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일행의 후손들 이야기를 전해 준 김이선할아버지김대호
이곳에서 하멜 일행의 후손들이 살았다는 것이다. 하멜은 <하멜표류기>를 통해 조선체류 기간 13년 중 병영성에 억류되어 8년을 보내면서 일행 중 3명이 이곳 처녀와 결혼을 해서 후손을 남겼다고 한다.
하멜 일행은 1653년(효종4) 제주도에 난파했다가 1666년(현종7) 8명이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탈출한 후 일본정부의 외교중재로 조선에 남은 8명 중 1명(얀 클래센·당시 49세)을 제외한 7명이 송환됐다.
할아버지 이야기는 남원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진 얀 클래센의 후손들 외에 또 다른 하멜 일행의 후손이 강진에 거주했다는 이야기다. 당시 조선 효종은 네덜란드인을 남만인이라고 불렀던 점을 착안해 하멜 일행에게 남(南)씨라는 성씨를 부여했으며 훈련도감에 편재했다.
전남대 김태진 교수는 '하멜과 전라도'라는 글을 통해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네덜란드 출신 하멜 일행 남북산, 남이안 등은 '병영 남씨(兵營 南氏)의 조상이며, 이들의 후손들이 주로 병영, 작천, 남원 등지에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주해 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남북 휴전 회담 북측 대표였던 남일(南日)을 하멜 일행의 후손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한국전쟁 당시 병영성 등 이 지역 문화재가 훼손되지 않은 것은 병영출신으로 알려진 인민군 장교 남일이 이를 막았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