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향 가득 베어 물고 가을 밤하늘 쳐다보자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42> 버섯요리

등록 2003.10.20 15:57수정 2003.10.2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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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꾸미에 버섯
쭈꾸미에 버섯김규환
'그것' 닮은 버섯도 정력제다


파, 마늘, 부추, 양파, 달래는 피순환을 왕성하게 하여, 먹으면 괜한 생각을 부추긴다고 하여 절간의 스님은 이 다섯 가지 채소를 먹지 않는다. 수도 정진에 걸림돌이 되니 마땅하다 하겠다.

속설에 '그것 닮은 것은 무엇에 좋다'고 한다. '그것'은 남자들의 그것이요, '무엇'은 아마 정력일 게다.

정력 좋아진다고 하면 쑥대밭을 만들어 버리는 우리네 현주소가 민족성에 비유되어 헐뜯기는 경우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게 우리 겨레의 저력으로 발휘될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 그것 닮은 것 뭐가 있을까? 우선 두릅과 개두릅(엄나무 싹)이 있다. 다음으로 '뱀 대가리', 자라목, 해구(海狗), 거북이가 있다.

운지버섯은 싸고 많아 음료로 만들어 먹습니다.
운지버섯은 싸고 많아 음료로 만들어 먹습니다.김규환
여기에 큰 것에서부터 작은 버섯까지 다양하다. 갖다 붙이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보통 사람들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이다.


막상 먹어보면 이게 무슨 정력제일까 싶지만 사실 정력제는 정력으로 직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먹어서 큰 탈이 없으면 소화기능을 북돋워 보양강장(補陽剛腸) 구실을 하는 것이니 2차 효험을 기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잘 먹고 잘 누는 건강한 사람은 정력도 좋다'는 게 일반적이다.

꽃처럼 생겼다고 꽃버섯이라고 합니다. 화순 운주사 인근에서
꽃처럼 생겼다고 꽃버섯이라고 합니다. 화순 운주사 인근에서김규환
항암 작용 탁월한 식용 버섯 종류만 수십 가지

어렸을 적에는 싸리버섯과 꽃버섯을 많이 먹었다. 가을에는 어른들께서 밭일이나 산에서 나무 베는 일을 마치시고는 꼭 한두 번 먹을 분량을 마련해 오셨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버섯 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한 점이라도 먹어보려 갖은 애를 썼다.


버섯의 종류는 수십 가지다. 하지만 대부분이 독버섯으로, 식용으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으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도 겁이 나서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아예 덤빌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송이버섯, 느타리버섯, 능이버섯, 표고버섯, 상황버섯, 목이버섯, 싸리버섯, 꽃버섯, 새송이버섯, 양송이버섯, 아가리쿠스, 영지버섯, 운지버섯 등은 그 맛과 향 그리고 탁월한 항암 효과, 섬유질의 다량 함유로 가을 식탁을 풍성하게 한다.

민간에서는 송이, 표고, 능이버섯 중 '일(一) 능이, 이(二) 송이, 삼(三) 표고'라 하여 능이버섯을 최고로 치지만 일제시대를 지나면서 일본인들이 송이버섯에 빠진 터에 국내 소비자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송이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도 수출 효자 노릇을 하니 kg에 60만원을 호가해도 나무랄 순 없다.

1능이의 실체
1능이의 실체김규환
송이버섯은 비싸서 한 송이 먹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가까스로 아는 사람에게 한두 송이 얻으면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진다.

한 송이를 실처럼 200가닥으로 가늘게 찢어 송곳니로 잘근잘근 씹어 생으로 향이나 맡아 볼 수 있다면 소나무가 즐비한 산을 하나 얻은 만큼 기쁘다.

적당히 씹히면 입을 다물고 코로 숨을 내쉬면 입안 가득 솔 향이 퍼진다. 그 때 비로소 "흠흠" 들숨으로 향기를 놓치지 않는 게 잘 먹는 방법이다. 이 아까운 것을 무채처럼 두껍게 썰어 튀기거나 찌개에 넣어 먹으면 어찌되겠는가.

2송이의 실체
2송이의 실체김규환
그럼 진짜 버섯 능이를 '울며 겨자 먹기'로 먹어봐야겠지만 값이 예상외로 높다. 두세 송이가 6만원이 넘는다. 아쉽게도 까만 수건이나 걸레 같고 소 위벽을 닮은 능이버섯은 이제 철이 지나려고 한다.

