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용

맨주먹에서 웨딩홀대표로, 이진태 사장

등록 2003.09.29 10:31수정 2003.09.29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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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영

‘일원도 아끼자. 현재에 만족하면 망한다. 평범한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
이 글귀를 40여 년 가슴에 새겨 재봉사 보조에서 웨딩홀대표가 된 사람이 있다.


지난 98년 대전 파라다이스 웨딩홀을 연 이진태(51) 대표가 바로 그다. 무슨 사업을 할까 고민하는 그에게 대전에는 제대로 된 예식장이 없다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파라다이스 웨딩홀을 열게 됐다.

“다른 예식장을 돌아봤더니 좋지 않았습니다. 다른 예식장은 한 개 층에 2~3개의 예식홀이 모여 있어서 너무 번잡했어요. 앞 팀과 뒤 팀 4개 쌍이 섞이기 일쑤였죠. 시설도 안 좋았고 주차문제도 복잡했습니다.”

일생에서 단 한번뿐인 결혼식을 시간적, 공간적 여유로움 속에 치르도록 하기 위해 한 층에 하나씩의 예식홀을 두었고 다른 예식장과는 차별화를 두자는 생각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렇듯 새로운 예식문화를 선도해 가는 이 대표. 그의 전직이 다름 아닌 재단사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그가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된 과정을 알려면 구구절절한 사연에 귀 기울여야 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고향에 있으면서 도시 사람들이 승용차를 타고 놀러오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고 그것은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시골에서 자라면 저런 생활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작정 서울로 상경을 결심했다.


“양복점을 찾아가 무조건 취직을 시켜달라고 말했습니다. 교복을 입고 있는 어린 학생이니 부모님 허락을 맡고 오라고 하더군요. 어머니가 오셔서 내려가자고 고등학교 졸업은 시켜주겠다고 했지만 동생들이나 고교졸업을 시켜주라며 가지 않았어요.”

어머니와 한참이나 티격태격 싸우는 것을 본 양복점 주인이 숙식을 시켜주며 야간 고교를 보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어머니를 설득시켰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부터 양복점에 취직해 재봉사 보조생활을 시작했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가게 청소를 하고 공장에 올라가 작업을 한 후에 저녁 5시에 학교에 가야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못한 일거리가 널려 있었고 새벽 1~2시까지 일을 해야만 하는 고된 일과가 이어졌다.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학교생활이 어려웠습니다. 실전에 도움이 되는 공부가 아니라 암기 위주의 공부도 싫었어요. 나는 장사 쪽으로 나갈 건데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는 과감히 학교를 그만뒀다. 열심히 재단을 배웠고 군대를 다녀온 후 그토록 바라던 양복점을 차렸다.

“그 당시에는 명동이 양복점으로 제일 유명했어요. 저는 그곳에다 양복점을 차릴 형편이 못돼서 강남이 개발되기 전, 강남 변두리에다 가게를 차리게 됐죠. 이후에 강남이 개발되면서 좋은 위치에 놓이게 됐어요. 운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는 결코 운이 아니었다. 남보다 두 배로 흘린 땀방울 때문이었다.

살면서 학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지만 나중에 시간이 흘러 학벌이 미약하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대 경영대학원에 들어갔지만 가서 보니 그가 원했던 교육이 아니었기에 또 다시 그만뒀다. 학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그의 아들도 마찬가지. 중앙대 사회체육학과에 다니던 아들도 1년 마치고 군대를 제대하더니 사업을 하는데 졸업장이 뭐가 문제냐며 학교를 그만뒀다.

“제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신용이었습니다. 누구와의 약속에 있어서 말 한마디 뱉은 것은 문서로 약속한 것만큼이나 꼭 지켰어요. 손해가 나더라도 약속한 것을 지키면 다시 돌아오죠. 사람들은 당장 눈앞의 이익을 보니 그것이 문제에요.”

그는 예식장을 오픈 한 후 지금까지 어려운 형편으로 결혼시기를 놓친 부부들에게 예식장, 드레스, 사진촬영 등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다. 고아원 등지에도 음식을 제공해주고 있다.

“결혼사진 하나 없이 사는 부부들이 안타까웠어요. 결혼식을 해보면 그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내 즐거움이 더 크답니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새 출발을 항상 곁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사무실에 적혀 있는 글귀를 읽어 보이는 이진태 대표는 그렇다고 구두쇠가 되는 것도 싫고 돈을 버는 기계가 되는 것도 싫다며 감정이 있고 순수한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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