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대학가 '파병반대' 움직임 본격화

8일 "이라크 파병 반대" 세가지 풍경

등록 2003.10.08 16:54수정 2003.10.0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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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하면 코가 길어진데요~'8일 오전 국방부앞에서 파병반대국민행동이 주최한 '이라크 파병을 위한 졸속 현지조사 국방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거짓말을 해서 코가 길어진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거짓말 하면 코가 길어진데요~'8일 오전 국방부앞에서 파병반대국민행동이 주최한 '이라크 파병을 위한 졸속 현지조사 국방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거짓말을 해서 코가 길어진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라크현지조사단의 모술 지역 안전성 보고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들은 "국방부가 국민을 기만하는 정보조작을 자행하고 있다"며 강하게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361개 시민사회단체가 포함된 '이라크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이하 파병반대국민행동)은 10월 8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조영길 국방부장관의 공개사과와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 파견 등을 요구했다. 이날 청와대 앞에서는 영화배우 정진영씨가 파병반대 1인시위에 나섰고, 대학가에서는 파병 찬반투표가 열렸다.

국방부앞 기자회견에는 파병 찬성론자들로 구성된 파병부대원들의 명단이 등장했다.
국방부앞 기자회견에는 파병 찬성론자들로 구성된 파병부대원들의 명단이 등장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풍경 1] 시민사회단체 "부시와 노무현의 '거짓말'은 국민 기만"

8일 오전 10시30분 국방부 앞에서는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다함께·여성해방연대·인권운동사랑방·장애인이동권연대·민주노총·민주노동당 등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60여명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근조 한국헌법' '근조 세계평화' '현지조사단=파병척후대' 등의 피켓이 등장했고, 부시 미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가면 위에 긴 코를 붙인 채 기자회견에 참석한 활동가도 있었다. 이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코가 길어진 사연'이 적혀있었다.

부시 대통령의 코가 길어진 것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와 생화학 무기가 있다, 미군이 해방군으로 환영받을 것이다' 등의 거짓말 때문이고, 노무현 대통령의 코가 길어진 것은 '철저히 국민여론을 수렴하여 파병을 결정하겠다, 이라크는 안전하다'는 거짓말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 활동가는 군인들의 단체사진에 정계 인사들의 얼굴을 합성한 피켓을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합성 사진 밑으로는 '파병대장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돌격대장 조영길 국방부 장관, 돌격대원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 군자금 조달책 김진표 경제부총리' 등 가상 '이라크 파병부대 1진'의 구성을 적어놓았다. 이 피켓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계급은 '쫄병'으로 나타났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인권단체들과 이라크반전평화팀은 "이라크 주민과의 직접접촉에는 단 5분을 할애하고 6일 내내 미국 정황브리핑에 의존한 합동조사단의 조사활동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입에 담을 수 없다"며 "정부는 편향된 자료와 신빙성 없는 근거들을 가지고 파병 여론몰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라크 민중 지원 과제를 조사할 수 있는 민간조사단 구성 ▲이라크 주민 생활을 직접 대면하는 현지 재조사 ▲이라크 민중 자치와 재건을 직접 지원하는 국가차원 민간지원단 파견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단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조영길 국방부장관 공개사과와 강대영 국방부정책차장 문책 등을 요구하는 항의서한을 국방부에 전달했다.

[풍경 2] 영화배우 정진영 청와대 앞 1인시위

8일 오전 영화배우 정진영씨가 청와대앞에서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8일 오전 영화배우 정진영씨가 청와대앞에서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시민사회단체들이 기자회견을 마친 오전 11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는 파병반대 1인시위가 열렸다. 7일에 이어 이틀째 열린 이날 1인시위 주자는 영화배우 정진영씨. "거짓조사로 국민의 눈을 가리지 마십시오. No Blood for Bush!"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지난해부터 파병반대 시위에 자주 모습을 나타내는 정씨는 "영화배우라는 직업과 무관하게 시민으로서 명분없고 비도덕한 침공에 반대하기 위해 나왔다"며 "개인적인 기질로는 뒤에서 참가하고 싶고, 시민운동가의 역량도 안 되는데 운동에 앞장서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싫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반대시위하면서 이런 말하면 안 되는데"라고 조심스러워 하며 "결국 파병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지조사단 활동 역시 "파병 수순을 위한 날림조사"이고 향후 이라크 상황도 "꼬이면 꼬였지, 총성이 쉽게 멈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라크에 다녀온 지인들로부터 "이라크는 지금 인명살상 개연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라크인들은 한국군이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파병될 것이라는) 무기력감이 싫어서 반대한다, 파병하는 것이 강대국의 논리겠지만 동의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현실논리는 현재일 뿐이다. 언젠가 배신당할 수 있는 판단이고, 길지도 정의롭지도 못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주변 배우들의 여론에 대해서는 "여러분들과 똑같다,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며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쑥스러워 한다"고 전했다.

[풍경 3] 대학생 "파병결정에 국민의 뜻 반영해야"

8일 낮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파병찬반투표에 참여하고 있는 대학생.
8일 낮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파병찬반투표에 참여하고 있는 대학생.권박효원
한총련 계열 총학생회는 지난 7일부터 3일간 파병 찬반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8일 낮 12시30분경,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에도 책을 들고 있는 학생들이 바쁘게 오갔다. 바로 앞에는 투표를 위한 기표소가 2곳 설치되어 있었다.

이날 기표소를 찾는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도서관 앞에서 대화를 나누던 일부 학생들은 "파병문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나 투표에 참가한 학생들은 대부분 파병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최명이(신방 3년)씨는 "한미관계를 무시할 수 없지만 명분없는 전쟁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이라크 현지조사단 발표는 여론조작이라서 믿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씨는 "노무현 대통령도 국민을 존중한다고 했는데 공식적으로 국민투표를 거쳐 파병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재현(경제 4년)씨는 "정당성 없는 전쟁에 끌려가듯 참가하는 것은 자주국가로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학사장교인 친구들 몇몇 빼고는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반대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심씨는 "이번 학생 찬반투표는 하나의 퍼포먼스"라며 "투표가 아니더라도 파병 결정에 영향 미치는 의사전달수단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 "국민투표로 이라크 파병 막겠다!"

학관 앞 투표소를 지키고 있던 부총학생회장 박선태현(한국사학 4년)씨는 "투표율이 높지는 않지만 자발적 참여가 많다"며 "이번 기회에 국민여론을 환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선씨는 "투표소에 있다보면 '한미관계나 경제적 이익을 생각해서 파병을 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말을 걸어오는 학우들도 있다"며 "가치판단이 달라 합의점은 못 찾지만 '전쟁이 원칙적으로 옳지 않다'는 전제에는 모두 동의한다"고 전했다.

각 학교 총학생회는 9일 오후 5시까지 투표를 진행한 뒤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또한 오는 10일 오후 3시에는 대학로에서 이라크 파병반대 대학생총궐기대회를 연다. 다음날인 11일 오후 3시에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시청 앞에서 이라크 파병반대 범국민대회를 개최하면서 이번주말은 서울 도심에서 파병반대시위가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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