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은 왜 자리를 떠나지 못했을까?

도종환 시인의 초청 강연을 듣고

등록 2003.10.09 08:20수정 2003.10.0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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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도종환 시인

도종환 시인 ⓒ 안준철

도종환 시인이 순천에 왔습니다. 그는 <접시꽃 당신>으로 대중의 더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아온 시인으로 유명하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은 전교조 활동을 비롯한 교육자로서의 행적에 더 큰 관심을 갖기도 합니다. 그는 여덟 권의 시집을 낸 바 있는 왕성한 창작력을 지닌 중견 시인이자 척박한 우리의 교육현장을 개선하기 위해 온 몸을 던져 싸워온 교육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초청강연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의 건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가끔 의식이 끊어지기도 하여 누군가 옆에서 깨워주지 않으면 곤란한 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는 말을 그를 잘 아는 시인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제가 그의 건강을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조금 더 이른 지난 해 겨울부터입니다.

그의 여덟 번째 시집 <슬픔의 뿌리>에 나오는 쓸쓸한 시편들을 읽다가 그의 건강에 대한 불편한 예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는데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유성호 교수의 다음 글을 읽고 난 뒤에는 그런 불안감이 부쩍 더 커졌던 것입니다.

'첫 시집으로부터 이즈음에 이르는 20년 가까운 시간이 그의 문학과 삶 모두에 커다란 성취를 안겨준 것이 아니냐고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 시간들은 도종환 스스로에게는 너무도 힘든 고난의 나날이었다. 웬만한 영혼들이라면 하나라도 버거운, 가난과 아내의 죽음, 험난했던 교육운동과 구속, 그리고 복직과 지역운동 등으로 이어진 힘겨운 시간들을 그야말로 온 몸으로 통과해왔으니 말이다.'

이날 초청강연은 '전교조 순천 3개(초등, 중등, 사립)지회'와 '순천교육공동체시민회의'가 공동 주관하여 학부모와 교사를 대상으로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식전행사로 초등지회에서 준비한 꼬마 아이들의 신명난 풍물놀이가 끝나고 간단한 개회식에 이어 단상에 올라온 그는 잠깐 머뭇거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잠깐 동안의 침묵이 관중인 저에게는 오히려 어떤 흡인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는데 유명 강사라서 그것을 미리 계산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강의 도중에도 말하다 말고 잠깐 뜸을 들이곤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는 느린 것이 몸에 배인 전형적인 충청도 사나이였던 것입니다. 거기에 건강으로 인해 목소리가 상해 있었기 때문에 잠시 진정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치 험한 여울에 놓여진 징검다리를 건너듯 느리고 조심스러운 어투가 오히려 설득력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느리다 보니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서둘러 결론을 내려고 하지도 않고, 그래서 이쪽에서 더 많이 생각하게 하는, 그런 묘한 힘이 느껴졌습니다. 한 마디로 그의 강의에는 여백이 있었습니다. 그가 강의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그의 여덟 번째 시집에도 '여백'이란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우리의 교육 현장에는 여백이 없습니다. 먼저, 정규수업시수가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합니다. 여기에 방과 후 보충자율학습이나 학원수강 등 사교육활동까지 합하면 감히 뒤를 따라올 나라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교육적 열정과 시간적인 투자가 있었기에 이만한 나라가 된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문제는 양에 치중하다보면 질에는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가령, 이런 식입니다.


"김 선생, 방학 때 보충수업 몇 시간이나 해유?"
"하루 다섯 시간 연타로 뛰어유."
"그럼 피곤해서 수업 준비할 시간이나 있시유?"
"그냥 문제지나 푸는 거지 별수 있시유?"

그는 지금 충청도 청주에서 가까운 보은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지역에서 근무하는 교사들과 나눈 대화를 여과 없이 들려준 것 같았습니다. 여백이 없는 학교 생활이 교사나 학생 모두에게 얼마나 비교육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인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하고도 남을 일입니다.

