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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재 조선일보 판매국장이 정경희씨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에서 각별하게 우리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발언이었다.
(1) "조선일보가 옥천에서 일부 세력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판매부수를 지켜 지역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쟁지 지국장에게 물어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2) "옥천에서 조선일보 판매부수가 4분의 1로 떨어져 지국운영이 어려워졌는데도 판매국장이란 자가 그것도 모르고 앉아 있다면 저는 판매국장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되어 당연히 회사를 떠나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김효재 판매국장이 '배수진'을 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발언 (1)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경우 발언 (2)에서 고백한 것처럼 회사를 떠나겠다고 '공개 선언'한 것이다.
그것은 굳은 의지를 자신있게 밝힌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언론사 기자들의 필독지인 <미디어오늘>에 조선일보에 불리한 내용(더 구체적으로는 조선일보 판매국장의 업무상 책임과 관련된 내용)이 보도된 것에 대한 분노와 반감의 굴절된 표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김효재 판매국장은 '완벽한 글쓰기'를 추구하기 마련인 문화부장이라는 경력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것도 전자우편이 아닌 종이편지에서 '앉아'를 '앉자'로 오기(誤記)하는 실수를 범했다(앞에 인용한 발언(2)는 기자가 표기법에 맞게 바로잡아 놓은 것임을 밝혀둔다). 편지를 작성하던 당시 김 국장이 평상심을 잃고 매우 격앙돼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진실게임'의 향배에 따라선 한 언론사의 고위직 간부가 스스로 회사를 떠나야 하는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아무튼 옥천으로 달려간 기자는 김효재 판매국장이 편지에서 '객관적 근거'로 '유일하게' 제시한, "경쟁지 지국장에게 물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는 주장을 검증해 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선 당사자인 경쟁지 지국장들을 만나야 했다.
추적 3 : 경쟁지 지국장을 만나라!
지난 9월 5일과 6일 이틀 동안 기자는 옥천에서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등 3개 지국장을 만났다.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은 정영준 한겨레 지국장. 그에게 조선일보 판매국장의 주장을 전달한 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곧바로 튀어나온 답변은 이랬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네유."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라고? 의아한 표정으로 "그게 무슨 뜻이냐"고 재차 묻는 기자에게 그가 이번에는 껄껄 웃기까지 하면서 대답해 주었다.
"아니, 달랑 세 치 혀만 가지고 '내가 1등이다' 큰소리치면 뭔 소용이 있남유? 지금 당장 옥천 읍내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슨 신문 보느냐고 물어보면 금방 끝날 것 아니것슈? 안 그려유?"
정영준 한겨레 지국장은 그렇게 두 번만 답하고 더 이상의 부연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두 번째로 만난 동아일보 지국장과의 만남에서 곧바로 풀렸다. 지국 경력 10년차인 손광석 동아일보 지국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옥천에서 조선일보는 이미 끝났습니다. 내 경쟁상대는 조선일보가 아니라 한겨레입니다. 아마 한겨레 지국장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그도 (경쟁상대는) 나(동아일보)라고 답할 겁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의 한 대목이다.
―조선일보 본사의 판매국장은 옥천에서 여전히 조선일보가 판매부수 1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경쟁지 지국장들도 인정할 것이라고 했는데….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절대 인정하지 못하겠고, 그것은 사실과도 전혀 다릅니다. 탁상 위에서야 어떤 주장인들 못하겠습니까. 아마 그 판매국장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서류에는 옥천으로 (조선일보가) 3∼4000부 이상 내려간다고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내려보내기만 하면 뭐 합니까? 독자들이 돈 내고 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 아닌가요."
그러면서 그도 정영준 한겨레 지국장처럼 이런 말을 덧붙였다.
"긴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장 읍내 거리에 나가서 구독현황을 조사해 보면 금방 알 겁니다."
한편 기자는 동아일보 지국장과의 대화에서 조선일보 절독운동이 옥천지역에 가져온 새로운 변화의 징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와 나눈 다음과 같은 대화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옥천에서 조선일보 절독운동이 신문판매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까.
"아마도 옥천에서 조선일보 절독운동의 효과를 나만큼 온몸으로 실감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옥천에서) 이 운동이 터지고 나서 조선일보가 타격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새벽에 읍내에서 신문을 배달하다 보면 솔직히 조선일보가 잘 안 보이거든요. 몇 년 전만 해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죠."
―그렇다면 조선일보 절독운동이 동아일보에 플러스가 됐습니까.
"처음에는 나도 (조선일보 절독운동에) 박수를 쳤지요. 한 동안은 조선일보를 절독한 사람들이 동아일보로 왔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정말이지 동아일보 지국장 노릇 할 만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좋은 시절'이 오래 가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U-턴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겁니다. 조선일보 절독운동이 대세를 탈수록 동아일보 독자까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독자들이 중앙일보 쪽으로 가기라도 했단 말인가요.
