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에 물리고 매운탕 끓여 먹을 때가 좋았어"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38>

등록 2003.10.08 04:48수정 2003.10.0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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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왕산과 인천 계양산에 가재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은 민간인 출입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 군부대의 위력이 나오는 군요.
서울 인왕산과 인천 계양산에 가재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은 민간인 출입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 군부대의 위력이 나오는 군요.김규환
서울에 가재가 산다?


얼마 전 청계천의 발원지 중 하나로 알려진 인왕산 만수천 계곡에 가재가 서식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도시, 망가질 대로 망가진 서울에 가재가 사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직도 이런 환경에서 살고 있다니. 신기하기도 했다. 가재가 고마웠다.

곧 마음의 평안을 되찾고는 텔레비전 화면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사라진 줄만 알았던 가재가 내 눈앞에 그것도 아주 가까운데 살고 있었다니 누가 쉽게 수긍하겠는가.

물, 공기, 흙, 소음 공해로 찌들고 고압선 전자파마저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하늘 위로 땅 속으로 퍼져 있는 곳에 가재라? 조작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곳은 분명 수도 서울이 아닐 것이고 강원도나 전라도 외딴 계곡에서나 잡은 풍경이라 여겼다.

흑산도에서 올초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이영일씨가 담은 가재. 그거 어찌했나 물어보지 못했네요.
흑산도에서 올초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이영일씨가 담은 가재. 그거 어찌했나 물어보지 못했네요.이영일
인천 계양산 자락에서 만난 가재

그렇게 석 달이 지났다. 내게 그냥 잊혀질 뻔한 일시적인 사건이었다. 가재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일상 생활에서 골똘히 어떤 낱말을 곱씹다 보면 다음 장면에서 꼭 그런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지난 주말 배추밭에 물을 주면서 그런 일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가재를 서울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본 것이다.

물을 주려 웅덩이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손으로 긁어 고이게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경사진 부분으로 기껏 높이가 한 뼘, 폭이 두 뼘 되는 아이들 장난하듯 옹색한 보를 막고 고이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글쎄 어떤 물체가 바닥에서 물살을 일으키며 "타다다닥" 움직인다.


처음엔 장구벌레나 되는 줄 알았다. 습한 웅덩이에 있을 법한 발 많이 달린 것 몇 마리쯤은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사시사철 물이 흐르니 그리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잠시 후 내 눈을 또 의심했다. 김포시와 경계인 인천광역시 계양산 자락-공항고속도로 인접한 곳에 가재 새끼가 있었다.

다 커봤자 5cm 내외로 다리 열 개 달린 절지 동물. 갑각 껍데기를 쓰고 BOD(생화학적산소요구량) 농도 1급수에 해당하는 오염되지 않은 흐르는 냇물에서만 사는 지표종(指標種) 가재는 어릴 적 내 친구였다.

그 때 본 친구들보다 더 작은 아이, 아직은 집게가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 것, 손으로 잘못 잡으면 등줄기 껍데기가 함몰될 성싶은 여린 물고기가 반겼다.

'도랑 치고 가재 잡고' 격이었다. 도랑을 치는 데 가재가 나타났으니 '꿩 먹고 알 먹는' 것과 뭐가 다른가. 같이 간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가재다."

멀리서 듣고 있다가

"뭐라구?"
"가재 있어~. 이리 와봐."

사람들이 가재를 보러 우르르 몰려왔다. 한 번 보고 그 자리에 풀어주고 말았다.

가재와 오랜 공존의 의미

가재는 폐디스토마(폐흡충)의 중간 숙주다. 1988년 군대 훈련소에서 화순 출신 30여명의 80%가 디스토마에 걸려있었다. 그것은 경향각지 다른 20개 지역의 30% 내외와 비교하면 두 배가 훨씬 넘는 수치였다.

어렸을 때 물 맑다고 어름치, 망둥이, 꺽지, 미꾸라지, 뱀장어, 붕어에 징거미(징기미), 새비(토하), 가재를 가리지 않고 마구 먹어댔던 때문이었다. 돌을 들춰 알을 훑어먹고 가재 배 부분에 오돌토돌 붙은 알도 생으로 떼어먹었으니 오죽했겠는가.

날 것을 즐겼던 나는 간디스토마에 폐디스토마를 오랜 동안 간직하고 살았다. 사는 데 별 문제가 안되었으니 서른 다섯 살이 지나서야 그 독한 마디 알약을 거금 3만 8천 원을 들여 사흘 동안 먹고서야 퇴치하였다. 그 오랜 공존의 의미는 뭘까?

참 기뻤습니다. 다음에 또 볼 수 있을까?
참 기뻤습니다. 다음에 또 볼 수 있을까?김규환

가재 잡던 추억 속으로!

장마도 가고 초가을 태풍도 지나면 작은 계곡은 물이 많이 줄어 있다. 그런 골짜기로 쇠죽 바가지 하나 들고 가재 잡으러 가는 길은 어린 소년에겐 꿈의 황금 알을 주으러 가는 매력 덩어리였다. 한없이 깊은 골짜기로 빠져들게 하였다. 어떤 때는 해지는 줄 모르고 산 중턱까지 치고 올라간다.

