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알려거든 과거를 먼저 돌아보라

김주영의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등록 2003.10.16 10:47수정 2003.10.1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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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책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문이당
요즘 신세대들은 어린 시절 특별한 가난과 배고픔을 경험했던 세대들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중년층만 하더라도 어린 시절 가난한 삶과 배고픔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이 책의 작가 김주영씨처럼, 그 시절의 가난과 배고픔은 지나고 보면 우스운 추억 거리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 서글픈 과거이다.

작가 김주영은 이 책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를 통해 6·25 전후 세대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가난과 서글픔을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이끌어 나간다. 최근 이 책이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코너의 선정 도서가 되면서 많은 젊은 세대들이 이 책을 접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궁핍함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 이 책은 과거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삶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간접 매체가 되어 주었다. 요즘처럼 비싸고 좋은 놀이기구가 판치는 세상에 상표딱지를 모아 놀이를 하는 형제의 모습은 색다른 웃음을 선사한다. 어린 동생을 데리고 다니면서 놀이거리를 찾고 장에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형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하다.

"엄마는 아직도 안 왔제."
아우의 목소리는 떨렸고, 캥거루 그림이 그려진 상표 딱지가 들린 왼손은 앙가슴 위로 오그라져 붙어 있었다.
"찔찔 짜지 마라. 인제 곧 올기다."
"나는 배고파서 말할 힘도 없다 카이."
"배고프면 밥 묵어라."
"밥이 있어야 묵제."
"엄마가 곧 온다 안 카드나."
"히야, 니는 안 슬프나?"
"슬픈 게 뭐꼬?"
"안 울고 싶으나 말이다."


배고프고 슬픈 하루 하루를 엄마를 기다리며 보내는 이 형제의 모습은 과거 많은 이들이 겪었던 삶이다. 비록 그 서글픔이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하더라도. 이 책에는 이와 같이 잊혀진 삶의 모습과 추억들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장난치다가 머리가 깨진 등장인물 '나'에게 엄마가 내준 처방이란 된장을 바르는 것이다.

공납금을 내지 않아 선생님으로부터 가난한 아이로 찍힌 모습, 공납금을 내지 못하는 아이가 한둘이 아닌 학교 현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많은 어른들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요즘 세대들에게 누누이 강조하는 과거 모습이다. 사실 교육적 혜택을 풍족히 누리는 요즘 세대들에게 약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은 과보호가 사회 문제가 되는 세상인데, 주인공의 아우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등에 업혀 지내지 못한다. 미군이 들어오자 마을 전체가 들썩거리는 모습 또한 요즘 세상을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배꼽을 잡을 만한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당시에는 충격적인 상황이었나 보다.


"저것 좀 보래, 새까만 인종 한분 보그래이. 이가 워째서 저렇게 하얄꼬."
"이빨이 하얀 게 아니고 살색이 새까마이까네 이빨이 하얗게 비는 거 아이가."
"살색이 참말로 한밤중이대이."
"딴 세상 나가 보면 저런 종내기들이 덤불째 모여 산다 카드라."
"얄궂어라.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하더이, 이걸 볼라꼬 그랬던 모양이제."


고전과 현대를 총괄하여 우리나라 문학이 지닌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를 꼽으라면 '해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흥부전' 등의 고전 소설이나 판소리, 사설시조 등에 나타났던 해학적 문체는 현대 문학의 대부인 김주영의 작품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래서 과거의 서글픔을 이야기하면서도 지겹고 어색한 게 아니라 재밌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책은 해학적 문체와 재미를 통해 과거의 삶을 돌이켜 본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가 있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아픔을 토대로 하여 형성된 것이며, 그 기억이 서글플지라도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정서를 담고 있다. 우리의 현재는 화려하지만 이 화려함의 바탕에는 배고픔과 가난이 팽배했던 시절이 존재한다.

작가의 재치 있는 입담을 따라 가다 보면, 부모님들이 늘 강조하는 가난과 배고픔, 6·25 전후의 힘들었던 우리나라의 상황, 냉전 체제 하의 분단과 이념 대립 등이 이해된다. 이 책이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그러할 것이다. 과거의 삶을 돌이켜 보고 그 서글픈 기억을 통해 현재의 삶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그리고 현재의 삶을 좀더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는 게 아닐까?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김주영 지음,
문학동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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