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향기에 빠져보셨어요?

<만나고 싶은 우리 꽃과 나무 22>나물 · 약· 술로 즐기고 눈을 맑게 해주는 국화

등록 2003.10.07 11:31수정 2003.10.0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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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부쟁이 절정
쑥부쟁이 절정김규환
밤 깊어 가는 가을의 국화


고려가요 동동(動動) 9월령(月齡)은 임이 없는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구월 구일애/ 아으 약이라 먹논 황화/ 고지 안해 드니/ 새셔 가만하얘라/ 아으 동동다리 노란 국화를 마당에 몇 포기 심어 술을 담가 무병장수 약으로 썼음을 알 수 있다.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버혀내여야 할 쓸쓸한 가을밤이 깊어가고 있다.

예로부터 국화(菊花)는 매란국죽(梅蘭菊竹) 사군자의 하나로 의(義)를 지켜 꺾이지 않는 선비 정신과 은일화(隱逸花)라 하여 속세를 떠나 숨어사는 은자(隱者)에 비유하기도 했다.

차광을 하면 국화가 빨리 핍니다. 개량종인 대국.
차광을 하면 국화가 빨리 핍니다. 개량종인 대국.김규환
국화와의 질긴 인연

국화와 뗄래 야 뗄 수 없는 사연이 나에게도 있다. 떠나간 임을 그리며 속세를 버리고 산에 들어 숨어 살 때 들국화를 보이는 족족 캐다가 앞마당, 뒤뜰, 밭가에 심어 놓았다. 객이 찾아오지 않으면 홀로 지내야 하는 칠흑 같은 곳에서 밤새 행여 임이 찾아올까 마음놓지 않았던 시절.

방안에 앉아있을 때나 밤을 뒤척일 때도 밖에서 싸늘한 기운을 못 이겨 싸하게 밀려오는 국화 향기에 취해 헤어나지 못했다. 견디지 못하고 술독에 국화꽃잎을 따서 담갔다. 한 동안 그 술에 빠져 취한 나날을 보냈다. 그 진한 감동에 얼이 빠졌다.


중학교 3학년 생일날 친구 세 녀석은 초등학교 화단에 있던 국화를 한 움큼씩 꺾어와서는 방안에 걸어 놓고 축하해줬다. 숨을 쉬지 못 하도록 진했다.

두 번의 국화 향기에 대한 기억에서 어릴 적엔 기쁨으로 다가왔다. 커서는 왕성한 향이 그리 슬플 수 없었다. 하지만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였다.


보통 '취나물'이라고 말하는 참취꽃.
보통 '취나물'이라고 말하는 참취꽃.김규환
가을에 피는 꽃 치고 국화 아닌 게 있을까

파란하늘 맑은 기운을 머금고 밤 찬이슬 축여 들에 피는 꽃 국화(菊花). 들국화는 봄에도 피고 여름에도 핀다. 게 중 뚜렷한 자태로 눈, 코, 입 흔들어 놓는 것은 천국(天菊) 가을국화다.

음력 9월을 국월(菊月)이라고도 한다. 또한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선비들은 교외로 나가 풍국(楓菊) 놀이를 즐기는데, 시인 묵객들은 주식을 마련하여 황국(黃菊)을 술잔에 띄워 마시며 시를 읊거나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즐겼다. 각 가정에서는 '국화전(菊花煎)’을 부쳐먹었다.

국화는 나물 아닌 것이 없다. 여러 종의 취나물이 나물이다. 취나물 가운데 참취, 미역취, 떡취, 수리취, 곰취, 각시취가 하얗고 노랗게 핀다. 잔대는 보랏빛 초롱꽃을 덕지덕지 달고 하마 졌겠다.

또한 국화는 약이다. 요즘 경동약령시(京東藥令市)는 말린 국화전시장이다.

