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먹어 본 으름덩굴의 열매

유년시절의 달콤한 맛이 들어있는 자연의 열매

등록 2003.09.30 09:17수정 2003.09.30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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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으름덩굴의 꽃

으름덩굴의 꽃 ⓒ 김민수

지난 봄 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난생 처음으로 본 꽃이 있었습니다. 향기는 아카시아 꽃인 듯 한데, 얼마나 진한지 향기가 입에 씹히는 듯 합니다. 또 마치 초코렛이 이빨 사이에 남아있는 맛과도 같은 향내가 온 몸으로 전해지던 그것은 바로 으름 덩굴의 꽃이었습니다.


향기에 취해 꽃모양에 취해 참 신기한 꽃도 다 있다 싶었는데 어느 분이 가을이 되면 열매가 열리는데 바나나 맛 같기도 하고, 모양새도 그러하여 산바나나라고도 한다고 했습니다. 가을엔 꼭 먹어봐야지 생각했는데 드디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a 커다란 꽃이 암꽃이다.

커다란 꽃이 암꽃이다. ⓒ 김민수

그리고 얼마 후 으름덩굴 열매에 관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10월 3일 개천절에 으름을 딸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10월초가 으름덩굴의 열매를 거두는 시기겠거니 생각하고 아이들과 10월초에 지난 봄에 으름덩굴 꽃을 찍었던 곳에 가서 으름덩굴 열매를 따서 맛을 볼 생각을 했었습니다.

a 익기 직전이나 스스로 벌어져야 먹을 수 있다.

익기 직전이나 스스로 벌어져야 먹을 수 있다. ⓒ 김민수

그런데 그 기회는 일찍 찾아왔습니다. 9월 초 시내에 나갈 일이 있어서 나가는데 시간의 여유가 30여분 됩니다. 그 30여분을 도심에서 보내느니 산책을 하며 풍경사진이라도 몇 장 찍을 요량으로 중산간도로에서 숲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 때 으름덩굴의 열매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사진처럼 아직은 벌어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하나를 따서 껍질을 벗기려는데 잘 안되더군요. 그래서 이빨로 '우둑!'하고 깨물어 보았는데 씨가 많고 아직은 익지 않아서 먹을 수 없더군요,

그런데 문제는 그 뒤였습니다. 깔깔하다고 표현하면 다 못할 것 같은 깔깔함이 목에 퍼져오는데 참기 힘들 정도로 두어 시간 이상 목이 깔깔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더군요.

설익은 으름덩굴의 열매는 건들지도 따지도 말자, 조금만 기다리자.


a 이렇게 서너 개씩 달려있기도 하고 많은 것은 다섯개까지도 달려있다.

이렇게 서너 개씩 달려있기도 하고 많은 것은 다섯개까지도 달려있다. ⓒ 김민수

그렇게 으름덩굴의 열매에 대한 생각을 잊을 즈음 어느 분이 으름덩굴의 열매가 익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집 근처 으름덩굴의 사진을 찍은 곳에 가보았는데 태풍때문인지 아니면 무슨 이유인지 열매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가 보다 했습니다.

a 가장 알맞게 익은 상태인 것 같다.

가장 알맞게 익은 상태인 것 같다. ⓒ 김민수

그런데 중산간도로 근처에 제가 꽃사진을 자주 찍는 곳엘 갔는데 길가 근처 여기저기에 으름덩굴이 보였습니다.
'아, 여기도 많이 있었구나!'
그런데 으름덩굴의 열매는 보이질 않습니다. 덩굴의 상태로 보아 이미 누가 따간 모양입니다. 조금만 서두둘 것을 너무 늦었구나 아쉬워하며 덩굴을 추적해가니 으름덩굴 열매가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높아서 열매를 만질 수조차 없었습니다.

a 무리지어 함께 익어가고 있다.

