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 '노동당 입당서'는 입국신고서와 같은 것"

송 교수 변호인 김형태 변호사 기자회견서 밝혀

등록 2003.09.29 21:46수정 2003.09.3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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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26일 저녁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최로 `해외민주인사초청 환송 만찬`이 열렸다. 송두율 교수가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하던 중 고개를 떨구며 울먹이고 있다.

지난 26일 저녁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최로 `해외민주인사초청 환송 만찬`이 열렸다. 송두율 교수가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하던 중 고개를 떨구며 울먹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송두율 교수(59·뭔스터대)는 지난 73년 북한에 입국하기 위해 통과의례상 '로동당 입당서'를 썼으며, 이는 마치 우리나라에 입국할 때 입국신고서를 쓰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국가정보원에서 밝혀낸 것이 아니라 송 교수 본인이 스스로 밝힌 것이라고 송 교수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가 전했다.

김 변호사는 29일 오후 7시10분경 서울 강남역 부근 자신의 사무실에 기자회견을 갖고 송 교수를 대신해서 이같은 입장을 발표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이날 오전 송 교수가 ▲자신은 '북한 노동당 당원'이 아니며, ▲북측으로부터 일부 경비를 받은 것이 문제가 돼서 남측의 민주화 운동에 누가 된다면 미안하고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리고 ▲지난 40년 동안 (독일에) 나와있었기에 염두에 두지 못했던 남쪽의 실정법을 앞으로는 염두해서 지키고 살겠다는 일종의 '소명서'를 국정원에 제출했다고 알렸다.

또한 송 교수는 지난 73년 북한을 처음 방문한 이후 지금까지 10여 차례 방문했고, 이때 '김철수'란 이름이 사용됐는지 몰랐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처음 '김철수'란 이름이 사용된 것을 알고 나중에 다시 사용됐을 "나는 '김철수'가 아니라, '송두율'이다"고 항의했다고 한다. 이처럼 송 교수의 항의로 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당시 북한에 방문했을 때는 '송두율'로 적혀있는 증거가 있다고 김 변호사는 해명했다.

다음은 김형태 변호사와 기자들간의 일문일답.


- 송두율 교수는 언제 '노동당 입당서'를 썼나.
"지난 73년도에 북한에 입국하기 위해 노동당 입당서 썼다. 이것은 마치 우리나라 입국할 때 입국신고서 쓰는 것과 같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밝히지 않았는데 본인(송두율 교수)이 먼저 밝힌 것이다."

- 왜 당원에서 탈당하지 않았나.
"(노동당원에서) 탈당 안한 것은 아무런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이유 없다. 이렇게 시끄러워질 줄은 전혀 몰랐다. 꺼리길 것이 없었기 때문에 (입당서를) 썼다고 먼저 밝힌 것이다. 지난 70년대 북한에 입국할 때는 노동당 입당하라는 것은 통과의례라고 본인이 먼저 밝혔다."


- 송 교수의 지금 입장은?
"이 시점에서 문제된다면 자기가 당원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겠다고 했다. 오늘(29일) 오전에 서면으로 국정원에 입장을 밝히는 소명서냈다. 입국신고서를 쓴 것은 맞고, 그 동안 당원으로서 전혀 활동하지 않았으며 당원으로 남지 않겠다는 것을 밝힌 것으로 안다."

a 송두율 교수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가 29일 오후 자신의 사무실에서 송 교수의 입장에 대해 발표했다.

송두율 교수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가 29일 오후 자신의 사무실에서 송 교수의 입장에 대해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유창재

- 국정원에서는 송 교수가 당원이란 것을 몰랐나.
"몰랐다."

- 송 교수는 언제 처음 북한에 갔나.
"73년인가 북한에 처음 갔다. 유신정권 이후에 갔다. 이것도 국정원에 아무런 자료가 없는데 본인이 먼저 말했기 때문에 알려진 것이다. '사실 밝히겠다'고 본인이 온갓 것을 다 밝혔다. 노동당원으로써 이야기나 '김철수'로서 94년에 초청 받아 들어갔다라는 이야기 등을 이쪽(국정원에서) 아무런 증거 없었는데 송 교수가 먼저 이야기했다."

- '김철수'란 이름은 언제 썼으며, 본인은 미리 알았나.
"94년 처음으로 '김철수'란 이름 썼다. 북한 공항에 들어갈 때 썼다. 그때 한 번만 썼다. (김일성) 장례식 때인 것 같다. 그전에 세미나 있었는데 (북한에) 안들어가려 했다가 확인해보니 '김철수'라 되어 있어 그때 '내가 왜 김철수냐. 송두율인데…'라고 항의했더니 (김일성) 장례식 때 '송두율'이라 써있었다. 이에 대해 입증할 문건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 자료를 낼지 모르겠다. 그 자료는 우리는 안가지고 있고, 당시 항의했던 정보가 있다. 국정원이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 송 교수는 북한에 몇번 방문했나.
"73년 이후 10여차례 방문한 것으로 안다. 73년에 1번, 80년대 후반 1번, 나머지 90년대에 방문했다."

