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횡설수설하는 <동아일보> '횡설수설'

등록 2003.09.25 10:54수정 2003.09.25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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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동아일보 송문홍 논설위원

동아일보 송문홍 논설위원 ⓒ 동아일보

<동아일보>에는 '횡설수설'이라는 기명칼럼이 있다. 주로 간부급 기자들이 채우는 지면인데,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횡설수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듯 싶다.

그런데 오늘(9월25일)자 송문홍 논설위원의 횡설수설은 정말 횡설수설하고 있다. 논설위원이 이렇게 공부를 안 해도 되는지 모를 일이다.

전체적 맥락의 오류는 두고 몇 군데 표현만 우선 짚어보자.

폴러첸씨가 엊그제 경찰청 국정감사장에 나와 한마디 했다. “서울에 있으면서도 평양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세뇌가 북한에도 있지만 한국에도 세뇌와 통제, 조작과 인권무시가 있다.”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곳곳에서 갈등이 빚어지는 한국의 상황을 빗댄 말일 것이다. 북한 인권에 무관심한 여론, 나아가 현 시점에서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남북화해협력을 위해 이롭지 않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한 섭섭함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서울이 평양 같다”는 그의 말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분열상을 대변하는 것 같아 영 개운치 않다."

폴러첸의 "서울이 평양같다"는 주장은 무슨 맥락인가. 그 다음에 폴러첸 자신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북한의 전체주의적인 억압이 한국에서도 정부에 의해 자신과 우익집단에 가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중학생만 되어도 이해할 이 문장을 송 논설위원은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북한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지는 한국의 상황을 빗댄 말이란다. 마지막 문장에서는 이 말이 한국의 심각한 분열상을 대변한다고 한다.

분열이 있고, 여론의 반목이 존재하는 국가가 전체주의 국가일 수 있는가? 송 논설위원이 이 질문을 이해할 정도의 '이해력'이 없을 것 같아 반대로 더 쉽게 물어보자. 폴러첸이 말하듯이 '국민을 세뇌시키고 통제하는' 국가에 분열과 여론의 반목이 존재할 수 있는가?


글을 끝맺는 부분에서도 논설위원의 '무식'한 주장은 계속 이어진다.

폴러첸씨는 <신동아> 10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같은 문제를 놓고 걱정하고 발언을 해도 독일이나 북한에서는 나를 좌파로 취급하고, 한국에서는 우파로 분류한다”고 토로한다. 자신은 북한 인권을 걱정하는 사람일 뿐 좌파니 우파니 하고 구별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는 말이다."


인터뷰의 번역자가 오류를 범한 것인지, 폴러첸이 무식해서 잘못 이야기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 인터뷰는 좌파-우파 와 보수-진보 를 혼동하고 있다. 폴러첸과 같이 반 공산주의, 반 사회주의를 표명하는 이는 세계 어디를 가나 우파이다. 다만 그가 표명하는 과격한 운동방식이나 체제부정의 태도를 독일의 구 사회주의 지지자나 북한에서는 '진보적'이라고 간주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야 여전히 보수=우파 / 진보=좌파 의 등식이 굳건히 성립하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사회주의가 무너진 후 이러한 등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러시아와 같은 구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사회주의 복귀를 노리는 '좌파'가 보수주의자들이고 급격한 자본주의 변화를 요구하는 '우파'가 진보주의자인 것이다.

그런 오류를 지적하기는 커녕 엉뚱한 해석을 덧붙여 자기 주장의 논거로 삼는 송 논설위원의 무지에는 할 말이 없다.

전체적인 칼럼의 논지 역시 설득력이 없다. 이 칼럼의 대체적인 논지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이제는 상식처럼 된 발언을 제시한 후 무의미한 이념갈등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논거로 드는 것이 '남남갈등이 적화통일을 돕는다'는 것이다. 횡설수설도 이 정도면 상당한 수준이다. 대체 <동아일보>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평양 같은 서울
<동아일보> 9월 25일자 [횡설수설] 전문

노르베르트 폴러첸(45)은 몇 해 전부터 북한 인권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해 온 독일인 의사다. 그는 지난해 3월 중국 베이징 주재 스페인 대사관에 탈북자 25명을 진입시킨 ‘기획망명’의 배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 22일에는 강원 철원군에서 라디오와 돈이 담긴 풍선을 북한에 띄우려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여 부상했고, 그 사흘 뒤 대구 유니버시아드 경기장에서 북한 기자들에게 또 폭행을 당했다. 북한 문제에 이토록 열심인 그에 대해 한쪽에선 높게 평가하지만 ‘자기 나라 일도 아닌데 너무 설친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그런 폴러첸씨가 엊그제 경찰청 국정감사장에 나와 한마디 했다. “서울에 있으면서도 평양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세뇌가 북한에도 있지만 한국에도 세뇌와 통제, 조작과 인권무시가 있다.”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곳곳에서 갈등이 빚어지는 한국의 상황을 빗댄 말일 것이다. 북한 인권에 무관심한 여론, 나아가 현 시점에서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남북화해협력을 위해 이롭지 않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한 섭섭함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서울이 평양 같다”는 그의 말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분열상을 대변하는 것 같아 영 개운치 않다.

▷이날 여야 의원들은 폴러첸씨에게서 제각각 자신의 입맛에 맞는 증언을 끌어내려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고 한다. 일부 의원들과 보수단체에서 나온 증인 사이에 육탄전 일보 직전까지 가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외국인 앞에서 국론 조정의 장(場)이 돼야 할 국회조차 남남갈등을 빚는 모습을 보인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좌우 양쪽 날개로 하늘을 나는 새는 몸통으로 균형을 잡는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몸통까지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격이다. 이래서야 새가 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남조선 인구는 4000만명이고 우리는 2000만명이다. 남조선의 2000만명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면 적화 통일이 가능하다.” 생전에 김일성 주석이 했다는 말이다. 남남갈등으로 어부지리를 얻는 쪽은 결국 북한이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폴러첸씨는 신동아 10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같은 문제를 놓고 걱정하고 발언을 해도 독일이나 북한에서는 나를 좌파로 취급하고, 한국에서는 우파로 분류한다”고 토로한다. 자신은 북한 인권을 걱정하는 사람일 뿐 좌파니 우파니 하고 구별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이런 현실주의적 대북관이 아닐까? 그것만이 새를 똑바로 날게 할 수 있을 테니까.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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