그날 그가 들려준 이야기에는 밝고 희망적인 내용도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딸 아이 담임선생님 이야기가 참 풋풋하고 좋았습니다. 이태 전에 출간한 산문집 <마지막 한 번 더 용서하는 마음>에도 이런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한번은 딸애가 학교에 갔다 오더니 "아빠 지렛대로 지구를 들 수 있어요?" 하고 묻는다. 뚱딴지 같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뭐라고?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 하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집에 가서 어른들에게 물어 오랬단다. 지렛대로 지구를 들 수 있느냐니 뭘 잘못 알고 얘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확인해봤으나 틀림없이 선생님이 그렇게 숙제를 냈다고 한다. "요새 뭘 배우는데 그러니?" 하고 물었더니 지레와 도르레에 대해 배운단다.'

그는 결국 딸에게 책을 좀 가져와 보라고 시킵니다. 그리고 딸애가 배우고 있는 것은 간단한 연모를 사용할 때 편리한 점과 지렛대를 이용하여 작은 힘을 큰 힘으로 바꾸는 원리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딸에게 이렇게 말을 해줍니다.

"못 빼는 장도리 있잖아. 그것이 바로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거야. 그리고 손으로 따기 힘든 병 뚜껑을 병따게로 따는 것도 지렛대 원리야. 그러고 보니 손톱깎기도 있다."

딸은 아빠가 해준 말을 그대로 공책에 적습니다. 그런 딸을 바라보면서 그는 담임선생님이 딸에게 숙제를 내준 의도를 깨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지렛대로 지구를 들 수는 없지만 그런 원리를 이용해서 편리하게 사용하는 것을 생활 속에서 찾아보고 장도리나 손톱깎기 등이 지레의 원리를 이용한 것임을 실제로 보여주는 시간을 아이와 함께 갖는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뜻이 숨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a 도종환 교육 에세이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도종환 교육 에세이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 안준철

얼마 후에 딸은 또 엉뚱한 숙제를 가지고 와서 아빠를 괴롭힙니다. 다름 아닌 이솝이야기입니다. 아래 글이 그 숙제 내용입니다.

하루는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지나가는 나그네가 이솝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서 시내까지는 얼마나 걸려유?"
이솝은 대답 대신 물끄러미 나그네를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나그네는 속으로 이솝이 귀머거리인 줄 알고 갈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나그네가 100m쯤 갔을 때, 이솝이 나그네를 불러 세웠습니다.
"그 정도로 가면 두 시간쯤 걸려유."

문제1> 이솝이 알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문제2> 이솝이 모르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문제3> 나그네의 질문에는 어떤 모순이 있었을까요?


이솝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속력을 계산하는 방법과 거리와 시간과의 관계를 알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는 이런 기발한 숙제를 딸애에게 내주기를 즐겨하는 담임 선생님이 고맙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현재의 교육여건 속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이런 재미있고 기발한 숙제를 내주기 위해서는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합니다. 한 시간 수업을 준비하려면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우리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지요.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일주일에 30여 시간 이상 가량의 수업을 부담해야 하고, 10여 개 이상 교과의 수업을 혼자 준비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니 창의력을 키워줄 수 있는 양질의 교육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지요."

그는 언젠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일간지에 낸 직원 채용 광고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직원 채용광고라면 으레 4년제 대학 졸업자라든가, 병역필이라든가, 학업성적이 어때해야 한다든가, 하는 것들이 눈에 띄기 마련인데 그런 내용은 전혀 보이지 않고 무슨 유행가 가사 같기도 한 다음 아홉 가지 사항이 자격조건으로 제시된 것입니다.

