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선수 우지원이 '용공분자'라고?

[심층취재] 조선일보 '이장희 교수 죽이기'의 전말 (상)

등록 2003.10.19 10:36수정 2003.10.2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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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월요일자(10월 13일) 신문들은 일제히 '이장희 교수 무죄 확정'이라는 제목의 뉴스를 보도했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1997년 12월 공안 당국이 이장희 교수(한국외국어대. 국제법)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한 지 6년 만에 마침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는 뉴스였다. 한편 이보다 앞선 지난 9월 26일 월간조선과 한국논단의 일방적 보도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 교수가 제기했던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도 대법원은 원고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이었다. 마녀사냥을 당했던 한 지식인이 6년 동안 겪었던 분노, 고통, 부담, 두려움, 외로움, 조심스러움은 그렇게 법정의 방망이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세인의 뇌리에서 덧없이 잊혀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도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마녀사냥에 나섰던 가해자들은 아무런 반성과 사과의 표시를 하지 않았다. 배반과 오욕의 한국현대사가 늘 그래왔듯이….

그러나 나는 이 마녀사냥의 종말을 그냥 스쳐보낼 수 없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운명적 이유가 있다. 이장희 교수에 대한 마녀사냥이 전개되던 당시 월간 <말>지 기자였던 내가 이 사건의 전 과정을 추적했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나 역시 이 교수처럼 '영혼까지 좀먹는 검열의 상처'를 체험했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이다.

오늘부터 상·중·하 3회에 걸쳐 이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고,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6년 전으로 날아가 보자.



a <월간 말> 98년 1월호.

<월간 말> 98년 1월호.

때는 김영삼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인 1997년.

통일원(장관 권오기)은 그 해 2월 초부터 5월 말까지 문화방송(MBC)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세가지 내용이 부분적으로 들어간 통일 캠페인 방송을 내보냈다.


(1) "통일이 되면 수도는 어디가 될까요? 나라꽃은 무엇이 될까요? 공휴일은 또 어떻게 바뀔까요?"

(2) "애틀란타에서 북한 선수를 봤어요. 어렸을 땐 우리와 다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우리랑 똑같더라구요. 참 반갑고 친해지고 싶었어요. 마음의 거리부터 없애는 것, 이것이 바로 통일의 길이 아닐까요." "맞아요. 알고 보면 이렇게 가까운 거린데 마음의 거리는 북극보다 멀어요. 우리 마음의 거리부터 좁혀야겠어요."


(3) "우리는 알아요. 우리가 하나라는 것. 지금은 헤어져 있어도 다시 만나면 하나가 되죠. 마음을 열어요. 생각을 나눠요.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닌 더 큰 하나. 어렵지 않아요. 마음이 하나 되면 통일은 어렵지 않아요."


여기서 (1)은 라디오 광고 '통일이 되면' 중 여성 성우의 대사였으며 (2)는 텔레비전 광고 '마음의 거리' 중 농구선수 우지원과 미스코리아 한성주가 나눈 대화였다. (3)은 텔레비전 강고 '우리는 하나' 중 가수 이선희가 부른 노래의 가사였다.

남북이 대결과 갈등에서 화해와 교류의 시대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시의적절하게 만들어진 캠페인이라는 것이 당시 방송이 나간 뒤 나왔던 대다수 국민들의 평가였다. 그러나 조선일보 자매지인 <월간조선> 7월호에 '이상한' 제목의 기사가 실리면서 상황이 돌변하기 시작했다.

'문제제기-통일원의 이상한 통일 캠페인'이라는 꼭지명이 붙은 이 기사의 제목은 <통일되면 수도와 나라꽃이 바뀌나?>였다. 그런데 이 기사를 내보낸 월간조선의 주장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통일원의 통일 캠페인이 북한의 연방제 통일을 연상케 하고 대한민국의 국기와 정통성을 뒤흔들고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친 것이다.

