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보존각의 무위세상으로 승천하는 선녀상김대호
바람과 하늘, 흙이 그러하 듯이 그 비구 스님처럼 우리도 자연과 한 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한낱 춘몽(春夢)에 불과했던 것일까?
무위사 극락보전 툇마루에 앉아 노자의 무위(無爲)와 우리의 미륵(彌勒)을 생각했다.
노자는
"학문을 하면 날로 보태는 것이고, 도를 함은 날로 덜어내는 것이다. 덜고 또 덜어서 함이 없음(無爲)에 이르면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무위를 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다(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之於無爲 無爲而無不爲 爲無爲 則無不法)"고 무위를 논하였다.
이름대로 한다면 무위사는 '존재하지 않는 절'이며 '소유함이 없는 절'이다. 부질없는 속세와의 인연을 마다하고 자연으로 무화(無化)되기를 바라는 은둔의 사찰인 것이다. 물론 도피와는 다른 무정부주의자들의 그것처럼 무위 세상에 대한 꿈을 일구는 은둔이었을 것이다.
유가(儒家)가 의식적 행위인 유위(有爲)와 인위(人爲)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반해 도가의 무위는 자연이 흘러가는 법칙을 거스르지 않으며 인위적으로 꾸며내지 않는다. 무위를 통해 인위를 초월한 고차원적인 자연 행위, 완성적 행위를 찾아 세상의 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당나라 도인들은 똑똑한 유학자들이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벗어나 전제 군주를 천하의 주인으로 받들고 예를 내세워 법과 제도를 만들어 백성들 위에 속박하는 것이 역겨워 안빈낙도(安貧樂道)를 택한 것이 아닐까?
노자는 '총명과 지혜를 끊어 버리면 백성의 이익이 백 배로 늘 것이다. 인(仁)과 의(義) 같은 도덕을 끊어 버리면 백성들이 옛말처럼 효성스럽고 자애로울 것이다. 정교하고 편리한 물건들을 없애 버리면 도적이 사라질 것이다'고 유학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일갈을 날린다.