가을에 피는 꽃 치고 국화 아닌 것이 별로 없다. 개망초 해바라기 과꽃 백일홍 뚱딴지도 국화과(菊花科)요, 고들빼기 머위 씀바귀 엉겅퀴 지느러미엉겅퀴 솜다리 민들레 도꼬마리 지칭개도 국화다. 코스모스 꽃잎 몇 장 따서 화전(花煎)을 붙여도 좋다.

벌개미취. 오대산 <한국자생식물원>에서.
벌개미취. 오대산 <한국자생식물원>에서.김규환
가을 깊어 가면 벌개미취, 감국, 구절초 향이 산야에 뿌려진다

벌개미취는 다소 이르게 여름을 물리고 가을을 맞이한다. 벌초하러 가보면 절굿대가 긴 꽃대를 올려 둥근 가시방석을 만들어 놓았으니 시골 아이들 장난감으로 그만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는 노오란 감국(甘菊)과 산국(山菊)에 빠졌다. 개량종의 소국(小菊)보다 작다. 마치 피다가 만 꽃 같다. 벌은 왜 그리 많이 모여드는지.

몇 년 전까지는 이 감국(甘菊)만 들국화인 줄 알았습니다. 베게에 넣으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합니다. 한 때 국화술 무척 많이 먹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는 이 감국(甘菊)만 들국화인 줄 알았습니다. 베게에 넣으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합니다. 한 때 국화술 무척 많이 먹었습니다.김규환
그러다가 구절초와 쑥부쟁이에 넋을 놓았다. 과꽃의 본디 종(種)인지 가운데에 달걀 노른자를 펼쳐 놓고 주위를 둘러 한 잎 한 잎 수를 놓은 건가. 구절초는 산구절초 한라구절초 가는잎구절초 바위구절초 등이 있다.

5월 단오때는 다섯 마디가 되고 9월 9일이면 아홉 마디가 된다고 하여 구절초(九節草)라고 부르며, 또 다른 꽃과 어우러져 피면서도 시리도록 흰 모양이 신선보다 더 돋보인다고 해서 선모초(仙母草)라고도 한다.

정결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하양 또는 연분홍 꽃 빛, 어찌 이리 순수한가. 구절초 꺾어다가 아내에게 달여 주리라.

구절초는 아홉 번 꺾어도 한 마음 간직한 꽃이런가. 오직 꽃대 하나에 한 개의 꽃만 피우고 말지만 넉넉하기는 한량없어 들국화 중 제일 크다.

구절초. 이 구절초를 심어 놓으신 남양주의 한 농장 아주머니께 감사드립니다.
구절초. 이 구절초를 심어 놓으신 남양주의 한 농장 아주머니께 감사드립니다.김규환
쑥부쟁이 이야기

여기에 쑥부쟁이는 연보랏빛 청아함이 가을 하늘빛을 반영했다. 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가는쑥부쟁이….

어느 고을에 무척 가난한 대장장이가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11남매나 되는 자식이 있었다. 열심히 일을 했지만 살림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큰딸은 쑥나물을 좋아하는 동생들을 위해 들, 산을 다니며 쑥을 열심히 캐왔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네 딸' 곧 '쑥부쟁이'라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쑥부쟁이는 산에 올라갔다가 몸에 상처를 입고 쫓기던 노루 한 마리를 숨겨주고 상처까지 치료해 주었다. 노루는 고마워하며 언젠가 은혜를 반드시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숲으로 사라졌다.

그날 쑥부쟁이가 산 중턱쯤 내려왔을 때였다. 한 사냥꾼이 멧돼지를 잡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쑥부쟁이가 치료해 준 노루를 쫓던 그 사냥꾼이었다. 자신이 한양 박재상의 아들이라고 말한 뒤 이 다음 가을에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조를 하고 떠났다.

빨려들어가고 싶은 쑥부쟁이
빨려들어가고 싶은 쑥부쟁이김규환
쑥부쟁이는 그 사냥꾼의 씩씩한 기상에 호감을 갖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 가을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일하였다.

