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갯불에 콩볶 듯 교토에서의 반나절

축성 400주년 맞은 니조성과 도지, 그리고 밤의 도심

등록 2003.10.03 16:11수정 2003.10.03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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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도지(東寺)의 남대문(南大門)과 오중탑(五重塔)

도지(東寺)의 남대문(南大門)과 오중탑(五重塔) ⓒ 장영미


지난 밤은 겐큐엔(玄宮園)에서의 풀벌레 소리에 취해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 다음 날의 교토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쉬이 잠들지 못했다는 게 맞을 것이다.

교토를 다시 찾게 된 건 꽉채워 3년만이다. '정들면 고향'이란 말이 있듯이 교토에서 살았던 3년간이 그랬던 모양으로, 지금도 교토는 내 마음 한켠에 정겹고 그리운 이름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그런 내가 난생 처음 서울을 벗어나 살게 된 도시가 바로 교토였으니 교토는 내게 제2의 고향인 셈이다.


교토에서의 생활이 즐겁고 편하기만 했다면 또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좌충우돌, 우왕좌왕, 갈팡질팡, 사면초가, 사고무친 등의 말로 대표되는 초행의 타국살이였으니 남다른 감상이 쌓일 수 밖에 없었다. 그토록 볼거리 많고 먹거리 많다는 천년의 도읍지에서 3년을 생활했건만, 생각만큼 구석구석 둘러보지를 못했다. '생활을 한다는 것'과 '관광·여행을 한다는 것'엔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유명사찰들과 신사, 볼거리들이 길가에 밟히는 돌처럼 널려있었건만, 너무 흔했던 탓인지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도 않았고, 게다가 어린 아이 키우면서 사는 게 바빠서 좀처럼 시간적(時間的)·물적(物的)·심적(心的)·육체적(肉體的) 여유를 내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관광이나 여행이란 것이 이러한 여러가지 상황의 뒷받침 아래, 치열한 일상 생활에서 눈을 돌려 '여유를 즐기는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교토에 간다하니 딸아이는 덩달아 신이 나서 빨리 가자고 성화였다. 비록 6살짜리 인생이지만 제게도 추억할 곳이 있다는 게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늦게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일찌감치 출발하였어야 마땅했으나 아이의 체력을 염두에 두어야했다. 히꼬네역에서 11시 출발의 쾌속열차를 타니 딱 46분만에 교토역에 도착했다.

a 도지(東寺) 내부의 금당(金堂), 약사여래삼존과 십이신장이 모셔져 있다.

도지(東寺) 내부의 금당(金堂), 약사여래삼존과 십이신장이 모셔져 있다. ⓒ 장영미


도쿄만하지는 않겠지만 교토역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감회에 젖을 새도 없이 서둘러 교토역 2층에 있는 관광안내소로 갔다. 일요일이라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예전에 가보지 못했던 니조성(二条城)과 도지(東寺), 다이도꾸지(大德寺) 세 곳의 버스노선을 물었다. 직원은 버스노선도 위에 버스번호를 표시해주고, 일일승차권(500엔)을 사용하는 것이 저렴하다고 일러주었다.

도시락을 사서 소풍 기분을 내보는 것도 좋을 듯 싶어 교토역사 내의 백화점 지하로 갔다. '전에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이 즐비했었던가?' 교토 명물의 '쓰케모노(漬物. 일본식 절인 야채)'와 '오까시(菓子)' '오짜(茶)' 등 선물용 물건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조금이라도 '튀기' 위해 안감힘을 다하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으며 도시락 판매대를 찾아 매장을 둘러 보았다.


여러 가게의 여러가지 도시락이 놓여있었다. 오랜만에 알록달록하고 먹음직스런 여러 종류의 도시락을 보니 군침이 절로 났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고…. 결국 사찰요리가 담긴 도시락과 딸아이가 고른 주먹밥을 샀다.

먼저 간 곳은 지도상 교토역에서 가까운 '도지(東寺)'. 거리상으로는 가까운데 버스는 빙 돌아서 가서 꽤 멀게 느껴졌다.


도지(東寺)는 794년 헤이안(교토)으로 천도한 후 헤이안쿄(平安京)의 남문이었던 라조몽(羅城門)의 좌우에 세워진 절 중의 하나이다. 서쪽에 세워졌던 '사이지(西寺)'는 소실되어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이후 823년 일본 진언종(眞言宗)의 창시자인 승려 구카이(空海. 일명 弘法大師)에게 하사되었다.

