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오전 9시 송두율 교수가 서울지검에 출두하며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사양한다는 몸짓을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우선 송 교수가 독일 뮌스터 대학의 정교수가 아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것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송 교수가 정교수가 아니었다는 것은 그가 강의하고 있는 뮌스터 대학 홈페이지에 한번만 들어가 봐도 바로 알 수 있는 것으로, 송 교수가 의도적으로 정교수를 사칭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가 정식교수가 아니라는 것을 그의 학문적 자질·수준과 연결짓는 것은 논의의 가치조차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문학의 전통이 매우 오래된 독일에서 이곳과는 전혀 다른 사회적·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동양인이 오랫동안 강의를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독일의 학제는 이미 12세 무렵 대학에 진학할 학생과 직업학교에 진학할 학생을 구분해 다른 교육을 시키고 있으며, 논리적이고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것에 가치를 둡니다. 교수라도 허점을 보이거나 학문적 자질이 떨어지면 날카로운 질문을 제기하는 학생들의 비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덧붙여 미국과 같은 이민국가가 아닌 독일에서 외국인이 정교수가 되기는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드물게 한국출신 교수가 몇 명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갖고 송교수의 자격에 문제를 삼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그가 500Km 이상 떨어져 있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한달에 한두번 강의를 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일대학에는 수업을 매주 진행하지 않고 학기 중 2~3일이나 4~5일의 날짜를 정해 하루 8시간 이상 집중적으로 수업을-이러한 수업은 대부분 교수의 강의 형식이 아닌 세미나가 주를 이룸-진행하는 Blockseminar 라는 강의의 종류가 있습니다. 송 교수의 강의는 이러한 강의 양식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송 교수가 한국에 입국하기 며칠 전 인터넷에 한국방문이 확정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려고 송 교수와 전화통화를 했었는데, 그때까지도 송교수는 여전히 상황이 유동적이라는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는 이번에도 송 교수의 한국행이 좌절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당국의 조사를 각오하고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이번에 그간의 의혹을 완전히 정리하려고 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고국방문의 감격이 가시기도 전, 이번 방문을 통해 의혹을 해소하겠다는 그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송교수는 그의 표현대로 '거물간첩'으로 낙인찍혔습니다. 여전히 사건이 진행 중이지만 송두율 교수가 한국사회의 정서상 친북행위로 비추어 질 수 있는 여러가지 활동을 했다는 것, 더군다나 그것이 37년 만에 이루어진 한국방문에서 처음으로 밝혀졌다는 것이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준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김철수'라는 가명을 둘러싼 의혹을 비롯한 몇가지 부분에 대해 좀더 일찍 전후 사정을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송두율 교수가 관계당국이 발표한 대로 실제 '김철수'라는 가명을 쓰는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더라면 조사를 무릅쓰고 이번에 한국을 방문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송교수는 30년 가까이 한국을 떠난 상태에서 저술을 통해 한국에 알려지면서 해외민주인사로 추앙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의 명성과 업적이 일거에 무너질지도 모르는 모험을 무릅쓰고 한국을 방문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똘이장군'이라는 만화영화를 기억하시는 분이 아직은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70년대 말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종종 보았던 반공만화 영화로 마지막 부분에 가면 북한을 괴물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북한이 저들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지상낙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곳이 사람이 아닌 괴물이 살던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기보다 항상 의도적으로 적개심을 갖게 할만한 것들만 골라서 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자라왔습니다. (우리가 '북괴'라는 표현대신 '북한'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동안 송 교수는 적어도 우리가 이런 빨간 색안경을 벗고 북한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색안경을 벗고 본다고 좋은 것만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는 사이 그의 고백대로 어떤 부분에서는 불가피하게 사죄를 빌어야 하는 행동을 했던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북한은 기아와 빈곤을 상징하는 나라로 전락해 버렸고, 북한체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그의 고백대로 그의 활동 가운데 불분명한 부분에 대한 분명한 해명과 조사는 필요하겠지만, 그의 활동 전체를 도매금으로 이적행위로 규정짓지는 말아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2월, 책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던 송 교수와 인터뷰를 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한국사회와는 너무나 떨어져 있고 그렇다고 독일사회에도 편입되지 못하는 그의 외로운 삶이었습니다. 이렇게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힌 사람은 한인사회에서도 별로 설자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어설픈 자리가 지금까지 송 교수가 서 있던 자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의혹이 해소되기보다 점점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 관계된 송 교수의 활동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먼저 우리 안에 30여년 이상 해외에서 고달픈 이방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번 일이 또 다시 우리사회가 분열되는 상처가 아닌 우리의 아픈 근대사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