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수필이 만났을 때

주완수의 <내 일본인 마누라 켄짱>

등록 2003.09.28 06:49수정 2003.10.0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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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주완수의 <내 일본인 마누라 켄짱>

주완수의 <내 일본인 마누라 켄짱> ⓒ 아름드리미디어

글과 그림이 만나는 경우는 시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수필과 만화가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화가 주완수의 <내 일본인 마누라 켄짱>에는 수필과 만화가 사이 좋게 담겨 있다.

'내 평생의 꿈은 백수인데, 그래도 하나 해보고 싶은 것이 전업주부다'라고 까발리는 그의 글을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푸핫'하며 만화 적인 웃음이 튀어나올 때가 많다. 글의 주제가 다분히 심각할 때도 그는 끝내 만화가의 기질을 발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때, 만화가이면서 동시에 시인을 꿈꾸었을 정도로 글에 대한 욕심이 강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문장은 가끔 문학적인 면도 있다. 물론 글의 주제가 심각할 경우 만화만큼은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이 책은 글(수필)이 앞에 나오고, 나중에 그 글을 짧은 만화로 그려 마무리하는 형식이다.

이를테면, 무엇이든 수시로 기록하는 '아내 켄짱(본명: 시무라 유리)'의 기록습관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분위기를 한껏 진지하게 끌어간다. 하지만 이어진 만화에서는 영락없이 풍자가 나온다. 만화에서는 '사랑행위(?)'를 마친 후 켄짱이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전희 60초, 정상위 30초, 기마위 20초, 로스타임 10초, 합계 2분.. 토끼다!!'

"일본인 아내와의 결혼 생활"

국제 결혼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또 지금도 기회만 닿는다면 국제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지은이 주완수도 국제결혼을 했다. 이 책의 내용도 상당 부분 그의 '일본인 아내'에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그는 일본인을 아내로 맞아 살면서 일본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뀐 듯하다.

"확실히 우리에겐 일본이 가지고 있는 많은 것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한 하나하나 채워 나가면 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에는 없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 중하나가 근대사적 의미의 시민혁명이다. 우리에겐 아직 미완이지만 4·19 시민혁명과 5·18 광주민중항쟁과 6월 항쟁의 경험이 있다."- 본문 중에서


한국과 일본은 전통적인 '불화'로 인해 여전히 서운한 관계에 놓여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가 지은 죄는 미워해야겠지만, 일본인 즉 개인에 대해서는 이제 다른 관점으로 바라 봐야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주완수의 글을 읽다 보면, 그의 그런 고민이 엿보이기도 한다.

지은이 주완수

▲ 주완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지은이 주완수는 만화가이다. 그는 1959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그는, 80년대에 <보통 고릴라>로 만화계에 입문했다. 1988년 출판된 '보통 고릴라'는 정치 풍자 만화로 당시 상당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의 주요 작품집은 <기억 상실 1,2> <20세기를 움직이는 사람들> 등이 있다. 그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나는 일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아는 것이 없으니 사랑도 미움도 없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와 아무런 관계없는 나라였다. 초대받진 않았지만 지금 조용히 그 나라의 문을 두드리고 싶다. 아내의 나라이고, 앞으로는 내 아들의 나라도 될 테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서로 열린 가슴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본문 중에서

'글쟁이 만화가' 주완수

주완수는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학에 들어와 대중 전달력이 가장 높은 매체를 선택하다보니 만화를 골랐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는 그에게 있어 만화는 타인과의 의사 소통의 도구였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까. 그는 책에서 글이나 만화 중 어느 것 하나를 딱히 고집하지 않는다. 글로써 다 표현하지 못한 이야기는 만화로, 또 글의 유혹이 강한 주제는 글로 표현해 내는 것이다. 그의 글은 그래서 더욱 자유로워 보이는 것인 지도 모르겠다.

내 일본인 마누라 켄짱

주완수 지음,
아름드리미디어,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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