꼴 베러 갔을 때도, 밭에 일하러 가서 어른들이 잠시 쉬는 동안에도 하던 일을 팽개치고 석 자(尺) 90cm 이내의 좁은 물길을 따라 올라간다. 물이 거의 말라 자작자작할 뿐이다.

돌을 하나 둘 떠들어 뒤집으면 수많은 물벌레가 노닌다. 여유를 갖고 물이 고인 곳을 따라 더 올라가면 바닥을 툭툭 치며 도망치는 놈이 있다. 웬만해선 색깔로는 구분이 안되어 눈에 불을 켜고 살피는데 갑자기 물이 튄다. 이 얼마나 고마운가?

주위를 요란스럽게 하고 흙탕물을 일으키면 필시 가재다. 제 스스로 놀라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래도 한번 눈에 띈 이상 집요하게 주위 돌을 하나하나 건져내며 협살(挾殺), 협공(挾攻)할 만반의 태세를 갖춘다. 가재 새끼는 보여도 잡지 않고 가만둔다.

흙탕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조금 더 좁혀 가면 조약돌에 몸을 숨기고 밖을 내다본다. 언제든 옆으로 잽싸게 도망치려 잔뜩 웅크리고 있다. 한 손엔 바가지를 들고 다른 손으로 돌을 들추면 돌 색깔에 반사된 물빛 같은 가재를 한눈에 넣을 수 있다.

틈을 주지 않고 뒷부분 꽁무니를 덮친다. 주름을 "타다닥" 치면서 안간힘을 써서 도망치려 하지만 아이도 이 작업엔 도사가 되어 있다. 손아귀에 들어온 가재는 연신 꿈틀대며 손바닥을 간지럽힌다.

"야, 잡았다."

가재가 바깥으로 기어 나와 딱딱한 발로 여린 손을 더듬으니 패일 것 같다. 그 놈이 정신을 차리고 집게를 요리조리 움직여 물려고 한다.

어디 한 두 번 물렸던가. 웬만한 물고기는 그 집게에 물리면 이내 두 동강이 났다. 어쩌다 한 번 물리면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그 아픔은 손가락이 잘려나갈 듯 대단하다. 바가지를 던져두고 가까스로 나머지 한 손을 동원하여 강제로 집게를 벌려야만 빼내던 그 쓰라린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 듯 하다.

그런 험난한 꼴 당하지 않으려면 바가지 속에 주변에 있는 풀을 뜯어 깔고 물을 조금 떠서 부어준다. 그래야 제 집인 줄 알고 둥지에 안겨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고 튀어서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몇 마리를 잡았을까. 살이 한참 오른 가재 등줄기를 잡고 배 주위에 붙은 알을 입으로 훑어 먹어본다. "오도독" 소리까지 들리게 씹히는 맛이 좋다. 어떻게 알에서 이런 쫄깃한 맛이 날까?

물 속에서는 자꾸 움직여 카메라를 맘대로 할 수가 없어 결국 이렇게 찍히고 말았답니다.
물 속에서는 자꾸 움직여 카메라를 맘대로 할 수가 없어 결국 이렇게 찍히고 말았답니다.김규환

한 시간 여 잡으니 열댓 마리는 되었다. 벼가 누렇게 익어 가는 논두렁길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차에 제일 큰 한 마리를 꺼내 한 손으로 갖고 놀다가 기어이 복수를 당하고 말았다.

"앗야."
"놔, 놓으라니까!"
"이씨…."

바닥에 내동댕이치듯 떨궈내도 한 번 문 새끼손가락을 놓을 리 없었다. 몇 번 탈탈 털다가 바가지를 내려놓고 한참을 씨름한 뒤에야 간신히 분리해낼 수 있었다. 얼얼하고 쓰라렸다. 화가 난 나머지 그 놈을 다시 잡아 바닥에 쳤다. 그제서야 분이 풀렸다. 그 놈은 순한 양이 되었다.

싸늘한 기운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전 몇 마리 잡아 놓은 잡고기에 어죽 끓일 생각에 걸음이 빨라졌다. 그런 날은 어머니께서는 밥 대신 어죽을 끓이셨다.

된장 반 숟가락에 쌀 반 되, 아욱 서너 줌과 센 호박 푹푹 썰고, 매운 고추 손으로 분질러 넣고 막판에 고춧가루 팍 풀면 고기는 흐물흐물 형체를 반쯤 잃고 가재는 고춧가루보다 더 선명하게 붉은 색으로 변한다.

매운탕, 어죽(魚粥)에 흑갈색의 가재가 빨간색 가재로 바뀌어 시선을 끄니 침이 꿀꺽꿀꺽 흘러나왔다. 그 씹히는 맛은 또 얼마나 좋았던지 식욕을 자극했다. 눈치코치 보지 않고 먹어댔으니 그날 내가 먹은 그릇 수를 헤아리지 못하겠다.


이제 다시는 그 맛난 것을 먹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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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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