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사랑으로 주민들을 만나고 싶었다

소록도 주민 이 · 미용봉사 참여기

등록 2003.10.12 10:57수정 2003.10.14 17:5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석 달에 한번씩 가는 봉사지만 아홉 번째 가는 이번 미용봉사도 긴장 가운데서 출발을 하게 되었다.


주민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지극히 평범한 일이지만 온 신경을 곤두세워 생각을 모으게 된다. 단 하루지만 진실한 사랑으로 주민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소록도 봉사는 특별한 것인지도 모른다.

제9차 소록도 주민 이 · 미용봉사의 모습
제9차 소록도 주민 이 · 미용봉사의 모습고달령
필자는 지난 늦여름 일본 한센병에 대한 편견과 차별 철폐를 위한 시민 네트워크 히로시마 부대표 일행과 소사모(소록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소록도 현지 간담회가 있어서 연약한 기운으로 소록도를 방문했다. 고흥 가는 길이 워낙 구부러진 도로가 많아 어지럽고 차 멀미 증세를 보이더니 다녀와서도 상당기간 몸을 추스려야만 했다. 그때 많이 힘들었기에 이번 봉사는 조심스럽게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출발을 했다.

지난 10월 6일 월요일. 소사모와 광주중앙교회 ‘루디아’ 미용봉사부에서 23명이 참여한 이번 소록도 미용봉사는 광주를 출발해 푸르름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들녘과 드높기만한 가을 하늘을 벗삼아 도로를 달렸다. 중간 휴식 없이 차를 달려 소록도 선착장에 도착해서야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 아침 겸 점심 식사를 간단히 하고 중앙리 주민자치후생복지관에 마련된 작업장에 들어섰다.

짐을 풀자마자 자치회장님께서 새마을 부락회관에도 주민들이 나와 계시니 커트팀 일부가 바로 그 쪽으로 가 주었으면 하셨다. 이곳에서 어느정도 일을 하고 오후쯤 그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워낙 강하게 말씀하셔서 미용봉사팀을 이끌고 있는 강숙희 회원과 몇명의 봉사자가 새마을 부락으로 방문봉사에 나섰다.

복지관에 모이기 시작한 주민들은 작업이 끝날 때까지 편리한 시간에 맞추어 나오셔서인지 오랜 시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머리 손질을 해 드릴수가 있었다. 너무나 익숙한 얼굴들이어서 모두가 밝은 표정으로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었다.


쉴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작업장이지만 이곳에 나오신 주민들께 준비한 간식과 초콜렛을 나누어 드리기도 하고,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면서 응어리진 지난 삶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보듬어 드리고 싶었다.

어떤 주민은 어디 마을 몇 호실에 여기까지 나오실 수 없는 분이 계시니 방문해 달라고 부탁을 하시기도 하셨고, 불편한 몸이지만 전동차를 타고 나오신 분들이 전에 비해 많이 눈에 띄었다


새마을 회관에는 대부분 연로하신 분들이 많이 나오셨는데 30여 명의 커트가 끝나갈 무렵 올해 90세의 한 할머니는 먼저 말을 건네셨다. “바쁜데 여기까지 와서 봉사해주니 어찌 이리 감사하요 고맙소”하시면서 전동차를 힘있게 운전하며 가시는 뒷 모습을 보며 다음 봉사 때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속으로만 빌었다.

새마을 회관에서 작업이 끝나고 한 주민이 지팡이를 짚고 앞장서서 우리를 인도해 방문한 곳은 신생리 ‘여자부’였는데 기다랗게 지어진 이 건물은 홀로사신 할머니들이 기거하시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방문을 열고 마루에 나와 계시면 봉사자가 찾아가 머리 손질을 해 드리는 방법으로 22명의 주민을 커트해 드렸다.

자치회에서 마련해준 작은 버스는 온종일 주민들과 봉사자들의 친절한 운송수단이었다. 그 버스를 타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남생리였다. 이곳에서는 간이 의자까지 마련해서 주민들이 편하게 앉아 머리손질을 받으실 수 있도록 힘을 모았다.

해안가인 이곳은 집집마다 마당에는 칸나, 제라늄, 베고니아 이런 예쁜 꽃들이 피어 있어서 잠시 머물렀지만 한가롭고 평화를 맛보는 기분이었다.

이번에 140여 명의 주민들께 퍼머와 커트를 해 드리고 돌아왔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2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3. 3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4. 4 블랙리스트에 사상검증까지... 작가 한강에 가해진 정치적 탄압 블랙리스트에 사상검증까지... 작가 한강에 가해진 정치적 탄압
  5. 5 [이충재 칼럼] 농락당한 대통령 부부 [이충재 칼럼] 농락당한 대통령 부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