3일 동안 밤을 꼬박 세울 수 있는가?
3일 동안 놀고만 지낼 수 있는가?
노래방에서 서른 곡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
아버지의 시계를 고치다가 고장내본 기억이 있는가?
비오는 수요일에 빨간 장미를 사본 적이 있는가?
못생긴 파트너와 3시간 이상 즐겁게 지낼 수 있는가?
3개 국어를 못해도 3개국을 배낭여행을 할 수 있는가?
주머니에 있는 돈을 털어 주고 집에까지 걸어서 가본 적이 있는가?
학교를 가다가 무작정 여행을 떠나본 적이 있는가?


"기업은 이윤추구가 목적입니다. 그러니 기업의 이미지 관리만을 위해서 큰돈을 들여 이런 광고를 제작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충분한 논의과정을 통해서 그들이 제시한 아홉 가지 조건에 딱 들어맞는 인적자원으로 이윤추구가 가능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기업에서 제시한 아홉 가지 조건들에 주석을 달기라도 하듯이 각 문장마다 조목조목 차분하고 꼼꼼하게 짚어나갔습니다. 저도 그의 말을 한 자라도 놓칠세라 수첩에 빼곡이 적었습니다. 몸이 편치 않은 그가 전국을 순례하며 강의할 것도 아닐텐데, 분명히 이곳의 누군가가 억지를 부려 쉽게 쉽게 사양도 못하는 마음 착한 그를 오게 한 것이 분명한데, 그의 교육에 대한 생각들을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3일 동안 밤을 꼬박 새울 수 있는가? 한 가지에 매달려 밤을 새울 수 있는 능력을 과제 집착력이라고 합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길러내는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고 기업에서는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 허약한 점을 학교나 가정에서 교육을 통해 키워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우리 기업은 과제집착력이 좋은 사원을 뽑습니다', 하는 다소 살벌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 대신 이런 익살스런 문장을 사용한 것이지요. "

"3일 동안 놀고만 지낼 수 있는가? 우리나라 남자들은 놀 줄을 모릅니다. 놀면 안 되는 줄 알았고, 놀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노는 것을 배운 적은 더욱 없습니다. 그래서 모이면 술을 마시고, 싸우고, 무슨 일을 하다가 잘 안되면 그것을 다른 사람과 상의하거나 협조를 얻어 풀 생각을 하지 않고 혼자 괴로워합니다. 즐겁게 소통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학교나 가정에서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회는 그런 사람을 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노래방에서 서른 곡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 가창력이 좋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래방에 가면 노래는 못 부르지만 분위기를 잘 맞추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교성이 좋고 조직의 생리를 아는 사람이지요. 학교에서 교과서만 파고드는 모범생들은 그런 덕목이 부족합니다. 이제 대기업에서는 학교 성적이 조금 부족해도 환경적응력과 직원과의 친화력이 뛰어난 인재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아버지 시계를 고치다가 고장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지요. 호기심은 창의성의 바탕이 됩니다. 어릴 때는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런 거 몰라도 돼." "시간 없어" 하는 식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의 싹을 잘라버립니다. 그럴 때는 "그래?" "글세?" "뭘까?" 하는 식으로만 대꾸를 해주어도 충분합니다. 문제는 아이들의 쏟아지는 질문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비오는 수요일에 빨간 장미꽃을 사본 적이 있습니까? 꼭 수요일이 아니라도 좋겠지요. 혹시 그런 분 계시면 손 한 번 들어보십시오. 그런데 이 말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이제 이윤창출이 목적인 기업에서조차 정서가 메마른 사람은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학교나 가정에서는 아이들의 인지적 능력만을 계속 고집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종례시간에 곧장 집에 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가다가 코스모스를 보거든 손을 흔들어주고, 강아지풀을 보면 손으로 한 번 쓸어주고 가고, 파아란 하늘도 한 번 올려보고 가라고 말합니다. 그래봐야 몇 십 분입니다. 그렇지 않고 곧장 집에 가면 곧장 가서 컴퓨터를 켭니다. 아이들이 가상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자연과 더불어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사회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못생긴 파트너와 3시간 이상 즐겁게 지낼 수 있는가? 세상은 자기에게 유익한 사람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에서도 자기와 성격이 맞지 않거나 이유 없이 자기를 적대시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들과 잘 화합하고 그들을 오히려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는 것이 성공의 요체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입시교육에 매몰된 현행 교육으로는 그런 인간상을 창출하기는 어렵습니다."