-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부분에 대해 설명해 달라.
"본인이 이 부분도 먼저 이야기한 것이다. 그때 입국할 때 자기가 '김철수'란 것도 전혀 몰랐었고, '정치국 후보위원'이란 것 모르는 것이었다."

- 현재 국정원 조사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 것인가.
"지금 '김철수'라면 바로 '정치국 후보'로 연결되기 때문에 바로 '김철수=정치국 후보'란 논리는 잘못이다. 정치국 후보위원은 북한에서 랭킹 20위로 황장엽씨도 못들어 갔고, 북한에서 대외 활동하던 김영순이도 못들어간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송 교수는 체포영장 발부된 줄 알면서도 (이번에) 들어온 것은 그런 의혹 없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기 위해 들어온 것이다. '노동당 입국서'는 최소한의 통과의례로 쓰게 된 것이며, 경비 일부를 보조받았다는 이야기도 먼저 이야기했다. 송 교슈는 학자로서 (정치적인) 감각 없었기 때문에 모든 사실을 순수하게 이야기한 것이다. 아마도 (송 교수가) 말 안했으면 시끄러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 경비로 얼마를 받았나. 독일에서 별도로 받은 것은 없나.
"일부 경비로 '항공료' 몇 백 불씩 몇 번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독일에서 받은 것 없다. 이것도 본인이 이야기하면 모르는 것인데 다 말했다."

- 김철수란 이름이 여럿있나.
"오늘 황석영씨도 이야기했듯이 자신도 북한에 들어갈 때 '홍철'이란 이름으로 (북한에서) 썼다고 했지 않냐. 마찬가지로 송 교수도 '왜 내가 김철수냐. 내가 송두율이다'이라고 이름이 쓰였을 당시 항의했으며, 아니란 것 입증할 수 있다."

- 처음 '김철수'란 이름은 김일성 장례식 때 사용됐다는 것인가.
"한번 밖에 없다. 그렇게 알고 있다."

- 국정원에서 집요하게 추궁해서 밝혀진 것이 아니가.
"아니다. 본인이 이야기 안하면 모르는 것인데 스스로 말한 것이다."

- 국정원에서 강도 높은 조사가 있을 것이란 것을 예상하지 못했나

"(송 교수가) 먼저 솔직하게 이야기 많이 해서 (국정원의 조사가) 강도 높게 된 것이다. 예상 못했다."

- 오길남씨 입북 권유에 대한 부분은 뭐라고 설명하나.
"국정원 조사에서 오길남 부분은 명백히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이 아니다. 국정원에서도 아닌 것을 알았던 것으로 안다. 오길남 부분은 해명됐다."

- 73년도 북에 가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때가 유신 시절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넌더리 났던 사람들은 많이 갔다. 유신체제의 반발로 많이 찾았다. 그래서 지난 30년 전 일들이 문제가 된다면 송 교수 본인은 더 이상 당원이 아니란 것을 확실히 밝히겠다고 했으며, 국정원에 밝혔다.

또한 경비 일부를 받은 것이 문제돼서 남쪽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 누가 된다면 미안하고 국민 여러분에게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리고 40여년 동안 독일에 나와서 남쪽의 실정법을 염두해 두지 않았는데, 앞으로 염두해 두고 잘 지키며 살겠다는 세가지 내용의 입장을 밝히는 소명서를 문서화해서 국정원에 오늘 오전에 제출했다."

- 입국 전에 추진위원회 일부에서 반대를 했었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 송 교수의 입장은?
"체포영장 각오하고 들어왔다. 또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을 때 처음부터 피의자 신문 조서를 받았다. 사실 협조해서 들어왔는데 당황스러워 한다. 이전에 남북 고위급 관계자들이 서로 다만나고 하는데 본인의 문제가 커질 줄 몰랐던 것 같다. 독일의 하버마스 교수도 송 교수에게 한국의 국가보안법 아래서 더 이상 곤욕을 겪지 말고 얼른 나오라고 한다."

- 앞으로 송 교수의 일정은?
"현재로써 본인이 직접 입장을 밝히지는 않을 것이다. 공개적인 행사는 안하려하고 한다. 하지만 순수한 학술대회는 참가할 예정이다. 송 교수는 현재 서산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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