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자성적 성찰'이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통해 심경을 밝히고 있는 송두율 교수.오마이뉴스 권우성
오후 2시경 송두율 교수가 기자회견문 낭독을 시작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송 교수는 '그간의 활동에 대한 자성적 성찰'이라는 입장문을 통해 "37년만에 입국한 무한한 기쁨은 한 순간이고 '양심적 학자'에서 '거물간첩'으로 추락한데 대해 심각히 자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 교수는 "국정원에서 발표한 내용 가운데 일부 왜곡된 것이 있다"며 총 7가지 항목에 대해 해명했다.
첫째, 1973년 여름 첫 방북은 학문적 관심에서 이뤄졌다.
둘째, 노동당원으로 의식, 활동한 바 없다. 입북 당시 받은 주체사상 교육과 노동당 입북은 당시로선 통과의례에 불과한 것이었다.
세째, '노동당 정치국원 김철수'로 요구받은 적도, 동의한 적도 없다. 지난 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장례 참가 요청을 받고 입북했을 때 행사장 명패에도 '송두율'이었다. 나는 북에서 포섭대상이었다.
네째, 15만불의 공작금을 받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92~93년경 받은 7만불은 독일의 한국학 연구원 운영자금으로 받았고, 그외 항공비 등으로 받은 2~3만불 등 모두 7~8만불이 전부다.
다섯째, 북에 충성서약문을 썼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경축일에 남으로 치면 축전과 같은 것을 보냈을 뿐이다.
여섯째, 오길남씨와의 대질신문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그의 재입북을 강요, 협박한 적이 없다. 이 내용은 녹취가 있으니 보면 안다. 나는 그동안 단 1명도 입북을 권유한 적이 없다.
일곱째, 1995년 이후 북경에서 개최된 남북 통일포럼 행사가 북의 공작으로 성사됐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당시 행사는 선경, 대우 등 남한 기업이 경비후원을 했고, 당시 한겨레, 동아, 중앙 등이 이미 보도했다.
이어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송 교수는 이후 행보와 관련, "고국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으며, 사과 부분에 대해서는 "뭘 사과해야 할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송 교수는 또 "37년만에 귀국했는데 추방당한다면 그건 상상하기 힘들다"며 "법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을 마친 오후 3시께 숙소로 돌아가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 송 교수는 식사를 하기 위해 아카데미하우스 1층 로비로 나왔다. 이 때 기자들이 송 교수 주변으로 몰려들어 '기자회견을 마친 심경이 어떠느냐'는 질문을 했지만 송 교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승용차에 올라탔다.
차에 앉은 송 교수는 기자들에게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는 말만 남기고 가족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