따라서 월간조선의 보도가 옳다고 하면,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통일원은 적국인 북한을 이롭게 하는 용공·이적표현물을 대량으로 제작, 유포한 셈이 된다. 다시 말해 통일원장관 권오기가 용공성 이적표현물 제작을 총지휘한 '수괴'가 되는 것이고, 농구선수 우지원·미스코리아 한성주·가수 이선희·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여성 성우는 이적표현물을 공중파 방송을 이용해 대중에게 무차별적으로 유포한 '용공분자'가 되는 것이다.

권오기 장관을 임명한 김영삼 대통령도 결코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은 자명했다. 지금 한나라당의 논리대로라면, 완전한 대통령 탄핵 감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런 '용공 광고'를 듣고도 신고하지 않은 '정신상태가 해이해진' 대다수 국민은 '불고지죄'의 철퇴를 맞고 모두 감옥에 갈지도 모르는 운명이었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가 독하게 마음만 먹었다면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월간조선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언론사에 길이 남을 '세기적 특종'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정도라면 1997년도 퓰리처상도 이미 따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통일원장관, 우지원·한성주·이선희씨, 대다수 국민에게는 엄청난 '불행(不幸)'이지만, 월간조선과 조선일보에겐 이보다 더 좋을 게 없는 '경사(慶事)'가 될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의 결과가 과연 어떻게 나왔는지 차분하게 복기해 보도록 하자.

당시 월간조선이 통일원의 통일 캠페인을 용공·이적표현물이라도 되는 듯이 주장한 근거는 크게 세 가지였는데, 퓰리처상에 노미네이트 될 뻔했던 이 기사의 내용을 직접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 "'통일이 되면 나라꽃이 바뀔 수 있고 수도 서울이 옮겨질 수 있으며 공휴일도 바뀔 수 있다'는 내용 등이 삽입돼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연방제 통일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상황을 상정하고 있는 게 아니냐."

(2) "'어렸을 땐 (북한 사람들이) 우리와 다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우리랑 똑같더라'는 대목은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며 (사상적·이념적으로) 문제가 있다."

(3) "'마음을 열자'고 하는 것은 전쟁 가능성이 거론되는 마당에 남한 국민들에게만 적과 아군의 개념 없이 민족만을 강조하는 셈이다."


그런데 월간조선의 이러한 주장이 타당성을 얻으려면 그들이 제시한 근거가 객관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한다면, 월간조선의 주장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궤변에 불과했다. 즉 논리의 비약과 사실의 왜곡에 바탕한 주관적 주장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첫 번째 주장부터 살펴보자.

우선 통일원의 캠페인 내용을 다시 한번 자세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 월간조선이 문제삼은 광고의 원래 내용은 "수도는 어디가 될까요? 나라꽃은 무엇이 될까요? 공휴일은 어떻게 바뀔까요?"라고 의견을 묻는 '의문형 문장'이었다.

그러나 월간조선은 의문부호가 세 개나 등장하는 이 문장을 "나라꽃이 바뀔 수 있고, 수도 서울이 옮겨질 수 있으며, 공휴일도 바뀔 수 있다"라는 단정적인 '서술형 문장'으로 아주 손쉽게 둔갑시켜 버렸다.

월간조선은 한 술 더 떠 통일원이 마치 북한 중심으로 수도와 나라꽃과 공휴일을 바꾸자고 한 것처럼 몰아갔다. 월간조선에 기술된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그 증거다.

"수도가 바뀌어야 한다면 북이 중심이 된 통일의 경우만 수도 서울이 평양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무궁화가 통일 후에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를 '극단적으로' 연장하면 대한민국이란 국호도 통일 이후에는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북한의 '해방절'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대한민국은 그들의 주장대로 '친일파들에 의해 미제 앞잡이와 손잡고 세운 괴뢰정부'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통일원은 수도와 나라꽃과 공휴일이 바뀌어야 한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모든 것이 북한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언급한 적도 없다.

특히 통일원은 월간조선 1997년 7월호에도 게재된 답변서를 통해 "광고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광고기법"에 불과하다면서 "다른 의미를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해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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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간조선은 스스로 자백(?)한 바처럼 '극단적인' 논리를 전개했다. 결국 상상력을 동원해 주관적인 해석을 시도한 셈이다. 일반적으로 상상력은 시인이나 소설가의 영역에 속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따라서 월간조선은 '세계적 특종'을 욕심내기 전에 적어도 다음과 같은 '언론학 개론' 수준의 글부터 읽어야 했다.

