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는 야하기만 할까?...주목할만한 이 주의 새 책들

<누드로 사는 여자> <논어 30구> <또디> <뿔난 그리움>

등록 2003.10.01 12:50수정 2003.10.0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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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여자도 날 울릴 수 있구나
- 신해숙의 <누드로 사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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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낌이있는책

누구라서 그런 시절이 없었을까? 균형 잡힌 예쁜 가슴과 날씬한 허리, 거기에 수술을 했건 말았던 커다랗고 촉촉한 눈망울의 여성을 동경하던 시절.


결국 지금의 서른 셋 사내를 키운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잔망스런 꿈이었다. 그 아름다움이 피조된 것이건, 자의에 의해 변조된 것이건. 각설하고, 우리는 예쁜 여자가 좋았다.

하지만 그 '예쁜 여자'라는 조작된 관념이 싸구려 유리그릇보다 더 깨어지기 쉬운 헛된 바람임을 알기까지의 시간은 짧았다. 벗은 여자의 육체는 아름다웠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그 아름다움이란 가난한 기자에겐 필경 붙잡을 수 없는 피상적인 관념. 간명하고도 복잡다단한 그 진리를 알아가며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화가 신해숙에 의해 최근 출간된 에세이 <누드로 사는 여자>(느낌이있는책)는 '벗은 여자의 몸'이 욕망이 아닌 연민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 작가의 손에서 묘사된 수많은 여성들의 벗은 몸은, 한 시절 우리가 꿈꾸어 가 닿고자 했던 가파른 추억의 편린으로 읽힌다. 퍼렇게 멍든 작은 가슴과 생산의 수단임을 포기한 축처진 엉덩이.

육척 장신의 아들 둘을 생산했으면서도 그 생산의 주체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여자가 있다. 기자의 엄마. 불꺼진 어두운 방. 서로가 서로에게 연민의 대상인 늙은 엄마와 아들. 그 앞에서도 제 할 말을 다 못하고 살아온, 아니 앞으로 못하고 살아갈 그녀.


어느 한 때 "오늘은 이야기하다가 내 방에서 잘래"라는 말을 하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에게 지청구만 먹던 그녀. 내 엄마.

신해숙의 책 <누드로 사는 여자>에서 수십 점의 누드 이상으로 독자들을 매혹하는 힘은 그녀의 솔직한 글이다.


멀리 외국에서 살다온 아들을 위해 안방에 가족 모두가 잘 수 있는 큰 침대를 마련하고, "우리 저 침대에서 가족이 모두 함께 자자"라고 말할 수 있는 엄마스러움(?). 어찌 보면 엄살 같은 그녀의 문장을 읽으며 기자의 눈가가 뜨거워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다시 한번 욕망의 핏대를 세워 신해숙이 그린 벌거벗은 몸의 여자를 본다. 그러나 아무리 뚫어져라 바라봐도 거기에선 저급한 욕망, 그 한 조각도 읽히지가 않는다. 안마시술소와 룸살롱, 붉은빛 네온 등이 유혹하는 청량리와 미아리라면 사족을 못쓰는 기자로선 신통한 일이다. 무슨 이유일까? 혹, 신해숙의 누드에서 엄마를 본 탓?


공자는 어떻게 살았나?
- 이인호의 <논어 30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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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필드

세상 사람들이 가지는 잘못된 선입견의 하나.

"<논어>는 공자가 쓴 것이고, 그 글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와 여필종부(女必從夫)의 고루한 이론을 설파한 골치 아픈 문건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가 백번 천번 옳다고 생각한 이 이야기는 과연 기자들이 잘 쓰는 말로 '펙트(Fact·사실)'일까?

한양대 중문과 교수이자 <중국, 이것이 중국이다>의 저자 이인호의 근간 <논어 30구>(아이필드)는 위 물음에 대해 "아니다, 그렇지 않다"라고 답하고 있다.

이인호는 "논어는 공자가 쓴 글이 아니다. 공자의 제자 혹은, 그 제자의 제자가 공자가 한 말, 공자가 제자가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그러니, 물론 <논의>의 감수자도 공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위와 같이 <논어>에 대한 사람들의 해묵은 오해와 편견을 깨는 이인호의 책은 어렵게만 생각돼온 <논어>를 30구절로 알기 쉽게 다이제스트화(化)해 독자들과 편하게 만나게 하고있다.

말로만 "공자 왈 맹자 왈"하던 당신이나 "공자가 망해야 한국이 산다"라고 떠돌어온 당신은 과연 공자의 진실에 대해 얼마나 알고있는지.


"가장 아름다운 행복은 일상이다"
- 만화가 정연식의 <또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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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북스

하릴없는 열망과 그 열망의 덧없음을 설파하는 실존주의. "나는 우연히 혹은 무상히 이땅에 떨어진 존재일뿐이다. 그런 하찮은 존재인 내가 과연 세상을 향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는 실존주의 거두 알베르트 카뮈와 쟝 폴 싸르트르를 혐오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 혐오의 시간은 짧았다. 소설가 박일문의 말처럼 "인간이란 겨우 욕망하는 존재에 불과"할 뿐임을 깨달았던 탓이다.

하지만, 아직도 화인(火印)처럼 기자의 가슴에 남아있는 싸르트르의 한마디. "가장 아름다운 행복은 일상이다." 이 말의 영속성을 증명하는 책이 나와 화제다. 젊은 만화가 정연식의 <또디>(애니북스).

정연식은 아내와 딸,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와 흔하디 흔한 물컵 하나로도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재주를 이 책을 통해 유감없이 보여준다.

사통팔달하는 그의 재주가 잉태된 곳은 두 말 할 것 없이 '일상'. 정연식은 일상의 아름다움을 아는 작가다. 이를 알아차린 시인 안도현은 표사를 통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곳을 혼자서 관찰하고 있다"는 말로 일상의 미세함을 포착하는 정연식의 예민한 촉수를 추켜세웠다.


타락한 시의 시대를 질타하는 시 같은 산문
- 김택근의 <뿔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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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엔들

경향신문 부국장을 지낸 문사(文士) 김택근이 인용하는 정약용(1762~1836)의 문장은 '시의 위대함'을 믿어온 우리를 아프게 한다.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을 것이며, 아름다움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 하며,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그러한 뜻이 담겨있지 않은 시는 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기자(?)답지' 않게 세상살이와 인간사를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살피고 있는 김택근의 산문집 <뿔난 그리움>(꿈엔들)은 여러 대목에서 독자들을 울린다. 그 가슴찡함의 이유는 무엇보다 책에 담긴 진실성. 김택근은 지나간 것들의 그리움과 다가올 것들의 설렘을 이 책 하나에 묶어 '사람살이의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이 가을. 붉은 감잎과 귀뚜라미, 어둠에 쫓기는 길손과 기러기의 날개짓을 맑은 눈으로 보는 노(老)기자의 혜안은 숨가쁘게 앞으로만 달려온 우리들의 발걸음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눈을 비껴난 곳에도 사람, 그 사람의 아름다움은 있다. 왜 그걸 애써 모른 척 하는가?" 그 말이 기자를 아프게 한다.

누드로 사는 여자

신해숙 지음,
느낌이있는책,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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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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