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죽나무' 열매로 '툼벙'에서 고기 잡던 때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39>민물고기조림

등록 2003.10.15 11:24수정 2003.10.1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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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죽나무 꽃
때죽나무 꽃김규환
중부 이북 지방에는 쪽동백, 그 이남에는 때죽나무가 참나무, 밤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등 키 큰 나무 아래 자란다. 햇볕 조금만 있으면 죽지 않고 질긴 목숨을 이어간다. 둘 다 목질이 단단하고 아름다워 장식용 가구를 만드는데 쓴다.


얼마 전 어느 교육 기관에 가서 보니 그 두 나무로 반지, 목걸이에서부터 만들지 못하는 노리개가 없었다. 손에 만져지는 감촉은 또 얼마나 좋던지 모른다.

그래도 쪽동백과 때죽나무 잎은 완연히 다르다. 쪽동백이 훨씬 커서 손바닥만한 반면, 때죽나무는 손톱보다 조금 크다. 하지만 줄기는 갈색으로 거의 비슷해 구분이 쉽지 않다. 또한 타원형의 달걀처럼 생긴 열매는 쏙 빼 닮았다. 때죽나무가 길게 열을 지어 수배 더 많이 달린다는 점이 다르다. 때죽나무과(科)라는 한 집안 내력 때문이리라.

봄에는 하얀 꽃잎 흐드러지게 피고 암술은 노랗다. 이 마저 보려면 고개를 숙이고 숲에서 하늘을 쳐다봐야 한다. 그 많은 초롱이 여름을 나고 열매를 맺어 파릇파릇 하며 가을에 떨어질 모양을 다 갖춘다.

차차 껍질 안쪽에 딱딱한 껍데기가 형성되면 시골 촌놈들은 또 한번 들떴다.

농사 기술이 현대화되기 전 70년대에는 벼를 거두려면 아직 이른 철이라 다소 한가하다. 밭 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겨울 나기 위해 꼴을 베어 말리는 일 빼고는 마땅한 일 거리가 없다. 그러니 가재 잡고, 새비(土蝦), 다슬기 잡고, 버섯이나 따오던가 산밤, 상수리, 도토리 줍기로 소일을 한다. 홍시가 되어 떨어진 감을 주워 먹기도 했다.


더 시간이 나면 초동(樵童)은 해질녘 산골로 간다. 산과 골짜기가 맞닿은 곳이라 때죽나무 열매를 구하기도 힘들지 않다. 주머니나 쇠죽바가지에 때죽나무 열매를 따와서는 널찍한 돌 위에 놓고 푹푹 찧는다. 겉껍질이 쑥물이 흐르듯 으깨지고 더 세게 치대면 희고 노란 껍데기가 부숴 진다.

때죽나무 열매
때죽나무 열매김규환
자연산 마취제가 만들어지니 건강에도 해로울 리 없다. 잠시 정신 못 차리게 해 놓고서 건져 올리면 끝인 재료가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형들이나 어른들이 하는 걸 보고 자연스레 터득하였다.


이것 서너 줌 있으면 '싸이나'를 뿌릴 일도 없다. 막고 품을 일이 없다. 작살이 필요가 없고 무겁게 메를 떠메고 갈 일도 없다. 한 때 유행했던 '밧데리'를 지고 가서 남몰래 잡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맨손으로 잡는 거나 마찬가지다.

냇가 웅덩이 물길을 먼저 돌려 물이 줄어드는 틈에 세 줌 정도 되는 때죽나무 열매 빻은 걸 훅 뿌려주면 물에 둥둥 떠 있다가 이내 가라앉는다. 얼마 안 있어 물거품이 피어오른다. 돌과 모래에 숨어 있던 1급수에 사는 고기가 독한 약 기운을 못이기고 숨을 몰아 쉬니 그런 것이리라.

5분 여 지나 물이 불어날 즈음 그냥 위에서 보면 까맣기만 하던 물고기가 한 마리 씩 위로 떠오른다. 비릿한 냄새가 확 풍긴다. 장어과 물고기 빼고 붕어나 날피리 종류는 죄다 배를 뒤집어 하얗게 둥둥 뜬다. 몇 마리 건지고 물길 돌렸던 물꼬를 휙 터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 얼마나 고기 잡는 방법 간단한가.

이젠 그 고기 이름 다 잊었지만 피리, 망둥이, '모자때기', '중보때기' 따위의 위로 떠다니던 고기를 국그릇으로 한 그릇은 잡는다. 깜박 잊고 집에 갖다 놓으면 염소 녀석이 마루에 올라와 엎질러 놓았고, 고양이는 제 밥인 양 냠냠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걸 배를 따서 어머니께 갖다드리면 조그맣고 노란 양은 냄비에 얼럴한 잼피(초피) 잎과 독이 오른 가을 매운 고추를 큼지막하게 썰어 넣고 양념을 하여 매콤하게 지져 주셨다. 뼈까지 씹어 먹는 민물고기 조림에 온 가족의 젓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때죽나무 꽃
때죽나무 꽃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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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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