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斷食), 단발(斷髮), 단지(斷指)

[주장] 참교육을 지향하는 전교조 울산지부의 가열찬 투쟁은 계속된다

등록 2003.10.10 11:22수정 2003.10.1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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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은 원래 이슬람교에서 유래했다. 이슬람력으로 아홉번째 달인 라마단 달 전체에 걸쳐 동트기 전부터 해질녘까지 음식을 '완전히 삼가함'을 뜻한다. 그러던 것이 요즈음은 건강을 위하여 단식을 하는 사람이 늘며, 그런 사람들을 위한 단식원들이 성업 중이란 소문이 무성하다.

그런데 그와 달리 자신의 의사를 뚜렷이 보이기 위해 단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의 단식 농성에 관한 뉴스만 봐도, '경북 청송 제2보호감호소 피감호자 400여 명이 법무부의 사회보호법 개정안 철회와 사회보호법 폐지를 요구하며 9월 29일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것을 필두로, '한반도 전쟁 반대와 평화를 기원하는 집단 단식 퍼포먼스'가 27∼28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서 열렸으며, 또 정부의 경부고속철도가 천성산과 금정산을 통과하는데 반대하여 지난 3월 38일 동안 단식을 벌여 노선 재검토 방침을 이끌어냈으나 최근 다시 기존 노선대로 강행될 것이라는 정부 발표를 전해들은 '내원사 지율 스님이 다시 무기한 단식'에 들어갈 뜻을 밝힌 바 있다.

지난 6월 21일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원영만 위원장을 비롯한 간부 8명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면서 울산지부 한강범 지부장에게도 영장과 수배령이 떨어지자, 서상호 수석부지부장이 적반하장(賊反荷杖)의 행패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단식 수업 농성'에 들어갔다.

단순히 곡기(穀氣)만 끊는 것도 쉬 결정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 상태에서 수업까지 강행하다가 결국 6일째 되는 날 병원으로 실려가야 했다.

a 단식 와중에서도 투쟁사를 읽는 서상호 수석부지부장

단식 와중에서도 투쟁사를 읽는 서상호 수석부지부장 ⓒ 박경열


단발(斷髮)은 '머리카락을 자르다 또는 짧게 자르다'는 뜻인데, 완전히 잘라 버릴 경우에는 단발이란 표현보다 '아주 빡빡 밀어 버린다'는 뜻의 삭발(削髮)이란 말이 더 널리 쓰이고 있다.

다 알다시피 '머리 자름'은 불가(佛家)에서 시작됐다. 불가에서의 이 행위는 속세와의 인연 끊음의 상징이다. 무수한 머리카락처럼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일체의 번뇌를 깨끗이 밀어버리는 이 상징적 행위를 통하여 그들은 청정수행 의지를 표현하며 평생 불도를 따르리라 결심한다.


이런 경우 말고 다른 '머리 자름'이 있으니, 굳은 결심과 저항으로서의 삭발이 그것이다. 시합을 앞둔 선수들이 승리하겠다는 결심을 스스로에게 다지기 위하여 머리를 깎으며, 양심수들은 무너지는 정의를 지키려 머리를 자르며, 파업 중인 근로자는 전달되지 못한 자신들의 뜻을 기필코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로 삭발을 감행한다. 삭발은 외형상 인간이 신체를 다치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의사표시다.

a 논문 심사 비리 실상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삭발 - 왼쪽 백광오 부지부장, 오른쪽 동훈찬 정책실장

논문 심사 비리 실상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삭발 - 왼쪽 백광오 부지부장, 오른쪽 동훈찬 정책실장 ⓒ 전지영


전교조 울산지부에선 지난 9월 3일, 울산시교원단체총연합회(울산교총)가 지난해 현장교육 연구대회에서 교사들이 낸 연구논문을 대부분 합격시켜 주기 위해 실제 제출 받은 논문 편수보다 더 많은 논문이 제출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한 사실이 울산교총 관계자의 양심고백을 통해 밝혀진 뒤(<한겨레신문> 2003년 8월 21일자) 울산교육청 교육감에게 사건의 실상을 밝힐 것과 책임자의 처벌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정당한 요구에도 '나는 모르는 일이다' 하는 모르쇠에서, '조금만 더 기다려라' 하는 기다리쇠로, 급기야 '나는 모르는 일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하는 말을 반복하는 '앵무쇠(새)'로 일관했다.