"아닙니다. 조선일보 절독운동의 가장 큰 효과를 본 것은 한겨레였습니다. 그 '조중동'인지 뭔지 하는 말이 나돌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한겨레에 '언론권력' 시리즈가 연재되기 시작하면서 조선일보만이 아니라 동아일보까지 타격을 받기 시작했어요. 오죽하면 30·40년 이상 동아일보만 보시던 분들마저 '동아일보 논조가 바뀌었다', '동아일보도 조선일보와 똑같다'면서 하루아침에 싹둑 끊어버리지 뭡니까? 그런 분들은 아무리 애원을 해도 생각을 바꾸지 않았어요. 그럴 때는 정말이지 눈물이 줄줄 흐르더군요. 요즘 동아일보 보도는 지국장인 내가 봐도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동아일보 지국장의 솔직한 고백은 결국 독자들이 조선일보의 정체를 제대로 알게 되면 동아일보나 중앙일보도 자연스럽게 함께 퇴출시킬 수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한때 안티조선 진영에서 언론개혁의 주적(主敵)이 '조선일보'냐 '조중동'이냐를 가지고 논쟁한 적이 있는데, 적어도 옥천에선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할 문제가 아님이 증명된 셈이다. 한편 손광석 동아일보 지국장은 다음과 같은 발언도 했다.
"도리어 옥천에선 한겨레 지국이 골칫거리입니다. 독자들의 반응이 좋으니까 이번 기회에 아예 신문시장을 석권하려고 그러는지 자꾸만 신문시장 교란행위(?)를 합니다. 본인은 아니라고 부인하겠지만, 우리 경쟁지 지국장들이 보기에는 정말이지 생존권을 위협하는 절박한 문제입니다. 그렇게 안 해도 옥천에선 독자들이 갈수록 한겨레를 찾게 될 텐 데도 말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손광석 지국장이 마지막으로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툭 던졌다.
"옥천은 한겨레 지국을 하기 정말 좋은 곳입니다. 내가 한겨레 지국을 맡았다면 정당한 방법을 동원하고도 벌써 조선일보를 완전히 박살냈을 텐데…. 조선일보, 그거 정말 나쁜 신문 아닙니까?"
세번째로 만난 신준호 중앙일보 지국장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그의 증언에서는 앞의 두 사람과는 다소 다른 뉘앙스가 느껴졌다.
"안티조선의 손길이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는 주택가를 제외하곤 조선일보가 엄청 죽은 것이 사실입니다. 3·4년 전만 해도 읍내 중심가에 나가면 한 집 건너마다 조선일보를 봤는데, 지금은 가뭄에 콩 나듯 하거든요. 아마 4분의 1 규모까지 줄었다는 게 정확할 겁니다. 실제로는 더 줄었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중앙일보는 솔직히 여기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고, 동아일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렇다면 한겨레가 1위라는 말일까. 그러나 신준호 지국장은 그런 분석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한겨레가 단독 1위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조중동과 한겨레가 엎치락뒤치락하며 '도토리 키재기'를 한다고 보면 가장 정확할 겁니다. 옥천에선 한겨레가 신문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중앙일보 지국장 역시 조선일보의 '추풍낙엽(秋風落葉)'에는 동의하면서도 한겨레의 '욱일승천(旭日昇天)'에는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듯했다.
세 경쟁지 지국장이 뉘앙스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옥천에서 조선일보가 흔들림 없이 판매부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쟁지 지국장들도 인정한다"는 김효재 조선일보 판매국장의 주장은 정작 '경쟁지 지국장들의 증언에 의해' 신빙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추적 4 : 신문구독 현황을 조사하라!
"아마 조선일보 보는 집 찾기 힘들걸요."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찾아낸 한 신문사의 판촉사원을 만나려고 지난 9월 5일 저녁 방문한 식당에서 "조선일보 절독운동이 얼마나 효과가 있느냐"고 묻자 젊은 남자 종업원이 시원스런 목소리로 답한 말이다. 그는 "가정집은 몰라도 음식점이나 상가에서는 손님들의 성화 때문에 조선일보를 볼 수 없다"면서 "옥천에서 조선일보를 보면 장사 망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는 말까지 있다"고 말했다.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한 송모(43)씨는 지난 5년 동안 충청도 일대에서 신문판촉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요즘도 신문판촉을 위해 옥천지역의 상가나 주택을 방문하고 있다는 그의 증언에 의하면, 옥천지역 신문시장은 크게 한겨레, 동아일보, 경향신문이 3파전 구도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판촉사원으로 먹고살면서 내 이런 지역은 처음 봅니다. 다른 지역에선 조선일보 몫이 워낙 크니까 일단 제외하고 나머지 신문끼리 박 터지게 싸우는데, 옥천에선 모든 게 거꾸로 돼 있어요. 조선일보 판촉사원들이 옥천에 대거 투입됐다가 '젊은 사람이 그렇게 할 일이 없어서 하필이면 조선일보를 팔러 다니느냐,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호통치는 노인과 주민들을 만났다가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는 전설 같은 얘기를 듣기도 했지요."
