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회장 세무조사 무마 로비했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 정형근 명예훼손 혐의 공판서 증언

등록 2003.10.13 22:37수정 2003.10.1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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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중앙일보 관계자의 탈세 의혹을 밝히려는 세무사찰을 무마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법정증언이 나왔다.

<한겨레>는 14일 가판을 통해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13일 서울지법에서 형사합의23부(재판장 김병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1심 공판에서 이같이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정형근 의원은 지난 1999년 세무조사를 통해 언론사를 길들여야 한다는 '언론대책 문건'을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이강래 전 대통령 정무수석이 작성을 주도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주장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한겨레는 14일자 '중앙일보 부탁받고 세무조사 무마 로비'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날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선 이 전 원장은 검찰 신문에서 '베이징 연수중이던 중앙일보 문일현 기자가 문건을 보냈다는 99년 7월 이후 보광 등 중앙일보 관계사의 탈세 의혹을 밝히려는 세무사찰을 무마해달라는 홍석현 회장의 부탁을 받았고 당시 김종필 총리에게 로비를 하기도 했다'며 '언론대책 문건을 내가 주도했다면 어떻게 언론사의 세무사찰 무마 로비를 했겠느냐'고 반문했다"고 실었다.

한겨레는 "이에 변호인 반대신문에 나선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세월이 상당히 지났고 음해목적으로 얘기한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도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원장님답지 않다'며 은근히 고소취하를 종용하자, 이 전 원장은 '우리 정치가 매일 한건씩 근거없는 시나리오 폭로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고 저질국회라는 말을 듣고 있다'며 '서로 한건씩 날려보내고 신문은 좋아라하고 대서특필해 영웅시하는 잘못된 폭로주의, 선정주의를 바로잡기 위해 법정에 나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 의원은 이에 대해 "최근에 폭로를 한 적은 없으며 송두율 사건에 대해서는 안기부 근무 시절 알고 있던 사실을 이틀 동안 번민하다 알고서도 얘기하지 않으면 양심에 어긋난다는 판단으로 밝힌 것"이라며 "내가 무엇을 폭로하고 확대를 했다고 그러는지 의아스럽고 섭섭하다"고 반박했다.

정 의원은 이날 공판에서 또 "검사신분으로 안기부에 파견나가 있던 시절 모시던 상관이 이 전 원장의 정보부 동기여서 말씀 많이 들었고 종로에서 국회의원 출마한다는 소식을 들어 돈도 거두고 직원들도 파견한 적도 있다"면서 이 전 원장과 관련한 또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이 전 원장은 "재판과 관련 없는 일을 말하고 있다"며 제지하기도 했다.

중국 베이징 유학 중 증언을 위해 일시 귀국한 문일현 중앙일보 전 기자는 "언론이 객관적으로 여론을 비판하지 않고 실체적 진실보다 매체의 주관적 판단이 증폭된다고 생각해 매체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언론대책 문건' 작성에 대해 밝혔다.


이날 공판 현장을 직접 취재한 김태규 한겨레 기자는 "이 전 원장이 홍 회장의 무마 청탁을 김종필 총리에게 보고하니까 '처리해주겠다'고 답변했고, 이 사실을 홍 회장에게 알려줘도 되느냐는 물음에 '좋다'고 말했다는 증언도 나왔다"고 밝혔다.

김 기자는 또 "이 전 원장이 김 총리의 반응을 홍 회장에게 다시 확인시켜주었다는 발언도 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이같은 내용을 배달판에 추가했다.

이와 관련, 중앙일보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의 전략기획실 관계자는 "홍 회장은 외국에 나가 있는 데다 관련 보도를 직접 보지 않아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공판에는 <한겨레> 기자 외에 <연합뉴스>와 <중앙일보> 기자가 직접 취재를 했으나, 13일 현재 <한겨레>만 홍 회장 로비 관련을 소상하게 실었다.

99년 '언론대책 문건' 파동은?
정 의원, 중앙 기자가 작성한 문건 폭로

국세청은 지난 1999년 9월 17일 중앙일보 계열사인 보광그룹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대주주인 홍석현 중앙 사장을 검찰에 고발 조치하는 한편 보광그룹과 홍씨 일가에 대해 262억원의 탈루세액을 추징했다.

중앙일보는 당시 국세청의 보광그룹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으로 규정하고 특별취재팀을 구성해 정부의 비리취재에 나서는 등 정면대응을 선언하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홍 사장은 일부 언론사 사장들과 연쇄 접촉을 가지며 '보광 세무조사는 언론길들이기'라며 공동대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른바 99년 '중앙일보 사태'의 시작이다.

이후 같은 해 10월 25일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 회의장에서 '성공적 개혁추진을 위한 외부환경 정비 방안' 제하의 언론대책 보고서를 폭로했다. 당시 정 의원은 국가권력이 언론개혁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골자를 담은 이 문건을 두고 '중앙일보 사태' 시나리오의 발단이라고 주장하며 이강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작성자로 지목했다.

정 의원은 이어 이틀날인 10월 26일 문건을 이강래 전 정무수석이 작성해 여권실세인 이종찬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를 거쳐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됐으며, 문건 내용 상당 부분이 그대로 집행됐다고 주장했다. 보광그룹 세무조사나 비리 언론인에 대한 폭로작업 등이 문건에 적시된 언론장악 음모의 일환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문건작성 경위와 관련, 중앙일보는 문 차장이 언론개혁에 대한 본인 생각을 정리해 이종찬 부총재에 전달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한나라당은 이강래-이종찬팀이 작성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사건은 문 차장의 배후가 여권이냐, 아니면 중앙일보 간부냐는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10월 27일과 28일 보고서 작성자가 중앙일보 문일현(당시 중국 베이징대학 유학 중) 차장으로, 정 의원에게 문건을 전달한 사람도 평화방송 이도준 차장이라는 사실이 각각 드러나면서 반전을 거듭했다. 정 의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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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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