"기자들은 취재원의 답변을 이해 못할 수도 있다. 또 답변 내용을 부정확하게 기록할지도 모른다. 또는 발언의 전체적 배경과 맥락을 모를 수도 있다. 기자가 갖고 있는 편견이 정확한 메시지 전달을 방해할 경우도 있다." (브라이언·S. 브룩스 공저. 한국언론연구원 편역. <취재와 보도> 40쪽)

다시 말해 월간조선의 보도는 '기자가 갖고 있는 편견이 정확한 메시지 전달을 방해'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월간조선은 논리의 비약과 함께 사실을 왜곡한 혐의도 가지고 있다.

월간조선은 기사 첫머리에서 "통일원의 통일 캠페인 내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고 쓴 바 있다. 물론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 그해 7월 8일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에서 이건개 자민련 의원이 "대한민국의 통일원은 국민의 혈세인 3억8000만원을 들여 북한의 통일전략을 홍보한 셈"이라고 발언했다.

이어서 7월 17일 우익 성향의 통일대비포럼(공동대표 오제도·김창순·이도형·박찬성 외 582명)도 조선일보 5면에 "통일원 해체하고 통일원장관 물러나라"는 5단 광고를 실었다.

다음날인 7월 18일에는 민족안보구국통일연합회가 자신들의 기관지 <신문고>를 통해 통일원장관의 퇴진을 주장했다. 서북청년단 해체 이후 우익단체 최대의 일사불란하고 조직적인 행동통일이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월간조선 기사가 나간 이후의 일이다(참고로 월간조선 7월호는 6월 20일경 발행된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당사자가 다름 아닌 월간조선 자신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월간조선에 문제의 기사를 쓴 이동욱 기자(현재 모 유명 여론조사기관 전문위원)는 6월 28일 통일대비포럼이 세종호텔에서 주최한 박홍 총장 후원회 조찬모임에 참석하여 월간조선 7월호에 실린 자신의 기사를 발제했다. 이날 조찬회에는 오제도, 이도형 등 극우 성향의 인사들과 이건개 자민련 의원 등이 참석했다고 한다.

조찬회에 참석했던 또 다른 인사인 김창순 북한문제연구소장이 당시 월간 <길>지 기자에게 했던 증언을 직접 들어보자.

"난 이동욱 기자를 그 날 처음 봤는데, 젊은이가 좀 보수적이더군. 그 사람이 월간조선 기사를 발표했어요. 그걸 듣고서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저마다 한 마디씩 다 해서 무슨 성토대회처럼 됐어요.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고. 그런 걸 모아서 광고를 내기로 하고, 그 일은 의장단에 맡기자고 했어요."

월간조선 기자의 선동이 색깔론을 동원한 마녀사냥의 도화선이 됐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언이다. 따라서 월간조선은 "논란이 되고 있다"고 쓰기보다는 "논란이 있을 것이다"라거나 "내가 논란을 조장할 것이다"라고 솔직하게 밝혔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논란이 되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적시해야 했다.

그러나 정작 월간조선이 들이댄 잣대는 '반공'이었다. 그랬기에 "어렸을 땐 (북한 사람들이) 우리와 다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우리랑 똑같더라구요"라는 농구선수 우지원의 말도 예사롭지 않게 들린 것은 당연했다. 월간조선은 우 선수의 발언을 "납득할 수 없으며 문제가 있는 내용"이라고 못박았다.

당시 월간조선 이동욱 기자는 통일원 통일교육원 홍보부의 정응채 과장에게 "이 부분에 문제가 있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정 과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빨갱이라고 묘사하고 뿔 달린 도깨비로 그려진 그림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걸 보고 자란 사람들이 훗날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생겼다는 걸 알고는 놀랐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자꾸 북한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면 통일에 장애가 되니까요."