지난 9월 6일. 기자는 취재를 모두 마치고 옥천을 떠나기 위해 옥천역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신문구독 현황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일었다. 사건조서나 주민들의 증언만 가지고는 도저히 성이 차지 않았던 것이다. 기자가 일부의 편향된 증언이나 자료만을 근거로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취재 예정에 없던 '무작위 표본추출 대면조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우선 표본지역부터 선정해야 했는데, 기자가 서 있던 옥천역에서 옥천군청까지 가는 읍내 중심가의 도로와 접한 상가를 조사대상으로 설정했다.
조사대상 상가는 모두 120개였는데, 약 3시간 정도가 흐른 뒤에야 대면조사는 모두 끝이 났다(문이 닫힌 관계로 직접 조사하지 못한 몇 군데는 옥천신문 기자들에게 추가 조사를 부탁했다). 상가에서 구독중인 중앙 일간지 부수의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조사 결과 전체 내용은 기사 끝에 있는 <옥천지역 신문 구독 현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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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 | 부수 | 신문명 | 부수 | 한겨레 | 26 | 동아일보 | 18 | 경향신문 | 10 | 중앙일보 | 6 | 한국일보 | 3 | 세계일보 | 2 | 국민일보 | 2
| 조선일보 |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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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경제지 부수는 매일경제(5) 한국경제(2) 순이었고, 스포츠지는 스포츠서울(9) 일간스포츠(2) 스포츠투데이(2) 스포츠조선(1) 순으로 나왔다. 이상의 조사 결과에서 기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추출해낼 수 있었다.
첫째, 조중동이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는 다른 지역과 달리 옥천에서는 이미 신문 구독의 다원화가 이뤄져 있었다. 특히 다른 지역에선 압도적으로 수위를 달리고 있는 조선일보가 옥천에선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소문만은 아니었음이 이번 기회에 분명하게 확인됐다.
둘째, 한겨레와 동아일보가 타 신문을 압도적 수치로 앞선 가운데 1·2위를 다투고 있었다. 그러나 동아일보 독자는 갈수록 떨어져 나가고 있는 추세였으며, 그들이 한겨레로 옮겨가고 있는 형국이었다. 동아일보 지국장이 "한겨레가 골칫거리"라고 토로한 것을 반증하는 수치로 볼 수 있다.
셋째, '조중동 카르텔' 중에서 동아일보를 제외하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동아일보조차 조선일보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문제 많은 신문'이라는 분위기가 지역 내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넷째, 경향신문이 중앙일보와 한국일보는 물론이고 조선일보까지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는 것도 언론의 다원화라는 측면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IMF사태 당시 문을 닫았던 경향신문 옥천지국이 최근 다시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수치로 볼 수 있다.
물론 이 결과만으로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사 대상지역이 옥천군의 '정치·경제 1번지'이자 군내 여론을 선도하는 중심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구독현황 조사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원래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상가는 보디가드, 한성상호저축은행, 옥천칼라스튜디오, 옥천우체국 등 총 4부로 집계됐다. 그런데 의류상점인 보디가드 주인은 "4개월 전 구독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는데도 강제로 투입하고 있으니 제발 끊어달라"면서 조사 결과에서 제외해 달라고 했다. 한성상호저축은행의 강 모 부장도 "다음달까지 끊을 테니까 제발 안 보는 것으로 집계해 달라"고 애원했다.
한편 옥천칼라와 옥천우체국은 기자가 직접 조사하지 못하고 옥천신문 기자들이 조사해 알려준 것이기 때문에 본인들의 의사를 직접 확인할 수 없었음을 밝혀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성상호저축은행의 강 부장이 기자에게 던진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고객들 때문에 12부의 신문을 구독하고 있는데, 그 중에 어쩔 수 없이 조선일보도 끼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친일신문인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것으로 보도될 경우 지역사회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으니 제발 빼주시기 바랍니다. 부탁합니다."
한편 기자는 '크로스 체킹'을 위하여 조선일보 옥천지국을 방문했다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현장을 목격했다. 김효재 조선일보 판매국장과의 전화통화 과정에서도 황당한 해프닝이 발생했다. 지면관계상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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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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