무리지어 함께 익어가고 있다. ⓒ 김민수

가장 탐스럽게 열린 으름덩굴의 열매를 보니 꼭 따서 어떤 맛인지 먹어보고 싶은 욕심이 들더군요. 골짜기를 더듬으며 조금 깊은 곳에 들어가니 사람의 손길이 타지 않은 듯 손이 달만한 곳에 으름덩굴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하얀 속열매에는 왜 그리도 씨가 많은지 먹는데 여간 불편하지가 않았습니다. 성질이 급한 나는 혀끝에 맴도는 달콤한 맛에 씨앗까지 우두둑 씹어먹었습니다. 전에 목을 깔깔하게 하던 그 맛이 아릿하게 올라옵니다.
'아이들이 먹기에는 쉽지 않겠구나'
그래서 우리 식구 수대로 다섯 개만 따서 돌아왔습니다. 새와 들짐승의 간식거리로 남겨두고 말입니다.

a 이렇게 벌어지면 곤충들이나 새가 찾아든다.

이렇게 벌어지면 곤충들이나 새가 찾아든다. ⓒ 김민수

개미며 곤충들이 열매를 분주하게 드나들고 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열매다 싶습니다.

'그래, 너무 맛있고, 너무 먹기 편하면 남아있질 못하겠지. 참 지혜롭구나'

그렇게 식구 수대로 다섯 개를 따서 집으로 돌아와 으름덩굴 열매에 대한 글을 또다시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는 '절대로 씨앗은 먹지 마시오. 특히 씹지 마시오'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고, 껍질은 다려서 먹어도 좋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a 껍질만 덩그라니 남아있다.

껍질만 덩그라니 남아있다. ⓒ 김민수

늘 제가 먹지 못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농담처럼 말했었는데 이번이 두 번째 경우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먹지 못하는 것 세 가지는 첫째, 없어서 못 먹는 것, 둘째 몰라서 못 먹는 것, 셋째 안줘서 못 먹는 것입니다. 좀 썰렁하죠?

a 내가 만난 으름덩굴 중 가장 큰 것이었다. 껍질만 남았다.

내가 만난 으름덩굴 중 가장 큰 것이었다. 껍질만 남았다. ⓒ 김민수

먹는 방법을 알고는 내 몫을 다시 따서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씨앗을 걸러내며 먹으니 바나나 맛보다는 조금 더 달고, 뭔가 달짝찌근한 으름향기같은 맛도 나고, 그런대로 먹을 만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호기심에 뭐냐고 달라붙더니만 미심쩍은 얼굴로 조금씩 떼어먹습니다.
'별로 맛이 없네'
아이들의 반응입니다.

그렇겠죠. 요즘 아이들에게 별로 자극적이지 않은 으름열매가 혀 끝에 달라붙을 수가 없겠죠. 덕분에 나머지 몫도 전부 내 것이 되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먹어본 으름덩굴의 열매. 올해 맛을 보았으니 간혹 산에서 만나면 들짐승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하나 정도 따서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 아이의 손에 들려진 으름덩굴의 열매로 크기가 가늠될 수 있을런지.

아이의 손에 들려진 으름덩굴의 열매로 크기가 가늠될 수 있을런지. ⓒ 김민수

그리고 이제 남은 저 껍질은 잘 말렸다 겨울에 다려먹어 보아야겠습니다. 그 맛이 각별하다면 들짐승들을 위해 속내를 다 떨쳐버린 으름덩굴 열매의 껍질만 모아서 으름차를 손님들에게 내어놓는 것도 특별한 대접일 것 같습니다.

유년시절의 맛이 듬뿍 들어있는 으름덩굴의 열매. 아마 유년시절에 이 열매를 먹었던 경험이 있었더라면 하나가 아니라 배가 터지도록 따서 먹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자연과 가까이 살다보니 제 마음도 행동도 철부지 아이들처럼 되어 가는 것 같다며 아내가 걱정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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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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