도지는 보물창고라 불리울 정도로 수많은 일본의 국보와 중요문화재를 보유한 절이다. 주요건물로는 약사여래좌상을 모신 금당(金堂), 홍법대사의 밀교(密敎)의 가르침을 표현했다는 입체만다라(入體만曼茶羅)를 배치해 놓은 강당(講堂), 식당(食堂), 남대문(南大門), 일본의 옛탑들 가운데 최고(最高)인 오중탑(五重塔) 등이 있다. 그 밖에도 국보급의 회화, 서적, 공예품 등을 다수 보관하고 있다는데 보물관(寶物館)은 봄과 가을 특별공개 시에만 볼 수 있다고 한다.

a 일본의 옛탑들 가운데 가장 높은 도지의 오중탑(五重塔)

일본의 옛탑들 가운데 가장 높은 도지의 오중탑(五重塔) ⓒ 장영미


그리고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남대문과 금당, 강당, 식당 순으로 경내의 주요건물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있다는 것이다. 도지도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수난을 겪었다. 태풍, 화재, 지진 등에 의한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는 역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다른 유명 사찰들과 달리 이곳에선 불상을 모셔 놓고 있어 한결 절다운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주요건물들을 빼면 경내의 경치는 다른 절들에 비해 삭막하고 초라해 보였다.

a 금당 내부의 약사여래삼존

금당 내부의 약사여래삼존 ⓒ 장영미

a 강당(講堂) 내부의 입체만다라(立體曼茶羅) 중 가운데 여래부(如來部)

강당(講堂) 내부의 입체만다라(立體曼茶羅) 중 가운데 여래부(如來部) ⓒ 장영미


도지의 정원 한 곁에서 개미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은 후 딸아이는 비둘기들을 좇아 다녔다. 서북쪽에 있는 대사당(大師堂)을 들른 후 그림 그리는 노인들을 보며 노닐다 보니 그곳에서 꽤 많은 시간을 허비해버렸다.

서둘러 버스를 타고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니조성(二条城)으로 갔다. 전날 밤 뉴스에서 니조성이 축성 400주년을 맞아 9월 13일 부터 11월 16일까지 몇몇 건물을 특별공개하는 등 다채로운 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얼핏 보았다. 처음 생각엔 아주 좋은 기회인 것 같았는데 결과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내겐 오히려 손해였다.

니조성은 1603년 도쿠가와가의 초대 쇼군 이에야스(德川家康)가 현재의 니노마루(二の丸)부분을 완성해 입성하였고, 3대 쇼군 이에미쯔(家光)에 의해 확장되어 1626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성은 교토의 천황궁인 고쇼(御所)를 수호하고, 쇼군이 에도로부터 천황을 방문하러 교토에 왔을 때 숙소로 쓰기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주요건물로는 니노마루(二の丸), 혼마루(本丸), 히가시오테몽(東大手門)이 있고, 니노마루테이엔(二の丸庭園)과 세이류엔(淸流園)의 정원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니조성 전체는 외호(外濠. 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성곽을 빙둘러 파 놓은 연못)로 둘러싸여 있으며 성 내부의 혼마루는 내호(內濠)로 둘러싸여 있다.

아이를 데리고 너무 여유를 부린 탓에 니조성에 도착한 건 오후 3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교토의 교통사정을 까맣게 잊은 탓도 있었고 폐관시간을 염두에 두지 못한 탓도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작은 도시와 달리 이 곳만해도 꽤 큰 도시여서 이동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매표소 앞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떤 아주머니가 친절하게도 일단 입장권만 끊어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일러줬다. 특별공개하는 건물들은 따로 입장료를 받는 모양으로 셋트권을 사면 100엔정도 이득이었다. 지금 특별공개하는 건물들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그곳들은 4시까지 입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전부를 못 볼 수도 있으니 따로 표를 끊으라고 했다.

출입구이자 이번에 내부를 특별공개하는 '히가시오테몽(東大手門)' 앞에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이곳에서도 어떤 아주머니가 표도 없이 줄을 서버린 내게 자리도 맡아주고 표사는 곳도 알려주는 등 친절을 베풀었다. 덕분에 침입자를 공격하기 위한 '돌 떨어뜨리는 구멍'을 바람같이 순식간에 보고 나올 수 있었다.

a 니조성(二条城)의 정문인 히가시오테몽(東大手門)

니조성(二条城)의 정문인 히가시오테몽(東大手門) ⓒ 장영미


다음은 니노마루의 부속 건물로 이번에 특별공개되는 '부엌과 욕실'을 보러갔다. 역시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사람들이 뿜는 열기로 내부는 몹시 후덥지근했고 어두웠다. 정해진 길을 따라 걸으며 그림, 옷감, 서적 및 시대적 배경 등을 적은 설명문들을 보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부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에 쫓기고 사람들에 치여서 차분히 살펴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안타까웠다.

