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물오름에서 숨어 있는 가을을 찾으세요

제주도 오름기행2

등록 2003.10.16 18:32수정 2003.10.1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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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남하하던 단풍 소식이 갑자기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단풍소식은 사람의 걸음걸이 속도로 남하한다는데, 벌써 내가 사는 아파트 정원에까지 도착하였으니 가을이 여기서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아직 떠나야 할 곳이 많은데도 가을해는 자꾸만 짧아지고, 가을하늘은 점점 늙어만 가니 마음이 조급해 진다. 신발장에 넣어 둔 등산화를 다시 꺼내 신고 핸들을 잡아보니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


계절을 잊고 사계절 푸르름을 자랑하는 절물오름으로 페달을 밟아봤다. 지난 여름 시간이 없어 아쉽게도 뒤로 미뤘던 절물오름. 그때 던졌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다.

차창너머로 보이는 것은 모두 가을색뿐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절물오름으로 가는 길은 여름이 한창이다. 세상은 깔깔대며 울긋불긋 색깔있는 옷으로 갈아입는데 절물휴양림의 나무들만은 독야청청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a 서로 경쟁을 하듯 빼곡이 늘어선 삼나무

서로 경쟁을 하듯 빼곡이 늘어선 삼나무 ⓒ 김강임

하늘을 찌를듯한 삼나무 숲을 거닐어 보면 도심의 매연속에서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했던 해방감에서 잠시 탈출할 수 있다. 페속 깊이 스며드는 상쾌한 공기. 숲에서 내뿜는 피톤치드가 전신을 감싸 몸과 마음이 맑아진다.

절물오름은 제주시 절물휴양림으로 널리 알려졌다. 두 봉우리로 이루어졌으며 절물은 물 가까이에 절이 있어 절물이라 유래 한다. 오름으로 올라가는 오른편에는 약수암이 있으며 '대나오름'. '다나오름'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단아봉. 단라악의 옛 표기가 남아있다고 한다.

절물오름에 오르기 위해서는 절물휴양림을 거쳐야 한다.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빼곡이 늘어선 삼나무 숲이었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키재기를 하는 삼나무 숲을 보니 생존경쟁의 치열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a 가을속 벤치에 앉아 보세요.

가을속 벤치에 앉아 보세요. ⓒ 김강임

삼나무 숲속 벤치에 않아본다. 나무 끄트머리엔 계절을 아는 듯 연한 물감이 먼저 색칠을 하고 있다. 지난 여름 북새통을 이뤘던 피서객들의 웃음 소리가 새어나오는 듯하다.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봤지만 금세 추위를 느낀다. 양지바른 곳으로 옮겨보지만 숲속의 기온은 벌써 겨울이다.


a 맨발로 걸어보니...

맨발로 걸어보니... ⓒ 김강임

동글동글한 하얀 자갈과 뽀쪽하고 모난 검은돌들이 밝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일명 건강발마사지를 하기 위해서이다. 앞서간 이는 오름의 비밀을 알고 있을까?

아스팔트 길에서 이렇게 신발을 벗고 걸어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이곳에서는 삼라만상의 모든 자연이 내 것이나 다름없으니 부자가 된 느낌이다. 신발을 벗고 한걸음 한걸음 맨발로 걸어본다. 그동안 굽 높은 구두에 혹사 당했던 발도 해감된 기분이다.


a 가을로 떠나는 등산로

가을로 떠나는 등산로 ⓒ 김강임

절물 등산로에 들어섰다. 이곳에서부터의 거리는 0.8km. 같이 떠난 상담선생님들은 잰걸음으로 걷는다. 그리고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그렇게 빨리 걸으면 보이는 게 있어?"
서두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잘 정비된 등산로 옆에는 이름 모를 나무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세상의 가을이 깊어가는데도 절물은 계절을 아는지 모르는지 푸르름이 빛을 낸다. 항상 산에 오르면서 정상에 대한 기대는 무궁무진하다.

a 전망대에 대한  호기심

전망대에 대한 호기심 ⓒ 김강임

"저 정상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저 정상에는 무엇이 살고 있을까?"
눈으로 보아서는 금방 갈 수 있는 길도 왜 정상에만 오면 구비구비 숲길로 이어졌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말했듯이 구도의 길로 안내하기 위한 산이 주는 배려는 아닐는지.

a 말굽형 분화구엔 단풍이

말굽형 분화구엔 단풍이 ⓒ 김강임

아뿔싸! 해발 697m 그 절물오름의 정상에는 오메! 단풍이 들어 있었다. 말굽형으로 벌어진 분화구가 신비스럽다. 절물오름의 큰 봉우리는 큰 대나오름이라 부르고 작은 봉우리는 족은대나오름이라 부른다. 절물오름은 기생화산으로 움푹 패인 분화구에는 이름모를 나무와 가시덤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a 원두막 같은 정자

원두막 같은 정자 ⓒ 김강임

들판에서 여름을 지키던 원두막이 오름의 전망대에 초대된 가장 귀중한 손님이다. 통나무 계단 하나하나에 발을 딛고 전망대에 오르니 마치 하늘로 통하는 계단처럼 느껴진다. 낮게 드리워진 구름은 금방이라도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만 같다.

a 정상에서 바라본 오름들

정상에서 바라본 오름들 ⓒ 김강임

저 멀리 내가 달려왔던 곳이 보인다. 그 옆에는 아스라이 고즈넉한 오름들이 펼쳐져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한라산 정상과 성산일출봉. 제주시와 비양도등 제주도 절반이 보인다는데. 구름으로 덮힌 한라산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창 쪼끄맣다. 전망 위에서 뜨거운 커피로 목을 축이며 보온병의 따스함에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비오는날 아침 마셨던 그 텁텁한 커피 맛과는 달리 헤이즐넛의 커피 향기가 가을 하늘을 타고 날아간다.

a 억새와 들꽃이

억새와 들꽃이 ⓒ 김강임

여행은 떠난 길을 다시 떠나게 되지만, 항상 마음이 허전해 지는것은 무엇 때문일까? 절물오름을 하산하면서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가을꽃과 억새를 만났다. 마치 인사를 나누 듯. 청초함을 잃어가는 가을꽃을 보니 벌써 다가오는 겨울이 을씨년 스러워진다.

a 서로 공생공존 하는 모습이 따뜻해 보여요.

서로 공생공존 하는 모습이 따뜻해 보여요. ⓒ 김강임

절물오름 중턱에서 만난 나무들은 벌써 벌거숭이가 되어 있었다. 그 벌거숭이 나뭇가지 위에는 줄을 타듯 기어 올라가는 식물들이 억척스럽게도 매달려 있다. 서로의 색깔과 모태가 다른데도 공생공존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래서 식물들의 세계는 언제 보아도 다정다감하게만 느껴진다.

2000년도 8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8월 가볼만한 8선지'로 선택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조용한 휴양지 절물 오름.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 함께 떠나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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