다소 싼 싸리버섯과 꽃 버섯도 내년에야 맛 볼 수 있다. 꽃버섯은 올해 풍년이었다. 잦은 비로 화순 운주사 뒷산이나 장수 처가에든 시골집에도 지천으로 바닥을 붉고 노랗게 물들였다. 이 두 버섯은 돼지고기 볶음에 넣으면 그 쫄깃함에 빠져 고기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곧 터질 것 같은 3표고의 실체
곧 터질 것 같은 3표고의 실체김규환
쉽게 구할 수 있는 표고, 양송이, 새송이, 느타리버섯 향기 베어 물고...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표고버섯이다. 첫째로 치는 것이 정말 그 모양이어서 약간 덜 피어 거무튀튀하며 터질 듯한 옥수수 튀밥모양이면 좋겠지만 더 피어버린 것도 맛과 효능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2~3천원이면 한 가족 버섯 매운탕 끓여 먹고 남겨서 된장찌개에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건조도 쉬워 2~3일이면 꼬들꼬들 해지니 안심하고 서늘하고 바람 잘 통하는 곳에 모아뒀다가 빻아서 찌개 끓일 때 넣으면 화학조미료가 필요 없이 국물 맛이 끝내준다.

느타리버섯으로 버섯불고기를 해 먹으면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도 아깝다. 이렇게 먹어봐도 아쉽다. 그래도 송이버섯을 안 먹어봤으니 마치 일보고도 밑 닦지 않는 듯 개운하지 않다.

시장에 나온 버섯. 송이처럼 생긴 큼지막 한 것이 새송이버섯이죠? 팽이버섯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느타리버섯도 찾아 보세요.
시장에 나온 버섯. 송이처럼 생긴 큼지막 한 것이 새송이버섯이죠? 팽이버섯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느타리버섯도 찾아 보세요.김규환
송이버섯을 닮아 재배가 가능하여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느타리버섯과(科) 새송이버섯과 양송이 버섯이 있다. 이건 그래도 외식 한 번 하지 않으면 가족의 식성에 따라 구워서도 먹고 튀겨서도 먹고 탕에 조금씩 넣어 먹을 수도 있으니 이쪽으로 눈을 돌리는 게 낫다.

끝으로 상황버섯은 뽕나무에서 난다. 곧 자지러질 듯한 시골마을 울타리 모양이라고 느타리버섯이다. 상수리나무 등 참나무와 밤나무에 가을 구름 닮아 더덕더덕 늘어붙은 운지버섯이 야산에도 지천이다. 한약방 앞에 앞뒤 빛깔이 확연히 구분되어 딱딱하게 굳어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영지버섯은 차로 끓여 먹어보자.

요즘 무가 맛있어 버섯을 조금만 넣어도 향이 좋습니다. 소고기까지 넣으면 더 맛있겠죠.
요즘 무가 맛있어 버섯을 조금만 넣어도 향이 좋습니다. 소고기까지 넣으면 더 맛있겠죠.김규환
버섯 잘 먹는 법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나무는 썩어서 버섯을 만든다. 균사체(菌絲體)의 활약으로 말미암아 쫄깃쫄깃하고, 향큼하며 코를 뻥 뚫어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가.

그래서 가을은 사람에겐 최고의 시절이다. 소나무 향, 참나무 수액 내음에 세상에 좋다는 나무의 향기를 입에 베어 물 수 있는 미각천국에 사는 우리는 행복하다.

버섯불고기는 아이들도 잘 먹습니다.
버섯불고기는 아이들도 잘 먹습니다.김규환
버섯 요리에 왕도는 없다. 다만 몇 가지 원칙만 지켜 주면 모든 게 내 몫이 될 수 있다.

첫째, 대부분의 버섯은 수용성이므로 가능하면 물에 담그거나 삶지 않는다.

둘째, 찌개에 넣더라도 일반 재료가 다 익고 난 다음 먹기 바로 직전에 넣어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해야 한다.

셋째, 씻을 때도 먼지나 흙만 털어 내고 남은 물은 육수로 대신한다.

넷째, 아무리 몸에 좋은 것도 한날 한시에 다 먹어치우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송이 한 송이로 된장찌개 세 번을 끓이고 말린 표고 한 송이로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요리에 자신이 없는 분이라면 버섯을 말려서 빻아뒀다가 천연조미료로 두고두고 쓰는 지혜를 발휘하자. 그래도 안되겠으면 라면에 얇게 잘라 넣으면 맛이 달라진다.

기분 낸다고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다. 그 뿐이 아니다. 국, 찌개, 탕, 전골, 볶음에 넣어도 제가 알아서 어울리니 기대 한껏 해도 실망하는 법이 없다.

꽃버섯에 돼지고기볶음
꽃버섯에 돼지고기볶음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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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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