마침내 그들의 대응에 분노하여 27일째를 맞이하는 9월 29일, 지부장과 부지부장 그리고 정책실장이 차례로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리고 그날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조합원들은 눈물을 속으로 삼켜야 했고….

a 삭발 후 연좌시위에 나선 한강범 지부장

삭발 후 연좌시위에 나선 한강범 지부장 ⓒ 전지영


단지(斷指)는 글자 그대로 '손가락을 자름'이다. 그런데 단순히 손가락을 자르는데 그친다면 '조폭'들이 자기들 세계 속에 안기는 일원으로서의 맹세를 일컫는데 그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자신의 뜻을 종이든 어디든 아로새긴다면 그것은 혈서(血書)라 불리워 지면서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안중근 의사는 어느 때고 빼앗긴 조국을 다시 찾겠다며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 4괘 대신 '대한독립'이라는 혈서를 쓴 태극엽서를 손수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굳센 의지로 결국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함으로써 독립의지를 실천하였다.

작년에는 대구지역 한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미군의 무죄평결 무효화와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재판권 이양' 등을 촉구하는 혈서를 써 경찰에 제출한 사건이 알려져 충격을 줬다.

전교조 울산지부 세 사람의 삭발의식 후 투쟁본부 회의가 이어졌고, 그 얼마 뒤 대자보에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 혈서가 발견되었다.

'교육청은 책임지고 논문 비리 책임자 즉시 처벌하라'

a 대자보에 선명히 적힌 혈서

대자보에 선명히 적힌 혈서 ⓒ 전지영


그러나 이번 비리사건의 최종 책임자인 최만규 울산교육청 교육감은 사건의 해결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전국체전에 참가하러 갔다.

꿈쩍도 않는 '모르쇠 군단'에 대항하는 지원군이 10월 8일 왔다. 전교조 원영만 위원장을 비롯한 16개 지부장과 상집위원들이 대거 울산교육청에 온 것이다.

위원장은 격려사와 10월 9일 있은 기자회견을 통해 "지역 교육청 별로 주관하고 있는 현장연구대회와 각종 교원승진제를 실사해 오면서 저지른 비리를 수집. 폭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위원장은 이날 "울산교총 및 교육청 관료들이 개입한 교원의 승진점수 조작 사건이 폭로된 지 2개월이 됐으나 교육청과 검찰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같은 일이 전국적인 사안인 만큼 전교조 본부 차원에서 대응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교총과 교육청의 논문 조작 사건의 비리 척결을 위해 오는 10월 25일 오후 3시 울산에서 전국 교사들이 참여하는 `교원승진 제도 개선과 울산교육비리 척결을 위한 전국교사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덧붙였다.

a 논문조작 관련 심사위원 처벌과 교육비리 척결을 위한 울산교사 결의대회 울산교육청 현장에서 - 앞줄에 선 이들이 위원장과 16개 시도 지부장들이다

논문조작 관련 심사위원 처벌과 교육비리 척결을 위한 울산교사 결의대회 울산교육청 현장에서 - 앞줄에 선 이들이 위원장과 16개 시도 지부장들이다 ⓒ 전지영


10월 10일 오늘, 중국의 건국기념일이며 그래서 그들이 가장 경축한다는 명절 '쌍십절'이, 울산지부가 '논문 심사 비리 척결'을 위한 농성에 돌입한 지 38일이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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