외치는 단체다"고 꼬집었다.

지난 2001년 민주당 이미경 의원이 낸 국정감사 자료집에 따르면, 78년 긴급조치 9호가 발효된 때 국제언론인협회는 한국언론을 미국, 스위스와 똑같이 평가를 했다. 또 84년 '보도지침' 시절에도 국제언론인협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나 "의심할 여지 없이 자유로워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주동황 광운대 신방과 교수는 "IPI가 한국의 언론상황에 대해 자세히 모르면서 어떻게 그런 결의문을 채택할 수 있냐"며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결의문 채택에 개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IPI는 조선일보의 대표이사이자 발행인이 방상훈 사장이 부회장으로 있기 때문에 특정 신문을 이익을 옹호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언론자유에 관한 완벽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경 <인터넷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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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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