드디어 기다리던 가을이 왔다. 쑥부쟁이는 사냥꾼과 만났던 산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올라갔다. 그러나 사냥꾼은 오지 않았다. 애 타는 기다림 속에 가을이 몇 번이나 지나갔건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쑥부쟁이의 그리움은 갈수록 더 해 갔다.

그 동안 쑥부쟁이에게는 두 명의 동생이 더 생겼다. 게다가 어머니는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쑥부쟁이의 근심과 그리움은 나날이 쌓여만 갔다. 어느 날 쑥부쟁이는 몸을 곱게 단장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흐르는 깨끗한 물 한 그릇을 떠놓고 산신령님께 간절히 빌었다.

그러자 갑자기 몇 년 전에 목숨을 구해 준 노루가 나타났다. 노루는 쑥부쟁이에게 노란 구슬 세 개가 담긴 보라빛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질 거예요." 곧 노루는 사라졌다.

외래종으로 돼지감자라고도 부르는 뚱딴지도 국화과 입니다. 한 때 당뇨에 좋다고 하여 다 캐갔답니다.
외래종으로 돼지감자라고도 부르는 뚱딴지도 국화과 입니다. 한 때 당뇨에 좋다고 하여 다 캐갔답니다.김규환
우선 구슬 한 개를 입에 물고 소원을 말했다. "우리 어머니 병을 낫게 해주세요." 그러자 신기하게도 어머니가 완쾌되었다. 그해 가을 쑥부쟁이는 다시 산에 올라가 사냥꾼을 기다려도 역시 오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쑥부쟁이는 노루가 준 주머니를 생각하고 구슬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또 빌었다. 그러자 바로 사냥꾼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사냥꾼은 이미 혼인을 하여 자식을 둘이나 둔 처지였다.

사냥꾼은 자신의 잘못을 빌며 쑥부쟁이에게 같이 살자고 했다. 그러나 쑥부쟁이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착한 아내와 귀여운 아들이 있으니 그를 다시 돌려보내야겠다.' 쑥부쟁이는 마지막 하나 남은 구슬을 입에 물고 가슴 아픈 소원을 말하였다. 그후에도 쑥부쟁이는 그 청년을 잊지 못하였다.

세월은 흘러갔으나 쑥부쟁이는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다만 동생들을 보살피며 늘 산에 올라가 청년을 생각하면서 나물을 캤다. 그런데 쑥부쟁이는 산에서 발을 헛디뎌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벌초하면서 갖고 놀았던 절굿대
벌초하면서 갖고 놀았던 절굿대김규환
쑥부쟁이가 죽은 뒤 그 산의 등성이에는 나물이 더 무성하게 자라났다. 동네 사람들은 쑥부쟁이가 죽어서까지 동생들의 주린 배를 걱정하여 많은 나물이 돋아나게 한 것이라 믿었다.

연한 보라빛 꽃잎과 노란 꽃술은 쑥부쟁이가 살아서 지니고 다녔던 주머니 속의 구슬과 같은 색이며 꽃대의 긴 목 부분은 아직도 옛 청년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쑥부쟁이의 기다림의 표시라고 전해진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쑥부쟁이 나물이라 불렀다.


들로 산으로 나가보자

산에 들에 들국화 지천이다. 화려하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수많은 꽃이 피었다. 사랑을 얻기 위해 굳이 국화 꺾어 손에 들려줄 것까지 없다. 같이 간 연인에게서 들국화의 순수하고 절조 있고 의로운 향기가 가득하리라. 바람 한 번 쐬고 오면 몸과 마음이 기운을 찾으리라.

해는 날이 갈수록 짧아져 옷깃 여미게 하지만 감국, 구절초, 쑥부쟁이가 있는 이 계절은 그리 힘겹지만은 않을 것이다. 낮이 더 짧아져 10시간이나 해를 볼 수 있으려나. 대신 국화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오롯이 맞이하자.

올해도 과꽃이 피어 서서히 지려합니다.
올해도 과꽃이 피어 서서히 지려합니다.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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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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