"3개 국어를 못해도 3개국을 배낭여행을 할 수 있는가? 적극성, 모험심, 이런 것을 요구하는 것이겠지요. '백 번 넘어지게 하라, 그러면 백 번 일어나는 지혜를 배우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가정에서 자녀들을 어떻게 키웁니까? 한 번이라도 넘어지면 난리가 나지요. 아예 넘어질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하고 아이들을 키우지는 않습니까?

어느 회사에서 신입사원에게 갑자기 러시아에서 근무하라고 명을 내립니다. 이때 "나는 어학실력도 부족하고 집안 사정도 있고 해서 갈 수 없다고 말하는 사원이 있는가 하면, "6개월만 시간을 주시면 러시아어를 배워서 가겠습니다"라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이런 아이들을 키워달라고 그들은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털어 주고 집에까지 걸어서 가본 적이 있는가? 희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그러한 인간상을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낸 책 중에 <그때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라는 책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도마뱀이 벽에 못에 박힌 채 3년을 살았습니다. 누군가 못에 박힌 도마뱀 곁을 떠나지 않고 먹이를 가져다 준 것이지요(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시인의 말투는 더욱 느려지고 표정은 너무도 숙연했습니다).

가끔 TV를 통해 보게 되는 동물의 세계는 양육강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동물을 연구한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동물의 세계는 공생의 세계라고 말합니다. 독을 가진 동물도 같은 동족과 싸울 때는 치명적인 독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은 그렇지 않지요. 어린아이들에게 경쟁심리를 심어주는 것은 악덕의 씨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경쟁의 끝은 어디입니까? 개인의 경쟁은 사회와 국가간의 전쟁으로 치달아 서로를 파괴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경쟁시스템에만 의존하여 아이들을 키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학교를 가다가 무작정 여행을 떠나본 적이 있는가? 일탈은 가끔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파격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런 아홉 가지 덕목과 더불어 인지적인 능력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사회에서 정작 요구하는 소중한 아홉 가지 덕목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의 성적만을 챙기고 있습니다. 이제 학교에서 주는 성적표만이 아닌 가정에서 부모가 매기는 아이의 또 다른 성적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가 강의를 마치고 단상을 내려오자 저는 서둘러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식사라도 하면서 그의 사진도 찍고 인터뷰를 할 생각이었지만 그보다는 저와 동갑내기거나 한 살이 위인 그의 손을 한 번 잡아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믿는 신께 그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미 불과 몇 십 분 뒤의 기차표를 예약해 놓은 뒤였습니다. 그와 좀더 있고 싶어서 다음 차를 타고 가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교사의 녹봉이 아니고도 살만한 유명 시인이자 작가가 되었지만 아직도 열악한 교육현장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본인의 의사와는 달리 누군가를 위해 휴식 없는 삶을 살다가 건강이 쇠하여져 잠시 휴직한 상태일 뿐입니다. 말이 느리고 그만큼 삶에서 넉넉한 여백이 느껴지는 그가 여백 없는 삶을 살다가 병을 얻은 것은 슬픈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와 악수만을 나누고 돌아서면서 문득 3년 동안 못에 박힌 친구(부모자식간일 수도 있지만) 도마뱀을 위해 멀리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를 지킨 도마뱀을 떠올렸습니다. 이제 그 헌신과 희생의 자리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뜨거운 연대로 즐겁게 소통하며 함께 일을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가 단상을 내려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을 주어 강조했듯이 우리 아이들을 '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의 쾌유를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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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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