이어서 역시 내부가 특별공개되는 '혼마루(本丸)'를 향해 걸었다. 찾아가는 동안 이미 내부 입장은 마감되었다. 혼마루는 1626년 이에미쯔에 의해 증축되었으나 몇차례의 낙뢰, 화재 등으로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893-1894년 교토고쇼의 옛 계궁(桂宮)을 이전해 온 것이라한다. 혼마루의 서남쪽엔 5층이었다는 천수각(天守閣)의 터만 남아있다.

a 혼마루(本丸), 혼마루 내부의 천수각(天守閣) 터에서 바라 본 전경

혼마루(本丸), 혼마루 내부의 천수각(天守閣) 터에서 바라 본 전경 ⓒ 장영미


a 혼마루를 둘러싸고 있는 내호(內濠)

혼마루를 둘러싸고 있는 내호(內濠) ⓒ 장영미


마지막으로 간 곳은 상시공개되고 있는 니조성의 핵심 '니노마루고텐(二の丸御殿)'. 역시 입장 시간이 지나서 내부는 볼 수 없었으나 외관은 금장식이 박혀 있어 매우 화려해 보였다. 니노마루는 모모야마시대(桃山時代)의 무가풍 서원의 대표적인 건물로 여섯 동이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연결되어있고, 33개의 방에 800여 장의 다다미가 깔려있다. 그리고 각 방엔 가노파(狩野派)가 방의 용도에 따라 직접 그린 벽화들로 장식되어 있다.

a 니노마루(二の丸) 전경

니노마루(二の丸) 전경 ⓒ 장영미


니조성을 나오면서 괜히 특별공개란 이름에 현혹되어 니조성 전체를 둘러 볼 기회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니노마루를 들려서 니노마루 정원과 혼마루, 세이류엔을 돌아 나오면 딱 알맞은 시간이었는데, 특별공개덕에 '특별히' 길게 줄을 서야해서 시간을 많이 허비한 꼴이 되었다. 결국 이것도 급조된 여행이 갖는 한계에 의한 것이지만 말이다.

날도 어둑어둑해져오고, 오늘도 실컷 걸어다닌 딸아이는 배고프다고 야단이었다. 예전에 가본 적이 있는 회전초밥집에 가기로 하고 시조가와라마치(四条河原町) 행의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이미 만원인 채로 도착했고 어쩔 수 없이 뒷 계단에 선 채로 가게 되었다.

기억을 더듬어서 겨우 그 때의 그 초밥집을 발견했는데 그 집 맞은 편에 전국적 체인을 가진 더 값싼 회전초밥집이 생긴 게 아닌가! 두말 할 나위없이 더 값싼 초밥집으로 들어갔다. 손님이 어찌나 많은 지 20분 정도 기다린 끝에 자리로 안내되었다. 평소에 잘 먹지 않아 걱정을 끼치던 딸아이가 초밥접시 쌓는 재미에 빠져 초밥을 게눈 감추 듯 먹어대었다. 그것이 흐뭇해서 서로 내기라도 하듯 접시를 쌓으며 즐겁게 허기진 배를 채웠다.

밤의 교토, 밤의 가와라마치는 처음이었다. 교토는 늙고, 조용하고, 차분한 도시인 줄만 알았는데 가와라마치는 교토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번화가로 젊고, 몹시 혼잡하고 시끌벅적했다. 개조된 차량을 탄 젊은이들이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거리를 활보하였고, 교통은 정체되었고, 거리엔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으며, 네온사인 불빛은 화려하고, 매연 또한 가득했다. 여느 대도시와 다를 것이 없는 풍경이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순식간에 과거에서 현재로 날아온 듯한 착각 속에 딸아이 손을 붙들고 가와라마치를 거닐었다. 이윽고 시조도리(四条通り)에 이르러 이번에도 역시 만원버스를 타고 교토역으로 향했다.

번갯불에 콩볶아 먹 듯 짧은 여행이었다. 그리고 번갯불에는 많은 콩을 제대로 볶을 수 없다는 결론을 얻기도 한 여행이었다. 그러면 어떠랴. 비록 반나절이었지만 특별하고도 알찬 여행이었음에야! 그동안 몰랐던 교토를 만나고 온 것 같아 마음은 참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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