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에서 올초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이영일씨가 담은 가재. 그거 어찌했나 물어보지 못했네요.이영일
인천 계양산 자락에서 만난 가재
그렇게 석 달이 지났다. 내게 그냥 잊혀질 뻔한 일시적인 사건이었다. 가재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일상 생활에서 골똘히 어떤 낱말을 곱씹다 보면 다음 장면에서 꼭 그런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지난 주말 배추밭에 물을 주면서 그런 일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가재를 서울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본 것이다.
물을 주려 웅덩이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손으로 긁어 고이게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경사진 부분으로 기껏 높이가 한 뼘, 폭이 두 뼘 되는 아이들 장난하듯 옹색한 보를 막고 고이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글쎄 어떤 물체가 바닥에서 물살을 일으키며 "타다다닥" 움직인다.
처음엔 장구벌레나 되는 줄 알았다. 습한 웅덩이에 있을 법한 발 많이 달린 것 몇 마리쯤은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사시사철 물이 흐르니 그리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잠시 후 내 눈을 또 의심했다. 김포시와 경계인 인천광역시 계양산 자락-공항고속도로 인접한 곳에 가재 새끼가 있었다.
다 커봤자 5cm 내외로 다리 열 개 달린 절지 동물. 갑각 껍데기를 쓰고 BOD(생화학적산소요구량) 농도 1급수에 해당하는 오염되지 않은 흐르는 냇물에서만 사는 지표종(指標種) 가재는 어릴 적 내 친구였다.
그 때 본 친구들보다 더 작은 아이, 아직은 집게가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 것, 손으로 잘못 잡으면 등줄기 껍데기가 함몰될 성싶은 여린 물고기가 반겼다.
'도랑 치고 가재 잡고' 격이었다. 도랑을 치는 데 가재가 나타났으니 '꿩 먹고 알 먹는' 것과 뭐가 다른가. 같이 간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가재다."
멀리서 듣고 있다가
"뭐라구?"
"가재 있어~. 이리 와봐."
사람들이 가재를 보러 우르르 몰려왔다. 한 번 보고 그 자리에 풀어주고 말았다.
가재와 오랜 공존의 의미
가재는 폐디스토마(폐흡충)의 중간 숙주다. 1988년 군대 훈련소에서 화순 출신 30여명의 80%가 디스토마에 걸려있었다. 그것은 경향각지 다른 20개 지역의 30% 내외와 비교하면 두 배가 훨씬 넘는 수치였다.
어렸을 때 물 맑다고 어름치, 망둥이, 꺽지, 미꾸라지, 뱀장어, 붕어에 징거미(징기미), 새비(토하), 가재를 가리지 않고 마구 먹어댔던 때문이었다. 돌을 들춰 알을 훑어먹고 가재 배 부분에 오돌토돌 붙은 알도 생으로 떼어먹었으니 오죽했겠는가.
날 것을 즐겼던 나는 간디스토마에 폐디스토마를 오랜 동안 간직하고 살았다. 사는 데 별 문제가 안되었으니 서른 다섯 살이 지나서야 그 독한 마디 알약을 거금 3만 8천 원을 들여 사흘 동안 먹고서야 퇴치하였다. 그 오랜 공존의 의미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