상식을 갖춘 남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답변이었다. 그러나 월간조선은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이런 시각이야말로 '친북 지식인들의 논리'라고 규정해 버렸다. 매카시즘의 전형적 수법이라고 할 수 있거니와, 월간조선은 보수 논객조차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일까.

"한국 보수주의는 반공주의에 안주하고 있을 수 없는 시대를 맞고 있다. 남북간에는 아직도 냉전이 지속되고 있고 반공주의는 그 타당성을 아직 잃고 있지는 않으나 보수주의가 반공을 국제적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던 냉전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이제 반공 이상의 더 높고 깊은 보수주의 본연의 가치관과 원리를 되찾아야 할 때에 처해 있다. 만약에 보수주의가 종전대로 반공에만 매달려 있으면 보수주의는 급속도로 공허하고 시대착오적인 사상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대표적 보수 논객 박근 전 유엔 대사가 자신의 저서 <한국 보수주의의 위기>에서 했던 말이다.

그러나 월간조선은 이런 '성찰적 충고'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통일 캠페인 내용 중에서 가수 이선희가 노래한 "마음을 열자"는 가사 내용에 대해서까지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남한 국민에게만 마음을 열자고 하는 것은 적과 아군의 개념을 모호하게 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열자"는 대목에서조차 용공과 이적의 혐의를 느낀다는 월간조선 이동욱 기자. 그렇다면 그는 남북한 국민들이 서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걸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앞날이 창창한 젊은 친구가 벌써부터 저러니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통일원이 했던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들어보면 그런 측은지심은 더욱 강해진다.

"마음을 열자는 것은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을 우리가 보다 본격적으로 주도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북한 당국이나 체제를 용인하고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 통일의 주역으로서 북한 동포를 이끌어나가 국민통합을 이룩하기 위한 마음의 자세를 갖추자는 것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a 지난해 1월 법원으로부터 1차 무죄를 선고받은 후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장희 교수. 이 교수가 97년 당시 자신을 공격하던 신문광고 스크랩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1월 법원으로부터 1차 무죄를 선고받은 후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장희 교수. 이 교수가 97년 당시 자신을 공격하던 신문광고 스크랩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 유영민

월간조선이 통일원만 문제삼은 것은 아니다. 도리어 주공격 대상은 이장희 외국어대 교수였다. 그것은 기사의 분량에서도 그대로 증명된다. 당시 7월호 기사의 분량은 총 13쪽. 그런데 <통일원의 이상한 통일 캠페인>이란 기사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게 이 교수와 관련된 분량이 무려 8쪽에 이르고 있다.

월간조선은 통일원 실무자와 광고회사 직원에게 취재망을 이어가던 중 광고 제작용 참고자료 중에 이장희 교수의 저서가 끼여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들은 아마도 이 교수와 그의 저서가 '용공 광고'의 진원지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는 기사 후반부에서 월간조선이 이 책의 '용공성'을 입증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다는 사실에서도 충분히 짐작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일원 '용공 광고'의 '배후세력'이라도 되는 듯이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왜냐하면 이 책은 수많은 참고자료 중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시 통일원의 답변을 들어보자.

"이 책이 '통일 홍보 캠페인의 주요 자료가 되었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릅니다. 실무 차원에서 공익광고 문안 작성자에게 제공된 여러 참고자료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통일 캠페인 광고 문안 작성자에게 제공된 여러 참고자료 중 하나'인 이장희 교수의 저서 <나는야, 통일 1세대>는 과연 어떤 책인가.

이 책은 마녀사냥이 시작되기 2년 전인 1995년 10월 중고생 참고서 전문 출판사인 천재교육에 의해 발간됐다. 물론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도리어 조선일보(11월 24일자)와 민주평통자문회의 기관지 <민주평통>(12월 7일자) 등 극우 성향의 언론매체들이 신간안내를 통해 어린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좋은 책으로 소개했을 정도다.

조선일보가 '좋은 책'으로 선정해 어린이들에게 읽기를 권장했던 통일교육 참고서를 뒤늦게 색깔론을 동원해 공격한 이 '세기적 블랙 코미디'가 과연 어떤 운명을 맞을 것인지 계속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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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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