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35

세상에 이럴 수가…! (4)

등록 2003.10.08 13:02수정 2003.10.0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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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행이 멈춘 것은 사십여 명의 희생자가 있은 후였다.

그 후로 더 이상의 살인이 없었다. 따라서 누가 살행을 저질렀는지를 밝혀줄 단서 또한 더 이상 발견될 수 없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살인이 있던 날 밤이면 규환동 입구를 지키는 옥졸들이 깜박 졸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빙화에게 보고되지 않았다. 근무 중 졸았다는 것이 알려지면 반쯤 죽을 정도로 기합을 받기 때문이었다.

결국 뇌흔을 비롯하여 방옥두와 사십 인의 제자들의 죽음은 영구 미제사건으로 분류되었다.


철커덩―! 츠라라라랏! 끼이이이이익!

자물쇠가 열리고, 쇠사슬이 풀려간 후 뇌옥의 문이 열리는 날카로운 금속성에 눈을 뜬 이회옥을 본 옥졸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오시오. 가석방이오!"
"가석방? 방금 가석방이라 하였소?"

"그렇소. 제일호법께서 특별히 가석방을 명하시었소. 지금 즉시 철마당으로 오라는 명이 계셨으니 어서 가보시오."


옥졸의 말은 믿어지지 않은 이회옥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일호법을 알기는 하되 자신을 위해 각별한 배려를 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오?"
"그렇소. 어서 나가보시오. 늦으면 나까지 경을 치게 될지도 모르니 어서 가보시오."
"아, 알겠소이다."

어리둥절하였지만 풀어준다는데 나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여 뇌옥을 벗어난 이회옥은 내심 가슴을 쓸어 내렸다.

어젯밤, 이곳으로 되돌아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대대적인 수색과 더불어 현상금을 준다는 방이 붙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난 밤, 근무를 서던 옥졸의 혼혈을 제압한 이회옥은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밖으로 향하였다.

그가 향한 곳은 내원 쪽이었다. 어머니와 고모가 있는 군화원에 가려는 것이다.

전에 기린각을 무시로 드나든 경험이 있으므로 거기까지 가는 길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환히 알고 있기에 별 탈 없이 내원과 외원을 가르는 담장에 당도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전에 보아 두었던 개구멍 비슷한 곳으로 침투하려던 그는 느닷없이 쇄도하는 암기와 요란한 경종 소리에 놀라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기관이 있으며, 누군가가 잠복해 있다는 것을 몰랐던 이회옥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경종 소리에 놀란 수많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이번이 처음이라 그런지 당황한 듯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생포되었을 것이다.

무림천자성 밖으로 도주할까 어쩔까를 고민하던 이회옥은 일단 뇌옥으로 되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밖으로 나가려면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가야하는데 이럴 경우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크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간신히 뇌옥에 당도한 그는 자신의 경솔함을 반성하면서 어떻게 하면 모친을 만날 수 있을까를 고심하였다.

그러는 사이 무림천자성은 사상 초유의 일로 발동된 비상령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뭐든지 분류해놓기 좋아하는 무림천자성은 비상령도 상황별로 분류해놓고 있다.

갑호, 을호, 병호비상령이 그것이다.

갑호비상령은 총단 내원에 침입자가 있거나 공격을 받을 때 발동되는 비상령으로 한 번도 발동된 적이 없는 것이다.

을호비상령은 외원이 공격받을 때 발동되는 것으로 철마당 부당주로 임명되었다가 배루난을 살해한 혐의로 하옥된 이회옥이 귀환할 때 그를 적으로 오인하여 발동된 적이 있었다.

을호비상령 역시 한번도 발동된 적이 없는 비상령이었다.

마지막으로 병호비상령은 강호에 나가있는 대원들이 공격받을 때 발동된다. 오래 전 왜문에 의한 진주채(珍珠寨)가 공격받을 때 발동된 적이 있었다.

각 비상령이 발동되면 상부의 지시가 없더라도 정의수호대원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공격에 가담해도 좋다고 되어 있다.

각설하고, 지난 밤 갑호비상령이 발동되어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 것은 누군가가 내원으로 침입하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다행인지 어떤지 더 이상의 진입 시도는 없었다. 내원 곳곳에 설치해둔 기관이 추가로 작동하기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침입을 시도하던 자가 스스로 물러간 듯 싶었다.

이후 무림천자성 전역이 샅샅이 조사되었다. 그러나 단 한 곳, 아무도 조사하지 않은 곳이 있었다.

규환동이었다!

이곳은 철마당과 철검당 소속 대원 사십여 명이 희생되어 대대적인 수색을 할 때에도 열외였던 곳이다. 하긴 철창 안에 갇힌 죄수들밖에 없는데 누가 조사하겠는가!

그들 사십여 명은 모두 이회옥에 의하여 저승행을 하였다.

태극목장의 모든 것을 박살낸 책임을 물은 것이다. 가장 안전한 곳에 은신한 채 원수를 갚은 셈이다.

다음 날, 철룡화존 구부시는 무림천자성 내원에 침투하려던 자가 주석교에서 보낸 인물이라 발표하였다. 그러면서 말하길 범인은 생포되었으며 모든 사실을 자백하였다고 하였다.

참으로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었다.


"속하, 이 회옥 제일호법의 부르심을 받아 왔습니다."
"오! 어서 오게. 그 동안 고생이 많았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허허!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는 법이지. 그나저나 자네가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네."

"……?"
"소성주께서 타고 나가셨던 비룡이 부상을 입어 후송되었네."
"예에? 비룡이 부상을 당했다고요? 어, 어디를…?"

비룡이 다쳤다는 소리에 이회옥의 음성은 커지고 있었다. 짐승이기는 하지만 친구이자 형제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허허허! 그리 큰 부상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휴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는 이회옥을 본 조경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소성주께서 자네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는 전갈을 보내셨네. 그러니 잘 보살피게. 알겠는가?"
"예! 알겠습니다."

조경지가 돌아가자마자 이회옥은 마굿간으로 향하였다. 한시 바삐 비룡을 보고 싶어서였다.

오래 떨어져 있었지만 비룡은 즉각 알아보았다. 가까이 다가서기도 전에 앞다리를 번쩍 들며 반갑다는 몸짓을 하였다.

해후의 기쁨 속에서도 이회옥은 비룡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폈다. 그 결과 무엇이 문제인지를 금방 파악해낼 수 있었다.

과연 태극목장 제일목부의 아들다운 안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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