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홀로 서기'를 위한 동행

교육의 중심에 누가 서 있는가?

등록 2003.09.30 08:25수정 2003.09.30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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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교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제가 몸살을 앓을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몰려옵니다. 도서관을 친근하고 만만한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지요. 운동화를 슬리퍼로 갈아 신기만 하면 조금 떠들어도 내버려 둡니다.

푹신하고 안락한 소파에 앉아 책을 보며 담소하기도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친구에게 메일을 보내는 아이들이 늘어가면서 도서관은 학생들의 활기찬 쉼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방과후에는 그날 지각한 학생들이 와서 청소를 하고 책을 보기도 합니다. 저를 친구처럼 만만하게 대하는 아이들도 청소를 하지 않고 도망을 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있게 되면 그 다음날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함께 청소를 해야하기 때문이지요. 사실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하루 지각하는 것은 작은 잘못이지만 지각하는 습관을 고쳐주려고 애쓰는 선생님의 지도에 따르지 않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말해주면 이해를 하는 눈치입니다. 그런 안전장치가 있기에 아이들과 마음놓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지도 모릅니다.

도서관이 아이들에게 친근한 공간으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것은 제 개인적인 성향 때문만은 아닌 교육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친근한 교사가 되고자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개인의 취향을 넘어선 분명한 교육적 관점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도 이 점을 분명히 해두는 편입니다. 언젠가 아이들이 저를 좀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아서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성격이 유순한 편이 아니에요. 마음이 순하거나 유약해서 여러분에게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친구처럼 대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자신감의 표현인지도 몰라요. 친구처럼 대해주면 만만하게 생각하고 올라타려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올라탄 아이를 다시 내려오게 하는 것이 교사의 전문성이거든요."

말을 부드럽게 했지만 사실은 은근한 협박이나 엄포가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설득하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고상한 방법을 썼다고 해도 겁을 주는 것만으로는 아이들의 마음을 사기는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런 말도 털어놓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편한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선생님보다는 여러분 자신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잖아요. 여러분이 주인이니까 제가 좀 힘들어도 여러분에게 유익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학기초에 꽉 잡았다가 조금씩 풀어주면 솔직히 선생님도 편하고 여러분들도 크게 불만을 갖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은 이미 거기에 길들여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계속 하다보면 여러분은 선생님의 눈치나 살피게 되고, 나중에는 자신감도 없고 자기 주장도 없는 사람이 되기가 쉽지요. 전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원치 않거든요."


이런 말이 아이들에게 먹히겠느냐고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교사가 의외로 많습니다. 그건 정말 아이들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교사가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한 아이를 중심에 놓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교사의 사랑의 질을 식별하는 일만큼은 아이들이 전문가입니다. 자기 중심의 사랑이 아니라면 아이들은 교사의 사랑에 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며칠 전 방과후에 한 아이와 운동장을 함께 뛰었습니다. 집안 사정이 좀 어려워 혼자 잠에서 깨어야 하는 날이 많은 아이인데, 그러다 보니 생활습관이 잡히지 않아 10시가 넘도록 잠을 자버리든지, 일찍 눈을 떠도 곧바로 챙기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가 2교시가 지나서야 얼굴을 보이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예 결석을 해버리는 날도 적지 않습니다.

그 아이에게 매를 댄 적은 없지만 매를 댄다고 해도 그런 습관이 쉽게 고쳐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디더라도 말로 할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는데, 문제는 어떤 진지한 말을 해주어도 그 시효가 그날 밤으로 마감되고 마는 것입니다. 말을 타지 않는 것은 아닌데 잠을 자고 나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 있는 그런 식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반 아이들의 지각하는 습관을 고쳐주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의 지각이 담임인 저를 많이 불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사정이 어렵거나 학업에 흥미를 붙이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인 실업계 학교에서는 담임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 지의 여부를 한 눈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지각 결석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교육이란 원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과가 이루어지는 법이지만 내공이 여간 강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눈에 보이는 수치에 마냥 초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제자의 잘못된 생활습관을 고쳐주려는 순수한 교육적 동기보다는 담임으로서 편한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의 욕구가 더 강해지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실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달콤한 자기합리화에 빠지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문제는 그런 현실에만 자꾸 눈을 돌리고 자기변명에 익숙해지다보면 속전속결의 강압적인 방법이 동원되기 마련이고, 결국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은 관리자로서의 유능한 담임을 만들기 위한 들러리로밖에는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은 엄연한 교육의 실패이지요.

따지고 보면, 이제 거의 손을 쓸 수 없을 지경까지 와버린 오늘날의 입시위주 교육의 병폐도 학생들 개개인의 소중한 삶들이 학교와 교육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소외되면서 생겨난 일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학교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지 않았기에 초래된 결과입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저에게도 뾰쪽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자아이와 방과후에 운동장을 함께 뛰어본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까 싶어서 말입니다. 교육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 중심에 교사인 '내'가 아닌 '아이'들이 서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실은 운동장을 돌면서 바로 그 점이 내내 제 마음을 찔렀습니다. 나는 그의 관리자나 감독자로서 지금 운동장을 뛰고 있는가? 아니면 제자의 '홀로 서기'를 위한 친구로서의 동행인가? 오늘 이 운동장의 중심에 누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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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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